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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Feb 01. 2024

아바이 마을 순대국밥집

어반 스케치 그리고 쓰다


인제 옆 원통마을엔 남편의 친구가 산다. 남편과 그는 40년 지기 벗으로 성품과 관심사가 비슷하다. 친구 아니랄까 봐 남편과 같은 시기에 정년을 한 그는 서울 혜화동의 집을 두고 혼자 원통의 작은 읍으로 갔다. 인제 자작나무 숲에서 해설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남편과 더불어 그를 오래 보다 보니 이젠 나도 형이라 부르며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토요일 오전 업무가 끝나자마자 속초나 다녀오자며 길에 나섰다. 가는 길에 원통의 친구와 합류하기로 했다. 집에서 속초까지는 대략 2시간 30분.


속초에 가서 딱히 무엇을 하자고도 어디 가자고도 굳이 말하지 않는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차를 멈추면 여기야? 하고 내리고 저리로 가자, 하면 가는구나, 하며 따라간다. 거길 왜 가느냐, 다른 곳에 가자, 하는 말들은 하지 않는다. 만일 더 나은 곳이 있다고 생각되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음엔 거기 가 보자, 하는 것으로 끝낸다. 그래서 우린 함께 있어도 피곤하지 않다.


남편이 아바이 마을의 국밥집 앞에 차를 세웠다. 우리가 가끔 들르는 곳이다. 아바이 마을은 순댓국과 오징어순대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이 그 원조라고 한다. 사실 원조의 맛이 어떤 건지 잘 모른다.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조라고 하면 신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믿지 않는다. 원조든 아니든 그저 제 입맛에 맞으니 찾아가는 거다. 입맛은 그런 거다. 누가 강요한다고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또 군소리.


처음 이곳을 안내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언젠가 DMZ 평화 순례의 길을 다녀오면서 스탭들과 밥을 먹은 모양인데 그 맛이 좋았나 보다. 남편을 따라 처음 먹어 보았을 때 나도 좋았다. 비리지도 않고 적당히 충실한 맛에 세상이 좋아하는 맛과 옛맛이 교묘히 경계를 넘나드는 그런 맛이었다. 때가 지나서인지 식당은 한산했다. 식당 앞에 간이 의자가 여기저기 놓인 것으로 보아 한창 바쁜 시간엔 줄을 서기도 하는 모양이다. 점심이 늦어 많이 시장했던 우리는 국밥과 순댓국밥, 오징어순대를 주문했다. 이 집의 순댓국과 오징어순대는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국밥을 반쯤 먹으면 소주를 주문한다. 왜 처음부터 소주를 주문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다. 국밥이 나오기 전부터 소주를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국밥을 반쯤 먹고 있으면 누군가 "소주 시킬까?" 하고 묻는다. 먹다 보니 소주가 당기는 것이다. 소주가 나오면 남은 절반의 국밥은 밥이 아니라 안주가 된다. 사람 셋이 있으면 소주 한 병으로는 부족하다. 한 사람은 운전을 해야 한다고 빠지더라도 국밥과 덤으로 주문한 오징어순대와 함께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 이상 술은 한 병 더 늘어난다. 뜨끈하고 시원한 국밥과 해물전에 가까운 오징어순대는 감칠맛이 좋으니 이보다 더 좋은 안주는 없다. 그래서 운전수를 빼고도 두 병은 마셔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때 음식을 더 시키거나 술을 더 시키면 분위기는 실망스러워진다. 배가 불러 술이든 안주든 더 마시거나 먹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술맛이 없어진다. 게다가 운전을 담당한 사람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건 할 짓이 아니다. 우리는 적당한 만족감으로 식당을 나와 바다를 바라보다가 갯배를 타고 속초 시장으로 갔다. 


속초 시장에서 제일 장사가 잘 되는 곳은 닭강정과 오징어순대를 파는 곳이다. 우리는 애들 준다고 닭강정을 샀다. 닭강정과 오징어순대를 파는 곳의 일꾼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이었는데 그들의 표정엔 피곤함과 괴로움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대부분 더운 나라에서 온 그들은 추운 남의 나라에 와서 하루종일 기름 냄새를 맡으며 닭을 튀기고 순대를 굽고 있었다. 순간 닭강정이나 순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달아났다. 그들이 일하려면 장사가 잘 되어야 하는 건 맞는데 손님들이 빨리 사라져서 그들이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까지 긴 줄에 서서 그 피곤한 표정을 더 보태고 싶지 않았다. 속초엔 닭강정이랑 순대밖에 없나? 오징어순대는 그렇다 치고 닭강정은 왜 유명한 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미안하오. 모르는 것을 물어서. 두 남자가 피식하고 웃는다. 아마도 방송이 한 일이겠지. 왜 맛있는 지도 모르면서 유명하다니까 사고.... 그래, 좋게 생각하자. 속초 경기가 좋아졌잖아. 속초 사람들 소고기 좀 묵었겠지....또 객쩍은 생각. 다음엔 다른 걸 사야겠다. 찬바람을 그대로 맞는 시장 입구에 앉아 시장에 들어서는 사람들 얼굴만 쳐다보는 할머니들. 작은 소쿠리에 담아 놓은 산나물이나 물미역 같은 걸 파는 그 할머니들의 것을 사야겠다. 정 닭이 먹고 싶으면 돌아오는 길에 동네 닭집에 들르면 되니까.


우리는 속초 시장에서 나와 다시 갯배를 타고 차를 둔 아바이 마을로 돌아왔다. 바다에 나가 파도를 바라보고 낯선 거리와 시장을 어슬렁 거리며 겨울 찬 바람에 이마를 식히다 보니 소화도 되고 술도 깼다. 아바이 마을로 들어서는 구름다리엔 울긋불긋 조명이 켜졌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집에 도착하니 9시가 넘었다. 바다 냄새가 조금 따라왔는지, 들고 온 닭강정 때문인지 우리 집 개가 유난히 반가워하며 오랫동안 냄새를 맡는다. 올해 바다를 본 거지? 그렇지. 다음엔 양양으로 가 볼까? 좋지~ 남편은 국밥집에서 먹지 못한 술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사 들고 온 닭강정 몇 조각으로 맥주를 마셨다. 


국밥집을 그리며 간판을 들여다보니 이 국밥집은 나와 연배가 같다. 맛을 떠나 60여 년간 밥을 짓느라 참 고생 많았겠다. 펜으로 스케치하고 색을 입히니 언제나 그렇듯 부족한 것만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건 역시 채색이다. 실력에 불만을 가질 만큼 노력한 것이 적으니 할 말이 없다. 다음엔 조금 나은 솜씨로 그려보자고 스스로 다독일 뿐.




21 ×29.7cm 중목, 만년필에 수채. 속초 아바이 마을 국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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