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순이 Jun 07. 2022

늘 피곤하십니까? 그럼 읽어보십시요

당신이 여기에 해당될 수도...


나는 약 5년전 피곤함에 못이겨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냐면, 소파에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 오후가 되면 너무 피곤하여 업무를 못하는 것은 물론 대화를 이어나갈 수도 없는 상태. 대화를 하는 내내 문장을 만들 힘이 없을 정도로 머리가 희뿌연한 상태. 운전중에도 너무 피곤해서 차를 세워놓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주말이 되면 나는 그 어떤 일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종일 소파에 누워있었다. 여기서 더 피곤해질까봐 외출하기가 겁났다. 내 입에서는 입만 열면 늘 피곤하다는 소리가 염불처럼 튀어 나왔다.


그래서 병원을 찾았다. 주치의는 나를 심장센터, 엔도 클리닉(당뇨나 갑상선 질환 등 대사질환장애를 주로 보는 병원)에 보내 오만 가지 검사를 받게 하였다. 결과는 '이상없음'이었다. 나는 미치고 팔짝뛸 노릇이라 의사에게 류머티스 검사도 받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의사는 단호히 안된다며 진료증을 써주지 않았다. 나는 병원순례를 마치고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회사를 계속해서 다녔다. 그러다가 피곤해서 결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눈이 약간 부으면 결근, 기침을 약간이라도 하면 결근, 머리가 아프면 결근, 피곤해서 결근. 결근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결근할 이유가 없으면 휴가를 썼다. 그리하여 결국 1년치 휴가 30일을 반년만에 다 써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 1년치의 휴가를 해변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소파위에서 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스스로 내린 진단번아웃이었지만 그 어떤 검사에도 나타나지 않고 그 어떤 의사도 진단내리지 못하는 희귀질환을 내가 앓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병을 앓고 있다면 집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병원순례를 다닐게 아니라 하루라도 기운이 있을때 여행을 다녀와야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터키로 떠나기로 했다. 한달 반 정도. 가기 전에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내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과연 혼자 배낭을 메고 걸어다니는 것이 가능할까. 다녀온 후의 대답은 가능하다였다. 터키에서 나는 날아 다녔다. 날마다 15km에서 2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다녔다. 잠자리가 집처럼 편한 것도 아니었다. 늘 여행자 도미토리에서 지내며 밥도 아주 소식을 하며 날마다 그 거리를 걸었다.  


나는 목적이 있어야 몸뚱아리를 움직이는 사람이다. 여행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현지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지 않으면 이루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행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오전 10시에 숙소를 떠나 오후 6시에 돌아왔다. 종일 돌아다녔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여행지에선 그렇게 걷고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대체로 피곤했지만 그것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건강한 피곤함이었다. 피곤함이 가신 것과 함께 사무실 오후가 되면 얼굴로 줄줄 흘러내리던 머릿기름도 사라졌다. 사흘에 한 번 머리를 감아도 머리카락이 떡지지 않았고, 머리통의 가려움증도 사라졌으며, 탈모도 호전되었다.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가 사라짐으로써 생겨난 현상이었다. 내 피부는 검어졌고 건강해 보였으며 활기를 되찾았다. 나는 이 참에 이란으로 들어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실크로드를 타고 한국으로 가버릴까 생각했지만 나는 생활인이다.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야 할 생활인. 경력에 빈칸이 오래 생기면 구직에 차질이 생긴다.(알아보니 코로나때문에 이란 여행자 비자발급이 중단되었으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도 비자를 얻기가 어렵다는 답이 나왔다.)


지중해 파타라 비치에서. 검고 건강하게 그을은 나. 병이라는 것은 어쩌면 신기루가 아닐까 싶다.


이리하여 일상생활로 돌아왔는데 돌아오자마자 '피곤'이 그간 천장에 붙어 나를 기다린 것 처럼 다시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다시 피곤해졌다. 어쩔 도리가 없다. 이 놈과 다시 살아가는 수 밖에. 이번 여행으로 깨달은 것은 나는 병에 들어 피곤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여러분, 여기서부터 중요한 얘기가 나오니 대충 흘러 읽지 마시라!


어느날, 나는 유튜브를 보다가 내 피곤함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신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어떤 중년의 여인이 자신의 증세를 한 스님께 털어 놓았는데 그 분의 증상이 딱 내 증상과 같았다.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처지도 비슷하고 증상도 비슷하고. 스님께서 진단을 내리시길, 1주일을 내리 아무것도 안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고 쉬어보아라. 그렇게 쉬었는데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은 '피곤하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럴 경우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백팔배를 하고 그 후에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면 삼백배를 하라. 그래서 몸이 무서워서라도 머리에서 피곤하다는 생각이 아예 싹 사라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스님 말씀을 듣자 나는 내가 그간 피곤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우리집 소파 위에는 '피곤'이라는 귀신이 다. 놈은 내가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기어와 내 어깨에 찰싹 들러 붙는다. 그리고는 소파에 눕게 만들고 내 전신 무겁게 잠식한다. 그래서 종일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이 달아나기는 커녕 온 몸이 아프고 피곤하다. 그러다 터키 여행을 통하여 몸을 움직이고 나면 덜 피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등산이나 야외에서 산책을 하고 오면 몸이 나아짐을 느꼈다. 야외에서 몸을 움직여야 덜 피곤한 것을 알지만, 일단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면 몸이 무거워져 집밖으로 발을 내디디기가 쉽잖았다.


독일정부에서 독일 전역의 버스, 지하철, 통일호 기차를 한달 동안 9유로만 내면 사용할 수 있는 9유로 티켓을 내놓았다. 6월부터 유효하다. 이제 나는 그것을 가지고 주말이면 등산을 갈 것이다. 물론 내 몸은 절대 그것을 내켜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야한다. 안그러면 나는 내 응석받이 몸에 속아 평생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지난주 친구들과 등산


정상에 있는 휴게소에서 콜라 한 잔


갑자기 나의 할머니가 생각난다. 내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화상을 입어 대부분의 여생을 눕거나 앉아 지내셨다. 볕이 좋은 날에는 밖으로 나와서 걸어 다니기도 하셨지만 사시사철 같은 옷을 입고 요위에 앉아 낙없이 살았다. 그러면서 늘 염불처럼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아이구 아야,

아이구 아야,

아이구 아야,

아이구 아야...


끊임없이 노래처럼 염불처럼 하셨던 그 말씀을 떠올리면 분명 나의 할머니도 아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사셨던 듯 하다. 나는 이제 내 증세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 방구석을 뛰쳐나가 활기있게 살아보련다. 내 몸이 싫어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평생 몸뚱아리에 후달리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잠깐, 저녁 산책 좀 하고 돌아오겠다. 뜻을 세웠으나 오늘도 나는 종일 방구석에서 비비적댔으니. 


무거운 몸뚱아리, 말 안듣는 몸뚱아리와 함께 사는게 참... 쉽잖다.




사진속 내 얼굴을 보면 피곤함 따위는 못느낄 것 같지만... 평소 집구석에서의 내 얼굴은 흙빛에 죽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