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전에 항공사에 연락해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해 두었던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사실 그런 게 있을지는 몰랐고 공항 내에 휠체어가 있으면 빌려서 타다가 기내에서는 가져간 목발로 이동해야겠다 싶었는데 항공사에서 안내를 해 준 덕분에 정말 우수한 서비스를 받았다. 원래는 탑승까지 승무원이 휠체어를 밀어준다는데 탑승장까지 함께 이동할 생각을 하니 좀 어색해서 그건 사양했다. 휠체어를 탄 아이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즐기며(?) 우리는 탑승장에 도착했고, 탑승 통로가 아닌 엘리베이터를 타고 1번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승무원들은 나의 짐을 모두 들어 자리까지 안내해 준 뒤 짐칸에도 실어주었고 아이가 불편하지 않은 지 수시로 체크해주었다. 사실 깁스를 한 아이 때문에 제일 앞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좌석 배치가 잘 안 되어서 그냥 일반석에 앉았다. 다행히 아이가 아직 작은 덕분에 큰 불편 없이 앉아서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다음 날 입국한 사람들은 비행기가 만석이어서 굉장히 불편했다는데 내가 올 때는 전체 좌석의 절반 정도만 탑승해서 여유 있게 올 수 있었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베트남 다낭으로 친정 엄마 환갑 기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아이는 불과 돌 무렵이었으니 당연히 기억이 안 나겠지만 어쨌든 아이와 나는 베트남으로의 두 번째 비행이었다. 아이는 비행기가 이, 착륙할 때 무섭다며 안아달라고 한 것 외에는 비행 내내 티브이도 보고 밥도 잘 먹으며 불편해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기 때에는 징징대는 바람에 비행 내내 아기를 안고 달래며 갔었는데 어느새 이만큼 컸구나 싶어 기분이 묘했다.
한국에서 베트남까지 가는 여정은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내가 걱정했던 것은 하노이 공항에 내려서도 휠체어가 있을지 여부였는데 다행히 현지 공항에서도 휠체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항공사 측에서 준비를 해 준다고 했다. 4시간 반 정도의 비행을 마치고 다른 사람들이 전부 내린 후, 우리는 천천히 아이의 이동을 도우며 탑승구 앞에 휠체어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는 방호복을 입은 하노이 공항 현지 직원의 도움으로 출국장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비행기에서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대행업체 직원에게 여권을 주면 입국절차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처리해 주는데 남편을 통해 연락을 받기만 했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어쩐지 비행기에서 나올 때 사람들이 오글오글 모여있더라니.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하노이 공항 현지 직원을 따라 입국장으로 이동했는데 큐알코드를 체크하고 나가야 하는 문에서부터 막히고 말았다. 방역조치를 위해 큐알코드를 만들었어야 하는 데, 그것 역시 대행업체 직원을 만나지 못해 받지 못한 것이다. 부랴부랴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남편도 당황해서 다시 대행업체에 연락을 했지만 이미 현지시간으로는 12시가 다 된 터라 연락이 닿지 않았고, 큐알코드를 체크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게다가 자꾸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현지 직원과 영어로 대화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너무 오랜만에 영어를 쓰다 보니 간단한 단어도 생각이 안 나고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번역기 생각도 못하고 더듬더듬 내 상황을 설명하며 땀을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대행업체 현지 직원이 나타나 우리를 안내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우리가 보이지 않자 이곳저곳 찾으러 다니다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큐알코드 검사대를 통과해 그때부터는 일사천리로 입국장을 통과했다. 그동안 읽어보았던 입국 후기에서는 비자 신청서를 작성해 도착비자를 받고,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서 짐을 찾는 데에도 시간이 걸려 공항에서만 몇 시간씩 대기한다고 해서 다리 아픈 아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이가 아픈 덕을 본 건지 1초도 지체하지 않고 논스톱으로 통과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진행한 업체 자체는 '패스트 트랙'을 시행할 수 있는 업체여서 대기 시간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와 아이가 비행기에서 제일 늦게 내렸는데 입국 심사대는 제일 먼저 통과했다.
친절한 공항 직원들은 아이와 나를 대신해 수하물을 찾아 호텔 버스에 실어주었고 버스를 탈 때까지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도움을 받아서 큰 어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난관은 계단이 높은 고속버스에 아이를 태우는 것이었다. 있는 힘껏 아이를 들어 올려 겨우겨우 의자에 앉혔는데 정말 땀이 쭉쭉 났다. 비행기에서 잠을 자지 않고 버틴 아이는 결국 버스에서 잠이 들어버렸는데, 호텔에 도착했을 때에는 너무 깊은 잠에 빠져버려 결국 업고 내려야 했다. 높은 계단을 내려서는데 아이의 무게 때문에 앞으로 고꾸라지는 줄 알고 정말 식겁했다. 그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지만 그 순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없었다. 물론, 코로나 시국이니 다른 사람을 함부로 만지거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해한다. 이해는 했지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 뻔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결국 하노이에 도착해 일주일간 자가격리를 할 호텔에 입성했다. 이곳에서 1주일을 지내고, 코로나 검사 2번을 거쳐 집으로 이동해 자가격리 1주일을 하게 될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무슨 정신으로 짐을 풀고 샤워를 했는지 모르겠다. 남편에게 호텔에 잘 들어왔다고 연락을 안 했는지도 몰랐다. 다음 날 남편은 연락도 없이 잠을 자면 어떡하냐고 밤새 걱정했다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무사히, 별 탈 없이 호텔에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호텔에서 주는 밥 먹어가며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해야지, 넷플릭스만 실컷 봐야지 싶었다. 아이에게도 핸드폰을 던져 주었다. 하루 종일 방에만 있는데 게임이라도 해라. 나도 좀 쉬게. 그런 마음으로. 일주일간의 평온한 호캉스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