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임울림>
주간이라고 약속하고, 계간이 되어버린 임울림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문장이 울림이 되길 바라면서 한 글자씩 눌러쓰고자 했던 다짐이 얼마나 책상처럼 어질러졌는지.
나는 그저 그런 인간인가 싶은 마음이 들면서 마구 나를 때리고 싶었고, 그게 어려워서 마구 달리고 싶었다. 폐에 피가 고일 때까지.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그렇게 달려도 위험이 느껴지면 멈춰버리는 몸. 생리적으로 가동하지 않는 나의 몸. 그러고 보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단 하나도 나의 것인 게 없다는 게 순리이거늘, 얼마나 욕망에 휘둘려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는지.
욕심은 결국 절망을 만들어 내기에 소유하지 말고 살자고 다짐해왔는데, 가져야만 인정받는 사람들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나는 결국 또 가져야만 하니 참 아이러니한 인생이다.
가장 행복했던 때로 남아 있었던 순간이 고3이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전념할 수 있었던 시간.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 공부를 마치고 들어와 눈을 감고 새벽 라디오를 기다렸던 그 시절.
어느덧 십 년이 훌쩍 지나서 오늘은 건강하고 맑았던 그 시절을 그리며 골목을 누볐다. 모르는 골목을 누비고 남들이 선뜻 가지 않을 법한 곳을 자전거와 함께 달렸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올 때 브레이크에 기대고 싶지 않은 마음. 한껏 빠른 속도로 레일을 달리다가 일상이 지겨워 옆으로 누워버린 기차처럼 스러져버리고 싶었다. 내 몸이 사방으로 쏟아져 긴 잠을 자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결국 완벽하고 안전하게 비탈길을 내려왔다. 겁쟁이.
목발 든 모자, 길목을 막아서는데 벨을 울리고야 말았다. 골목에서 담배를 뻐끔 피워대는 이들을 보면서도 나는 벨을 울렸을까. 나란 인간은 얼마나 졸렬한가.
어제, 꿈. 좋은 노래를 하나 찾았다. 꿈이라서 슬픈 나의 초상. 누워서 울지 못하는 기둥처럼 내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