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어느 디저트 가게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한 적이 있었다. 나의 디자인 포트폴리오 목표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기존의 캐릭터에 새로운 시선을 담아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었고,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 예시와 이모티콘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그리고 추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소개하고 싶어서 직접 쓰고 촬영한 캘리그래피와 풍경 사진들도 첨부했다. 며칠 뒤 연락이 왔고, 대표와 면접을 보게 됐다.
"저희 회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일단 아이디어는 너무 좋아요. 어떻게 이 캐릭터로 이런 굿즈를 만들 생각을 했어요?"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대화를 나눌수록, 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대표가 지향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는 장인정신이 드러나는 하얗고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나는 고객이 보면서 웃을 수 있는 그런 재미있는 디자인을 좋아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스타일이 확연하게 드러난 나의 디자인 포트폴리오와 솔직하다고 쓰고 무례하다고 읽을 수 있는 그 사람의 말투였다.
"근데, 전체적으로 너무 귀여워요.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 별로거든요. 너-무 싫어요. 너무 가볍고, 그냥 장난치는 것 같아."
"일단 디자인보다는 아이디어가 좋아요. 디자인은... 잘하는지 모르겠는데."
이때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어서 그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를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은, 아주 재치 있고 레트로한 디자인으로 인기가 많은 브랜드 이름이었다. 사실 나는 이 질문을 듣자마자 대표가 좋아할 것 같은 브랜드의 이름이 먼저 떠올랐지만, 잘 보이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나의 취향을 물었으니 무슨 말을 들을지 알면서도 사실대로 말했다. 나의 대답을 듣자마자 대표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 그럴 줄 알았어요. 제가 정말 딱 싫어하는 스타일. 진짜, 정말 질색이에요."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이름을 말했다. 아까 내가 떠올린 브랜드였다. 나도 생각했다. '아... 그럴 줄 알았어.' 나도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하고, 나도 그 브랜드를 좋아한다. 만약 내가 심플함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저 사람은 저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모든 사람의 다양한 취향을 존중한다. 하지만 본인이 싫어한다고 쉽게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한 번도 뱉어본 적이 없는 말들이었기에 충격이었다. 나야말로, 정말 딱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본인이 조금 안다고 해서 남을 평가하고, 본인이 싫어한다고 해서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무안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내가 아주 질색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본인이 싫어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말한 사람 앞에서 꼭 그렇게까지 표현해야 할까. 마치 한 번이라도 더 비난하기 위해서 질문하는 사람처럼.
"솔직히 나는 그런 디자인들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디자인을 못 하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하는 거죠. 디자인은 심플해야 해요. 우리는 아주 심플하고, 무겁고,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디자인을 추구해요."
사실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는 SNS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디자인 포트폴리오에 기존의 디자인 스타일이 아닌 조금 다른 시선을 담은 이유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공유하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온통 하얀색에 아주 작은 검정 글자만 있는 그 스타일이 의도적인 디자인 컨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회사에 디자이너가 없어서 이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인 줄 알았던 것이다. 대표는 자신의 브랜드가 심플함과 고급스러움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소비자들은 그 브랜드를 소개할 때 하나같이 '너무 귀엽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브랜드 로고로 사용되는 캐릭터가, 삐뚤빼뚤한 손그림과 손글씨로 대충 끄적인 듯한 귀여운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로고부터가 장인정신이나 고급스러움과는 아주 멀어 보였고, 나는 그저 이 캐릭터를 활용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다.
