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꿈이 있어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꿈을 꾸며 살아간다는 것이 많은 순간 눈빛을 반짝이게 해 주고, 무너지려 할 때마다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설레고 희망적이며, 내 삶의 곳곳을 알록달록하게 채워주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였다. 꿈은 빛이 났지만, 꿈을 안고 사는 삶은 그렇게 빛나지 만은 않았다. 나에게 꼭 힘이 되어주지만은 않았다. 언젠가부터 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는 것에 만족하며, 그렇게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 남들 다 하는 그 평범한 일상이 나는 왜 이리 어려울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정말 단순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평범하게 살고 있는 듯한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어려움과 사정은 있겠지만, 적어도 이 반복되는 단순한 삶의 루틴이 괴로워서 굳이 안정을 깨트리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익숙해지고, 안정되는 것이 오히려 두렵다. '내가 지금 안정적이게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 삶이 편하다고 안주하면 안 되는데,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면서 마치 숙제가 있는 사람처럼 이 안정된 삶을 마냥 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꿈이라는 것이 오히려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도대체 왜 나는 꿈이 있어서, 그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스스로 불안을 선택하고,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그리워하며 찾아다니는 것일까. 왜 나에게는 꿈이 있어서,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자꾸 나를 뒤흔드는 것일까. 꿈이 있어서 퇴사했다가, 또 꿈이 있어서 입사했다가 반복하게 만드는 걸까. 내가 일을 하는 것도,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설레는 이유도, 슬픈 이유도 전부 다 꿈 때문이었다. 나에게서 떼어낼 수도, 무시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밀린 숙제 같은 것. 본 적도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선명한 기억 같은 것. 손이 닿을 만한 거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그럼 꼭 닿을 것만 같아서 포기할 수 없는. 꿈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때로는 꿈을 잊은 듯이 살아가다가도, 내가 꿈꾸는 삶을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잊고있던 나의 꿈이 다시 눈 앞에 선명해졌다. 지금 내가 발을 디딘, 이 불안정한 단계를 넘어서서 안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아직도 꿈을 위해서 필요한 단계라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면서, 도대체 나는 뭐 하고 있나 싶다. 그렇게 직장을 다니면서 지금까지 내가 꿈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는 여전히 디자인 경험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돈은 없었고, 그렇다고 틈틈이 만들어낸 작업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피곤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조차 귀찮게 느껴지는 일상이 반복될 뿐이었다.
지난날의 나는 꿈을 위해서 디자인 회사를 다니며 더욱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꿈을 위한 더욱 완벽한 준비라고 믿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을 더 모아야 하고,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고, 아직은 실력을 더욱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조금만 더'에 집착하며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다. 아직은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부족함은 시간이 지나도 채워지지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부족했고,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렇게 꿈을 위해 직장을 다니고, 직장 때문에 또 꿈과 멀어지는 삶을 반복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퇴사가 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해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이제는 디자이너로 돌아가고 싶어도 회사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다른 길은 없었다. 디자이너와 작가, 그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는 디자이너를 내려놓고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디자이너로써의 마지막 퇴사와 함께, 나는 디자이너를 은퇴했다. 내가 꿈을 이룰 수 없도록 만드는 모든 핑곗거리가 사라지자 비로소 '내가 꿈을 미뤄온 진짜 이유'를 마주했다. 그것은 사실 내가 별 거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늘 기회와 시간만 주어진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나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오늘이라도 당장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 하니 온갖 두려움이 밀려왔다. 실제로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훨씬 많았고, 나보다 먼저 그 일을 해 온 사람들도 정말 많은데 과연 내가 그 안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했다.
'사실 내가 별 거 아니면 어쩌지?'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누구에게나 있는 평범한 능력이면 어쩌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더욱 완벽하게 처음부터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문제였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나를 ‘게으른 완벽주의자‘로 만들었고, 처음부터 잘하고 싶다는 이 말도 안 되는 마음이 오히려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고, 아직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제는 희미해져 갈 때쯤에야 나는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바뀌어야만 했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다는 생각에, '아, 나도 이젠 모르겠다!'하고 두 눈을 딱 감고 하나씩 꺼내어 보기로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세상이 아닌 나 자신과,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일단 하나라도 시작했다면 두려움은 점점 작아질 것이고, 나는 미루지 않고 실행에 옮긴 사람이 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짠!'하고 시작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반복되는 피곤한 일상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꿈을 잊지 않는 것뿐이었다. 꿈과 관련된 노래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들어보았고,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과 영상들도 찾아보았다. 그렇게 출근하면서도 듣고, 일하면서도 듣고, 퇴근길에도 들었다. 또 나처럼 꿈꾸는 자들과 함께 서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틈틈이 나눠왔다. 그렇게 우리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꿈을 키워왔다.
남들이 가는 평범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당연히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안을 향해 기꺼이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해온 끈기가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나는 자주 찾아서 듣는다. 그들도 처음에는 나처럼 꿈꾸는 자였을 테니까.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동안의 꿈들이 헛된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꿈을 이뤄야 할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