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에, 한가롭고, 느리고, 낙천적이며, 시간이나 거리 등의 현실 수치 감각이 없고, 빈둥빈둥 베짱이처럼 보이다가도 갑자기 삘을 받으면 순식간에 많은 것들을 해치우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지만 어떻게든 나를 잘 달래고 설득해서 뭐라도 하나씩 완성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시도해 봐야지’하고 모은 참고자료들과 끝내지 못한 일들만 산더미처럼 쌓이고 현실에서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나는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꿈만 꾸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브랜드를 만들었다. 작가를 꿈꾸는 디자이너의 작은 연구소, '작디작은연구소'라고 이름을 지었다. 작디작은연구소는 작가를 꿈꾸던 디자이너 시절에 운전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이름이었다. 작가를 꿈꾸는 디자이너의 줄임말인 ‘작디’와, 좋아하는 일들을 다양하게 연구하는 작은 공간이라는 의미로 ‘작은 연구소’를 붙여서 ‘작디작은연구소’가 된 것이다.
‘작디작은연구소’에서는 이런 일들을 하고 싶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촬영하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더해 굿즈를 만들고, 문구를 만들고, 책을 내고… 다양한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다. 아주 나중에는 우리만의 예쁜 공간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연구소'라는 단어를 붙였다. 이 작은 작업실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하나씩 눈에 보이는 작업물로 만들어내고 싶다. 나는 그렇게 작디작은 연구소를 세상 아무도 모르게 오픈했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내가 꿈에 그리던 어떠한 삶이 희미하게나마 저 멀리 보이는 것 같다. 꿈에 그리던 어느 곳의 무언가. 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그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아직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명확히 알 수도 없는 그 삶을 나는 오랫동안 간절히도 꿈꿔왔었다. 마치 내가 언젠가 그런 삶을 살았던 것 같은, 희미한 기억처럼. 매일을 나의 작은 작업실에서, 작은 불빛 아래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언젠가 “바로 이거야. 내가 꿈꾸던 일상이 바로 이거였여!”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나의 평범한 일상을 설레게 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이의 글, 어떤 이의 그림, 어떤 이가 만든 문구, 어떤 이가 해낸 디자인, 어떤 이가 내려주는 커피와 어떤 이가 운영하는 카페, 그리고 어떤 이의 평화로운 여름. 이런 것들을 볼 때면 설레다 못해 한동안 푹 빠져버리기도 한다. 나는 나의 일상이 이런 것들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그래서 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심지어 이런 것들이 한 풍경 안에 모두 존재한다면, 아마 그보다 완벽한 장면은 없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삶을 말하자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내리쬐는 햇볕을 맞고 연두색으로 투명하게 반짝이며 흔들리는 나무들, 어딘가에서 새가 지저귀는 여름 한낮에 나의 작은 공간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벽에는 작디작은연구소라고 작은 간판이 붙어 있다. 이곳에는 시원한 커피, 우리의 취향대로 디자인한 문구류, 직접 쓰고 그려낸 책들과 그림들이 있다. 나와 같이 꿈을 꾸던 친구들이 이곳에 모여서 함께 일하고, 또 다른 이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다면 더더욱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