대표는 예전에 디자인을 조금 해봤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힘든 사람이 '나도 예전에 디자인 조금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면서 디자이너를 무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디자이너로써 일해온 시간 동안 당연히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디자인적 가치관이나 신념도 있었지만 나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고집하거나, 남을 무시하며 내세우지는 않았다. 이는 클라이언트에게도, 디자인을 모르는 상사에게도, 신입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디자인을 이미 다 아는 것처럼, 본인의 디자인 철학이 정답인 것처럼 밀어붙이며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무시했다. 마치 디자인에 정답이 있고, 본인이 그 정답이라는 듯이 말하는 그 태도야말로 정말 딱 질색이었다. 나는 신입이라 잘 모르는 것도 이해하고, 나와는 전혀 다른 개인의 취향도 존중하지만, 유일하게 이해되지 않는 사람은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무시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고등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디자인과 함께하고 있는 나는 아직도 디자인이 뭔지 모르겠는데, 그들은 잠깐의 경험만으로도 벌써 모든 것을 깨달았나보다. 나는 최근에 디자인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를 가도 이러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왜 디저트 전문가에게 디자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건지, 알록달록 재미있는 디자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비난과 무시를 당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사람은 마치 심플함과 흰색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온통 흰색이었다. 심지어 복장도 흰색만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땐 기분에 따라 다양한 옷을 입는 사람으로써 조금 우울해졌었다. 디자이너에게 무채색인 하얀 옷만 입으라니...!) 굿즈들도 모두 흰색에 검정색으로 로고만 들어가 있었다. 심플함이 아름다운 이유는 계산된 비율의 여백이 있기 때문인데, 그 비밀은 모르는 것 같았다. 어떤 상품이든 모두 똑같이 흰 바탕 중앙에 검정색의 로고만 들어간 것을 보며, 나야말로 이것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회사가 지향하는 디자인 스타일을 존중하고, 최대한 맞추고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대표는 나의 디자인 스타일을 존중해주지 않았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계속 고개를 저으며 나의 디자인 취향과,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비난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는 나를 보며 "아, 제가 좀 솔직하죠? 제가 할 말을 못 참는 솔직한 성격이라서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건 솔직함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무렇게나 내뱉어지는 말들을 솔직함이라는 단어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인쇄물을 내밀며) 이런 디자인도 할 수 있겠어요?"
"네. 할 수 있어요."
"진짜 할 수 있겠어요? 그거 쉬워 보여도 원래 심플한 게 더 어려운 거 알죠?
내가 신입 디자이너도 아니고, 당연하다는 듯이 할 수 있다고 대답했더니 대표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계속 되물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많아졌지만 오히려 입을 꾹 닫았다. 나를 계속해서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화가 나서 어떤 말을 뱉는 순간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더 받아치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지금까지도 많이 후회한다. 그날, 그 사람은 나에게 정말 무례했다.
희망하는 연봉을 물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관되게 비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회사에서 연봉이 얼마였어요?"
"그니까, 정확하게 계산해서 얼마였는데요?"
"아니, 이 연봉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으면서 왜 이 연봉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거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연봉을 받으면 안 되나요? 그럼 도대체 희망연봉을 왜 물어보신 거죠? 누가 똑같은 연봉을 받는데 굳이 이직을 하나요?’ 머릿속에서는 당장이라도 내뱉고 싶은 말들이 마구 스쳤다. 마치 '네가? 왜?'라는 듯한 태도에 황당했지만, 내가 높은 금액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고 이 금액보다 적으면 직장을 다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최소한의 금액이었기에 나도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그때보다는 실력이 더 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디자이너 채용공고에서 명시했던 것보다 경력이 높았고, 심지어 채용공고에 명시된 연봉보다도 조금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 게다가 해가 바뀌어서 최저임금도 올랐고, 이 정도 금액은 받아야 직장을 다니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자신과 디자인 스타일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금액조차도 주기 아까울 만큼 디자인을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다. 도대체 왜 디자이너는 경력이 쌓여도 그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걸까 회의감까지 들었다. 내 월급이 조금 오르면 최저임금도 그만큼 오르기 때문에 월급이 오르는 게 의미가 없었다. 일한 시간만큼 받는, 그냥 경력이 인정되어서 시급이 조금 높은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이럴 거면 알바를 하지,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굳이 하루종일 시간과 체력을 쏟으며 직장을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늘 자신 있다고 말해왔던 것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유치한 장난으로만 보인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디자이너도, 회사도, 사람들도 모두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면접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이 날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면접에서 떨어진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이제 디자이너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 조금 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욱 열심히 좋아했고, 나의 색깔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것이 면접에서 탈락한 이유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사람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 좋아할 만한 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저는 이렇습니다.'라고 표현했던 것이 '너는 너의 취향이 확고해서 바뀔 수 없겠다.'라고 보인 것이다. 이제는 세상에서도 나를 디자이너로 받아주지를 않는 걸 보니, 나는 더 이상 디자이너일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과연 이 아픔은 나에게 꼭 필요한 아픔이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누구나 참견하고, 쉽게 침범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큰 상실감이 생겼다. 돌아보면 항상 그래왔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내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고,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그만큼의 존중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