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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y 22. 2024

#.35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주간 <임울림>

세상의 온갖 것들이 파도처럼 덮치는 시절이 나를 엉망진창으로 흐트러뜨렸고, 이제 나는 구석탱이 벽에 기대어 앉아 장화에 들어간 물을 빼듯 숨 고르기 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지만, 심각하게 당고개 어딘가 절에 찾아가 스님께 신년운세를 묻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회사 팀장님은 사주나 점 보는 걸 좋아하신다. 야근을 마치고 역으로 가는 길에 말했다

- 팀장님, 요즘 온갖 것들이 저를 괴롭힙니다. 제 주위의 모든 것들이 아주 난리블루스를 춥니다. 저, 진짜 점이라도 보러 갈까요?

- 야, 점은 기분 좋을 때 보는 거래. 네가 일상 속에서 뿌려둔 것들이 다 너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가 보네.


일도, 사랑도, 친구도, 가족도 심지어 건강까지! 몽땅 경고등. 어느 것 하나 녹색불인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발동하는 나의 긍정. 그래도 괜찮아, 길마다 보이는 나무들이 온통 푸르니까.

불운이 내 주변을 맴돌면 그 분위기에 쉽게 빠져서 허우적거리기 마련인데, 불운이라는 그 자식이 주변을 알짱거리든 말든 그냥 두기로 했다. '왜 나한테 이런 불운이?' 대신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기로 했다.   


푸른 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공휴일을 껴서 충북 제천에 있는 리솜 포레스트에 다녀왔다. 정말 날이 좋았고, 밤에는 마실을 나가 척추가 펴지도록 고개를 들고 별을 봤다. 북두칠성이 보였다.

낮에는 녹음이 짙었고, 바람의 온도가 적당했다. 나는 가방에서 포트넘 앤 메이슨 랍상소우총 티백을 꺼내 우렸다. 마시는 차가 열심히 달려온 나를 쉬게 해주었다. 우리는 쉼이라는 것에 대해 단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행위'로 쉽게 정의해 버리는 습성이 있는데, 그렇게 쉬다 보면 쉬어도 마음의 피로가 누적되기 마련이다. 쉼의 양보다 질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쉼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메모장에 끄적였다.


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전에 내가 손수 데려온 아스라다(내가 지은 우리 집 차 별명ㅡ만화 <사이버포뮬러>의 주인공 차)를 데리고 서울에서 제천까지 종횡무진 누볐다ㅡ그 차가 아니라도 양해 바란다. 깁스한 왼손 약지가 자꾸 의도치 않게 깜빡이를 켰다. 그럼에도 내가 간만의 장거리 운전에서도, 가끔 들리는 휴게소에서 먹는 소떡소떡에서도 소박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상기한다는 게 좋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스테디 목표는 '감정하는 사람, 감각하는 사람')


감정과 감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할 수 있는 것에 제약이 생기다 보니 독서나 개발 공부에 몰두하게 된다. 최근에 김연수 작가의 단편선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다 읽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늘 충만한 느낌이 든다. 좋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 전에 초판 인쇄가 언제인지, 이 책의 생일이 언제인지가 눈에 들어올 때의 그 감정이란 이루어 말할 수 없지.

이 단편선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생각이란 육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걱정과 슬픔, 괴로움과 외로움으로 이어질 뿐이지만, 그 생각이 사라질 때 비로소 정신의 삶이 시작된다(p.242)'는 문장이, 내게 다가온 일련의 불운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했다.


결국, 삶은 동전의 양면. 어디선가 불쑥 불운이 머리를 들이밀며 나를 조롱하고 침잠시키려 할 때, 요긴하게 쓰일 부적과 같은 말 한마디를 이곳에 기록하고 싶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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