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e, I'm aging
12월 7일, 15시.
본 일정이라면, 나는 양평에 있는 용문사에 갔어야 했다.
그간 마음이 시끌벅적해서 좋은 기운 좀 받으면서 쉬어가겠다는 생각으로 몇 주 전에 템플스테이를 예약해 뒀던 것.
용문사에는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고 했고, 자주 흔들리는 나는 그 은행나무의 굳건함이 닮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날씨에 노오란 은행잎이 남아 있을 리 없겠지만, 혹여나 남아 있다면 기념 삼아 책갈피로 끼워둬야지- 하고 작은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전날 밤 용문사에 문자를 보내 일정을 미뤘다.
"오늘 하늘 참 예쁘네예. 좋은 일이 있을라나 봅니더."
누군가 인파 속에서 차분하게 던진 이 말. 내가 일정을 취소한 이유였다.
여의도 역에 도착하자마자 출구로 나가지 못할 만큼 많은 인파를 마주했다.
사람들은 한 손엔 팻말을, 다른 한 손엔 LED 촛불, 팬클럽 야광봉 등을 들고 차근차근 걸어갔다.
이미 여의도 공원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 종종걸음으로 이동했다.
국회 앞까지는 다다라야 한다는 마음으로.
목적을 위해 달려가고자 조급한 마음이 생기려는 찰나, 앞서 기재한 저 예쁜 문장을 들었다.
그분의 말을 따라, 걸으며 하늘을 봤는데 새털구름이 간격 맞춰 펼쳐져 있었다.
부처를 만나 마음을 비우려 했던 나는, 오히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얻었다.
모든 사람 마음에 부처가 있다는 게 정말이구나.
재밌게 이름 지은, 수많은 깃발들 사이를 지나 국회 앞에 자리했다.
사람들은 털모자에 방한용 옷을 단단히 껴입고 한 목소리를 냈다.
몸이 추울지는 몰라도 마음은 따뜻했다.
국회 앞 대로는 이미 인파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그럴만한 일이었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이 시대에 명분 없는 계엄은 있을 수 없으니까.
용산에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계엄 선포를 국회 탓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지만, 그게 국민의 일상을 볼모로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아무리 지독한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 안에 싹틀 아름다운 새싹이 있다면, 두고 본다.
정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계엄은 아니지. 한참 아니지.
저 정도로 개인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국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17시. 김 여사 특검안과 탄핵안 표결이 진행됐는데,
여당은 앞서 김 여사 특검안에만 투표하고, 탄핵안에는 투표조차 하지 않고 본회의장을 나가버렸다.
투표라도 했어야지. 정정당당하게. 국민이 한 표 한 표 줘서 대표하는 자리라면 투표라도 했어야지.
정말 실망스러웠다. 하루하루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 표가 그 자릴 만들어준 건데.
오명은 남기기 싫고, 권력은 유지하고 싶은 그 덕지덕지 붙은 욕망이 보였다.
그 더러운 욕망이.
그럼에도 하늘, 여의도에서 본 그 예쁜 하늘을 기억하고 다시 일어서기로.
내 마음을 딱 정확히 표현한 시 구절이 있어 남긴다.
황지우 시인의 <꽃말>이라는 시에 나오는 대목이다.
'고통의 배기통이 콱 막힌 버스가 급정거했다.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의 머리를 좌경화시킨다는 걸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