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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쓰니 Dec 09. 2021

자취하면 어른이 되나요? ③

다 먹지도 쓰지도 못할 것들을 왜 이렇게 많이 샀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큼직한 짐들을 대충 자리 잡아 놓으니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우리 가족은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친 뒤 곧장 대형마트로 향했다. 부족한 자취용품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자라면서도 무언가 사 달라고 졸라본 적이 없긴 하지만 그날은 특히나 말리기 바빴던 것 같다. 카트에 진열대 물건들이 종류별로 하나씩은 다 담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없어도 돼.’라는 말을 어찌나 많이 했는지.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 자취를 시작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 아빠가 정해둔 예산은 얼마일까? 지금 카트에 담겨 있는 물건들은 다 해서 얼마 정도지? 이미 예산이 초과된 것 같은데… 계산할 때 돈이 부족하면? 고향에 돌아가서 생활해야 할 돈을 나한테 미리 다 써버리는 거면 어떡하지?


    쇼핑은 카트가 거의 넘칠 만큼 가득 찬 뒤에야 끝이 났다. 계산을 마친 엄마가 영수증을 받아 들었다. 내게 보여주지 않고 얼른 넣어버렸지만 이미 계산하면서 찍히는 가격들을 봤는걸. 거의 한 달 월세에 가깝게 나온 비용. 사실상 영수증 길이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액수였다.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 여러 개의 박스와 봉지를 나눠 들으며 다 먹지도 쓰지도 못할 것들을 왜 이렇게 많이 샀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미안한 마음이 삐딱하게 나온 것이었다.

    고맙다고, 이 정도면 혼자 살아도 걱정 없겠다고 말했다면 더 좋았을걸. 엄마, 아빠의 놓이지 않는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수증 길이를 늘인 거라는 걸 알았지만 따뜻한 말이 쑥스러워 툴툴거리기만 했다.


    “뒤늦게 하나씩 사려 하면 얼마나 번거로운데! 당장 내일 혼자 밥 먹을 때만 돼도 다행이다 싶을걸? 필요한 것만 산 거야. 가지고 있으면 다 쓸 데가 있으니까 잘 사용해 봐~”


    너스레를 떨며 장 봐온 것들을 꺼내기 시작하는 엄마. ‘그래도’라고 하며 무어라 말을 더 하려다 삼키곤, 아무 말 없이 건네받은 물건들을 자리에 맞춰 넣었다. 정리정돈은 엄마와 내가, 조립과 설치는 아빠와 남동생이. 두 명씩 짝을 지어 남은 짐들을 해치웠다.


    나눠서 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잔 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시계는 이미 자정을 넘어가 있었다. 식탁을 벽 쪽으로 좀 더 붙이고 수납박스를 구석으로 밀어 넣어 어찌어찌 4인용 이부자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드디어 혼자 살게 되니까 좋아?”

    “이제 아침에 엄마 잔소리 들으며 억지로 안 일어나도 되니까 좋지.”

    “참내~ 제때 일어나서 수업은 잘 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아침에 바빠도 이불 정리는 꼭 해.”

    “알겠어, 알겠어. 근데 아빠랑 OO이는 자?”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하나, 둘 대답 없이 사라지는 가족들. 옹기종기 누워있는 엄마, 아빠, 동생의 실루엣을 찾아 어두운 방 안을 더듬더듬 둘러본다.

    모두 나보다 더 피곤한 하루였을 거야. 내일 가족들이 돌아가고 나면 정말 혼자서 사는 거구나. 지금은 빈 틈 없이 꽉 차있는 여기도 내일이면 엄청 허전해지겠지?

    뒤숭숭한 마음에 베개를 몇 번 고쳐 베다 잠이 들었다.




    아침은 금방 왔다. 근처에 마트나 편의점이 있냐는 엄마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돌아온 엄마의 손에 선물용 음료수 상자가 들려있었다. 고향으로 떠나기 전에 주인집에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는 시골 같지 않다고, 유난스럽게 이런 거 안 챙겨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인상을 남기면 살면서 더 잘 챙겨줄 거 아니냐며 옆에 있던 아빠까지 거든다. 그래, 이건 우리 부모님의 철학.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쁠 건 없겠다 생각하며 엄마, 아빠의 뒤를 따라나섰다.


    잘 부탁드린다, 지방이라 잘 와보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엄마와 아빠. 주인아주머니께서도 그 말들에 맞춰 걱정 말라는 대답을 몇 차례 반복하셨다.

    방 조건을 감쪽같이 속였다는 생각에 이미 내게는 원망스러운 분이셨지만 그 순간만큼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말뿐인 말이라도 덕분에 우리 부모님이 안심할 수 있었으니까.


    가족들은 내가 학교에 잠시 들렀다 오는 사이 떠날 채비를 하겠다고 했다. 왠지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거기서 계속 같이 지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했더니 이미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게 차를 세워두고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눈물이 많은 엄마가 먼저 울먹이기 시작한다. 대단한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밤마다 알람 잘 확인하고 술 많이 먹고 다니지 말란다. 잔소리 좀 그만하라며 대수롭지 않은 척 엄마를 차 쪽으로 밀어 보낸다.


    “누나! 잘 살아~”

    “잘 살고~ 고향 도착하면 전화할게~”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하는 남동생과 엄마, 아빠를 향해 빨리 가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데 왜 자꾸만 울컥울컥 눈물이 나는지. 자꾸만 마음에서 무언가 차올랐다.

    이별의 순간이 되니 혼자서 할 수 있다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혼자서 해내야 하는 두려운 일들처럼 다가왔다. 아쉬움과 막막함에 옷소매가 자꾸 젖었다.




커버 이미지 출처: flat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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