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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보리 Oct 21. 2023

디자인에 대한 나의 고찰

'디자인은 정리다'라고 말했던 하상욱 작가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실제로 내가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장이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다. 단지 내가 디자인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뿐이지, 이게 꼭 디자인의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디자인에 대한 나의 가치관은 시기에 따라, 경력이 쌓여감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또 정답은 없지만, 최소한의 공식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의도적으로 그 공식을 깨트려야 한다고 한다. 사실 내 주변에는 디자이너가 없어서 디자이너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 말에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저는 아직도 디자인이 뭔지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는 말은, '무지(無知)'가 아닌 것이다. 마치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마디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듯이,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한마디로 무엇이라 단정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각자의 시선으로, 각자의 정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디자인에 대한 나의 가치관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디자인에 대한 나의 가장 큰 가치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디자인을 대하는 일반적인 나의 태도나 관점 그 이상으로,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나의 신념이다. 정답이 없다는 말이, 모든 디자인은 각자의 매력과 개성이 있으니 모든 디자인은 예쁘다는 말이 아니다. 정답은 없지만, 분명 예쁘지 않은 디자인은 존재한다. 예쁘지 않다고 느끼는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디자인의 공식을 알고 의도적으로 깨트린 것과는 다르게, 정말 몰라서 실수로 공식을 깨트린 것 같은 그 미묘한 애매함과 어색함. 또는 잘한 것 같기는 한데 나의 취향은 아니어서 솔직히 어떤 포인트에서 감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누가 봐도 이건 디자이너가 한 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질 만큼 엉성한 디자인이 아니라면 분명 누군가는 예쁘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이게 대체 왜..?'라고 생각할 만큼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분명 누군가는 이런 디자인이 좋다고 말한다. 심지어 유행이 지났다고 표현하기조차 애매할 만큼 아주 오래전에 볼 수 있었던 디자인조차도, '나는 이런 촌스러움이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저는 그냥 이게 좋은데요."라는 말 앞에 쉽게 나의 고집을 내려놓는다. 어쩌면 디자이너로써 줏대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나의 취향이고 나는 이런 느낌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이건 이렇게 해야 예뻐요."라고 우길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디자이너로써 해줄 수 있는 것은 정리하고 다듬어 주되 그 사람이 원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가장 예쁘게 만들어 주는 것. 한마디로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해 주는 범위 안에서 제안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디자이너였다. 


실제로 나는 신입 디자이너의 초안에 대한 피드백을 줄 때에도, 고심 끝에 골랐을 그 디자인 요소들을 쉽게 건드리지 않았다. 크기와 배치만 살짝 바꿔주거나, 사용한 색상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약간의 톤만 조절해 주고, 가독성이 너무 떨어지는 폰트만 변경해 줄 뿐이었다. 초안에서 최소한의 변경으로도 충분히 정돈되고 예뻐질 수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러려면 어느 부분이 전체적으로 어색함을 주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나름대로 디자인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많이 배우고 공부를 해왔지만,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디자인을 쉽게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에 집중한다.


하지만 전에 면접에서 만났던 대표의 말처럼, ”디자인은 무조건 심플한 것이 정답이야!"라고 외치며 그렇지 않은 디자인들은 오답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나는 그날 면접을 본 후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에도 정치적 성향이 있었나?'


그게 무엇이든,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정답이라 믿으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마치 정치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그 간극이 좁혀지지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철학이 정답이고, 남들은 오답이라는 듯 거만한 태도로 비난을 일삼으며 남을 깎아내리려 한다. 그들은 너무 쉽게 단정 지어 말한다. 그런 말들을 듣고 있으면 상처가 되고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저게 정답인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서로 생각이 다르면 존중해 주고 몰랐던 부분도 서로에게 배우면 되는데 왜 그렇게까지 고집하고 비난을 할까,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동안 디자인에 대해, 나의 가치관에 대해 고민해 보면서 '정치적 디자인 성향'이라는 제목을 만들어 비공개로 글을 썼었다. 사람이 있는 모든 곳에는 정치가 존재하는 것 같다. 파가 나뉘고, 싸우고, 비난하고, 자기 생각 안에 갇혀서 남을 가르치려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너무 쉽게 단정 짓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고, 서로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어느 곳에서는 무지한 사람이다. 서로에게 길을 묻고, 도움을 받으며 이 세상을 함께 걸어 나가야 한다. 서로 다른 것은 어느 한쪽이 고쳐야 할 부분이 아니라 함께 맞춰나가야 할 부분이다.


사실 나의 취향을 비난당한 이후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알록달록하고 재미있는 디자인이 좋은데,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유치해 보이고 내가 디자인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만 보일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를 비난했던 그들처럼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미지근했다. 심플하기는 한데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원래의 내 스타일대로 다시 시안을 수정해서 보냈다.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디자인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쁘다며 좋아했고,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어디에도 정답은 없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내가 디자인을 잘해서가 아니라 늘 내가 보여주었던 이런 느낌을 원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나에게서 멋진 디자인을 기대하고 있다고 오해했고, 큰 부담을 안고서 내가 할 수 없는 디자인을 해내려고 노력했었다. 예전에 디자인회사를 그만두고 잠깐 커피를 배웠을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저 원두가 더 맛있다고 느껴져서, 갑자기 원두를 다른 걸로 바꿔버리면 안 돼요. 손님들은 커피가 맛있어졌다고 말하지 않고, 맛이 변했다고 말해요. 내 카페를 늘 찾아주는 손님들은 우리 가게의 이 맛이 좋아서 오는 거에요."


나는 분명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꿨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손님들이 맛없다고 말하거나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피드백을 준다면, 그에 맞는 노력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스타일이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굳이 다른 사람들처럼 바뀔 필요는 없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다시 나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가까이 지내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니, 모두 하는 일은 달라도 가치관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해도 매일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정답이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며, 내가 하는 일의 큰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이 곧 정답이라고. 진정한 고수는 나와 다름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는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고 배려하며 그 안에서 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며 발전해 나간다고.


앞서 말했던 정답과 완벽을 추구하는 그들도 결국 나와 다른 사람의 한 종류일 뿐이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나와는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기에 내가 흔들리거나 상처받을 필요도, 그들과 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욱 즐겁게 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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