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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Oct 10. 2023

가을 산행

투투 이야기


날이 너무 좋았다. 집 소파에 누워있는 것은 이 찬란한 날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투투, 산에 가자! 녀석 무료하게 앉아있다가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빙글빙글 돌며 좋아한다. 뽀뽀세례에 꼬리콥터까지 가동한다. 투투가 뽀뽀한 곳에 투투 꼬리의 부채질이 더해져 시원하다. 물통과 간식을 챙겨 집을 나섰다.


투투와 사마귀

숲에 가는 도중 사마귀를 만났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그런지 사마귀가 힘이 없다. 쫄보인 투투는 쉽게 다가가지 못하다가 사마귀가 움직이니 따라간다.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던 투투, 발로 사마귀를 건드려 보려는데 지가 먼저 놀라 펄쩍 뒷걸음친다. 투투야, 그렇게 겁이 많아 어쩌냐. 사마귀는 아무 짓도 안했다구. 사마귀 홀연 날아간다. 두 쫄보가 뱀이라도 만날까 걱정이다


숲의 햇살과 그림자

숲은 시원한 기운이 가득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햇살과 햇살이 만든 그림자가 아름답다. 하루가 다르게 투명해지는 잎들은 햇살과 바람이 준 또 다른 색으로 변해가며 바스락거렸다. 바스락 거리는 사이 나무들은 조금씩 쓸쓸해질 것이다.


땽에 떨어진 산밤들. 꽤 많다


알밤이 막 떨어졌는지 밑은 하얗고 몸통은 반들거리며 깨끗했다. 투, 툭 소리가 난 곳으로 투투가 뛰어가 냄새를 맡다가 알밤 하나를 입에 물고 가져왔다. 먹으라고 주니 신통하게도 속 알밤을 빼먹고 껍질은 뱉는다. 하나를 더 주니  먹는다. 맛있니? 물으니 돌아보며 헤헤 웃는다. 멈추지 않고 지나가며 한 두 개 집어넣은 밤이 주머니에 가득 찼다.


전나무 향이 진하다  

통나무를 가로놓아 만든 길을 투투는 한 걸음에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나를 돌아보고 기다렸다. 조금만 더 가면 평지였다. 엄마가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던 투투는 벌써 좁은 길에 들어서 있었다. 녀석, 위에서 기다릴지언정 되돌아오진 않는구나. 투투야, 같이 가자~~



꽃의 향기가 매우 진하다. 큰 일교차와 햇빛과 바람이 꽃의 향기를 진하게 만들고 있었다. 투투는 꽃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꼭 냄새를 맡는다. 좋아하는 꽃 앞에서 사진 한 방 박을까요? 물으니 카메라를 응시했다. 녀석 모델이야. 저 당당함의 꼬리를 보소, 투투, 꽃처럼 이쁘구나! 찰칵! 투투 코에선 꽃 향기가 등에선 햇빛 냄새가 났다.



주워 온 밤이 제법 많다. 열심히 주웠다면 더 많았겠다. 벌레들 차지가 되기 전에 얼른 씻어 삶아야 한다. 속알이 노란 것이 작지만 아주 맛있다. 투투 하나, 엄마 하나. 맛있지? 투투 꼬리가 살랑살랑거린다.



산행이 조금 힘들었나 보다. 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는다. 투투야, 다음엔 약수터만 갔다 올까? 그래도 올라가니까 좋았지? 엄마도 노곤한 걸. 곧 해가 지겠다. 낮이 많이 짧아졌어.

우리 소파에서 잠시 졸을까?

투투 소파 위로 올라와 한숨을 푹 쉬더니 눈을 감는다. 손에 닿은 투투의 발바닥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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