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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더레코드 Jan 15. 2021

우리, 이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H.O.T.의 '빛'을 듣다 자영업 구조조정을 떠올리다

 1996년 겨울 등장했던 남성 댄스그룹 에이치오티(H.O.T.).

 호박만한 장갑과 모자를 쓰고 폴짝폴짝 뛰면서 귀염성 폭발했고, 인기도 폭발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귀여움과 상반되게 H.O.T.의 인기는 우리 대중문화시장 전반에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의 지배체제 구축의 신호탄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IMF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및 거대자본에 종속된 우리 경제 전반의 질서재편과 똑 닮았다는 점 또한 신기한 대목이다.

 댄스그룹을 좋아하지 않지만 듣게 되면 끌리는 노래가  개는 있는데, 요즘엔  H.O.T. 노래 가운데 ''이다. 1997 11 터진 IMF외환위기가 서민 개개인의 삶의 위기로 몰아쳤던 1998 가을에 나온  노래의 내용은 '어렵고 힘들어도 죽지말고 서로 의지하면서 힘내서  살아보자' 것이다. 떠올려보면 그땐 다들 정말 눈물나게 힘들었다.  그대로 사람들이 길바닥으로 내쫓겼다. 당시 대학 축제인 '대동제' 열리고 있던 5, 불어로 '' 뜻하는 중구 쁘렝땅백화점(당시 백화점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지금 서울지방노동청 자리)  지하도는 노숙하는 사람들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노랠 듣고 있으면  지하도의 쿰쿰한 냄새가 덮쳐오는 기분에 처량해지기도 한다.

 그 이후로도 단군 이래 우리 경제가 좋았던 적이 있었냐고 하지만, 요즘 다시 위기가 몸에 와 닿는다. 가게에 손님이 없고, 거리에 사람이 없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올리고 생활방역의 고삐를 바짝 죈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 돌아다니면서 돈 쓰는 고전적 소비심리는 이제 꽁꽁 얼어 붙은 뒤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사실 모두 어렵기는 22~3년 전 IMF 외환위기 때와 똑같지만, 차이 또한 크다. 당시엔 한국, 말레이시아 등 동아시아 지역에 국한된 위기였다. 그리고 다국적 기업과 자본들은 이 나라들의 위기를 철저히 이용, 경제산업 및 고용의 구조를 조정했다. 이른바 외환보유고 지원의 조건이었던 공공, 노동, 금융, 교육의 4대부문 구조조정이 바로 그 핵심이었다.

 뭘해도 잘하는 우리나라는 불과 4년도 되지 않아 IMF의 관리체제를 탈출했다. 하지만 당시 4대 구조조정 중 하나였던 노동시장 유연화는 현재의 비정규직 제도로 남아 여전히 청년 구직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고, '정규직vs비정규직'은 사회경제적 계급으로 고착됐다.

 코로나19가 휩쓴 뒤 세계 경제 상황도 22~3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전과 분명 당시와 다를 것이며, 그럴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 성장을 떠 받치는 수출 주력인 가전과 휴대전화, 반도체, 선박 등의 대표 물건들은 기존처럼 잘 팔릴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유효수요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에 세계 각국 정부는 이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풀고 중앙은행 금리를 잡으면서 시장의 유동성(현금)을 유지시킨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대기업들이 만들어 파는 제품들에 대한 국내외의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의 국내 상황이 심각해져도 정부가 고구마 삼킨 듯 3단계로 넘어가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중소, 대기업들이 일정 기간 문을 닫아버리면, 물론 어떻게든 먹고는 살겠지만, 회복 기간은 문닫은 기간의 몇 배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른바 '불주사'처럼 백신을 국민 대부분이 맞을 때까지는 1.5~2.5단계를 오가며 생활방역의 강도를 조절할 것이고,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도 그 강도에 따라 출렁일 것이다. 낮은 금리로 시장에 풀린 유동성(현금)은 지금처럼 주식시장으로 계속 몰려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난해 대유행의 시작 때부터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공식적이고 구조적인 승리를 선언할 때까지의 기간은 강제된 자영업 구조조정期라고 볼 수 있다. 큰 공간에 따른 높은 임대료, 많은 종업원을 둔 자영업의 비중은 줄어들고, 업주 1인 혹은 무급가족종사원만으로 돌아가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게 될 것이다.

 전 국민이 백신 접종을 마친다 해도 한 번 고개를 들어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급격한 변동과 충격에도 살아 남을 수 있는 형태의 영업이 가능한 업종과 업장만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쇠퇴한 자영업은 다시 예전의 영화를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은 월급 나오는 직장에 어떻게든 붙어 있으란 이야기. 씁쓸하지만, 슬프지만 사실이다. 창업을 하고 싶다면 무조건 세컨잡으로만 하란 뜻이다. 망해도 경험이라 생각할 수준의 소자본을 들여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사이에 정부의 거리두기 완화 방침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담은 기사가 나오고 있다. 완화조치는 9시 집합금지를 풀지는 않고, 카페 자유화 정도로 끝인 것 같다.

 이 정부는 헬스장, 노래방, 호프집 등등 힘없는 소상공인에 대한 제한 조치는 쉽고 과감한 거 같다. 표가 많거나(종교) 돈이 많거나(대기업) 힘이 있는(의대생) 이들에겐 비굴하리만큼 관대하고... 다른 정권이라고 달랐겠냐마는 사람이 먼저라고 했던 이 정권은 좀 세심하고 다를 거라 기대했는데...

 차가운 분노가 끓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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