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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Nov 07. 2021

#.22

주간 <임울림>

반지를 팔았다. 약 2년 전 손에 꼭 들어맞는 반지를 찾아 돌았던 종로3가를 다시 찾았고, 반지에 깃든 시공간과 다르게 반지는 저울에 달아져 그 무게만큼의 값이 책정됐다. 거래는 빠르게 이뤄져 허무할 정도였다. 거래란 냉정한 것이다. 그러다 이런 생각에 닿았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거래란 무엇일까? 물론, 사업자들의 비즈니스를 제치고 누구나 인생 일대를 놓고 생각하는 거래란 결혼이 아닐까.


<라라랜드>의 결말과 <결혼이야기>의 결말이 그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폭발적인 감정과 낭만에 젖은 한 쌍이 현실이라는 굴레를 오직 '사랑'으로만 헤쳐나가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맞다, 결국 결혼이라는 건 거래의 특성을 갖는다. 함께 길을 걸을 사람을 차갑고 냉소적으로 판단하고 두 손을 맞잡아야 하는 행위인 것이다. 선택을 할 때는 누구보다 통찰력 있게 상대방을 파악하고 선택 이후엔 견고하게 울타리를 쌓는 행위.


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꽤나 단순하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누구나 그렇듯 사회 구성원으로서 밟아온 계단을 평범한 템포로 밟는 것.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에 의문을 품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지? 오늘의 거래가 내겐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결국 장거리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는 저울 위에서 몸값을 책정받는 반지처럼 사회적 값어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꽤 늦게 이 사실을 알았고, 내가 한낯 몽상에 빠진 어린아이와 같다는 걸 인지했다.


그렇다고, 이런 내가 싫은 건 아니다. 단지 서글플 뿐이다. 누군가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사랑을 하고 그 관계를 돈독하게 쌓아나간다. 그러나 그건 그 이면에 현실적 요건이 충족돼 있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 전제는 차후 미래에 쌓아나갈 울타리를 부패하게 만들 가능성을 현저히 낮춘다. 그렇게 판단했을 때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20대의 나는 무언가를 '한다'라는 점에만 초점을 두고 살아왔다. 그 행위가 어떤 퍼포먼스를 냈는지에 대해서는 단지 운에 맡겼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30대가 돼서 책임을 등한시하는 낙인으로 되돌아왔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우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백화점 띠어리 매장에서 니트 가격을 물었다. 50 원이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눈살 찌푸려질 정도로 시끄럽게 떠드는 중년들을 보았다. 홀로 걷다가 품위 있게 늙기 위해 스스로 경제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상기했다. 경제적 힘이란 디폴트 값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탈피 중이다. 탈피를 할 때는 새살이 돋아 아리다. 온몸 구석구석이 고통이다. 그러나 어찌하리. 결국 살아야만 한다. 단지 나는 산다는 게 울면서 한 발 내딛는 것이라는 걸 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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