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프더레코드 May 06. 2022

[연재소설]98년 4월 25일 잠실체조경기장

지어낸 이야기 1

 길버트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공원을 두바퀴째 돌고 있던 3월 말 어느 저녁이었다. 소식을 전한 빌리의 메시지는 짧았다.

"길버트 아웃, 지금 바로 다 정리하고 거기로"

 핸드폰을 공원 호수에 던져 버리고 다 정리한 뒤 택시를 타고 대학로 그 곳에 도착한 건 한 시간 뒤였다.

지금은 사라진 육교 아래 예전 던킨도너츠가 있던 건물과 스타벅스 사잇길로 들어가 낡은 여인숙이 나오면 왼쪽으로 틀어 들어가 옛날 다가구 주택 사이 골목을 쭉 따라 가다 차 한대가 겨우 다닐만한 길 바로 맞은 편 골목 세번째 집 반지하에 '거기'가 있다.

 딱 마우스패드 크기의 나무에 지워지기 직전의 분필 글씨 궁서체로 '우드스탁2'라고 써 있지 않았다면 BAR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으리라.

 어차피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었기에 눈에 띄지도 않는 간판 따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술집보다 책방이 하고 싶었던 사장님은 이미 2년 전, 그러니까 2022년 4월 믿을만한 단골 몇명에게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가게 운영에서 거의 손을 뗀 상태였다. 그래도 비번을 알고 있는 단골 멤버 중 누군가가 냉난방기나 냉장고, 화장실 등 문제가 있을 때 문자메시지를 남겨 놓으면 얼마 뒤 고쳐져 있는 걸로 봐선 최소한의 유지보수는 하는 듯 했다. 물론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표시만 있을 뿐 답신은 없없다.

 도어록은 해제돼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조도가 낮은 필라멘트등 하나만 켜진 어둑한 가게 구석에 커크가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눌러쓴 채 빈공간 어딘가를 초점없이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이! 루디, 왔어?"

 다시 등뒤를 확인하고 문을 닫은 나는 환풍기 전원줄부터 잡아당겼다. 입구 맞은편 주류 냉장고에서 버드와이저 한 병을 빼들고 커크와 마주 앉았다.

"빌리는 오래 걸리네? 급하게 소집하더니 말야"

"자식, 새 여자를 사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설마 떼놓고 오느라 오래 걸리나"

 커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가 가져다 놓은 맥주병 뚜껑을 라이터로 따더니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다시 냉장고로 가려다 말고 그냥 벽장에 놓인 잭다니엘을 글라스에 더블로 채운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에 놓인 커크의 담배를 하나 빼 물었다.

 "그래, 글렌 떠나고 끊었으니까 2년 만에 피우는 거네?"

커크가 담뱃불을 붙여주며 옛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게, 벌써 2년 됐네. 그런데 길버트는?"

꽁초를 빈 맥주병에 집어 넣은 커크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감전사. 화장실에서 젖은 손으로 드라이기 코드 꽂다가 죽은 걸로, 그럴듯하게 꾸민거지 뭐"

"그래? 누가?"

"누구긴 누구야! 그놈들이지. 머리카락도 몇 가닥 없는 놈이 평생 안하던 드라이를 갑자기 왜 했겠냐. 원래 드라이어도 없었을 걸"

언제나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커크의 말투엔 반박하기 어려운 설득력이 있었다. 더 물어보려고 할 때 빌리가 도착했다. 기내용 캐리어와 함께였다.

"제이슨, 위엣 아직 안 왔어?"

 글렌, 길버트, 커크, 빌리, 제이슨, 위엣과 나까지 7명의 동갑내기는 1998년 4월 25일 잠실 체조경기장에서 처음 만났다. 공통점은 세 가지였다. 모두 대학 새내기들이었고 사상 첫 메탈리카 내한공연장의 제일 저렴한 6만원짜리 자리에서 호시탐탐 앞으로 가보려고 했다는 것, 그리고 메탈리카의 전곡을 따라부를 수 있었다는 것.

 그날 처음 만난 우리 7명은 메탈리카 카피 밴드를 결성했고, 드러머인 제이슨과 신디사이저인 위엣은 이후 부부가 됐다. 물론 부부의 연은 그날 맺었던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



작가의 이전글 going home-김윤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