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자신밖에 없었던 삶에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 일상을 함께하게 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두 존재는 첫 조우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서로에 대해 인지하고, 이해하고, 예상하고, 그렇게 '습관화'된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우리 가족이 '가슴으로 낳은 우리 털북숭이 아들(제노 엄마는 때때로 이렇게 제노를 부른다)'과의 관계에 있어 서로가 서로의 습관이 되기까지, 그리고 잠시 녀석이 곁을 비운 지금 깨닫는 무의식적인 습관들에 관한 짤막한 소개이다.
당시 아직 엄마나 아빠라는 입장을 겪어보지 않았던 우리에게 있어 제노의 존재는 단순히 반려견을 넘어 처음으로 책임지고 돌보는 이 세상에 '갓 난 존재'였다. 어느 정도 훈육과 기본 훈련을 받은 성견이 아닌 백지상태의 영아를 데려와 하나하나 가르치고, 돌보고,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하는 도전이었던 것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잠재되어 있던 모성과 부성이 깨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갸우뚱거리며 올려다보거나 물끄러미 시선을 던지는 어린 제노의 모습부터였을지도. 이 나약한 존재를 우리가 책임지고 가족으로서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제노 엄마의 모성은 무한한 인내심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배변 훈련이나 식사 훈련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아가 제노는 매일같이 사고를 쳐댔다. 한숨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치워놓고 돌아보면 또 다른 사건이 벌어져 있었다. 천진난만한 눈빛이 때로는 순수한 소악마로 느껴질 정도로 황당한 순간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와 제노를 다독이고 모든 사건 사고와 그러한 흐름을 하나의 일상적인 '습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제노 엄마의 모성애였다. 아무리 사고를 쳐대도 우리가 책임지고 품기로 한 자식이고, 태어난 지 두어 달밖에 지나지 않은 녀석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낯설게 느껴지겠냐는 그녀의 말에 나는 매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제노는 점차 우리와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져 갔고, 우리 역시 녀석을 진정한 '가슴으로 낳은 털북숭이 아들내미'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수 있었다.
모성은 선천적 본능이고 부성은 후천적인 본능이라는 말이 있듯 제노 아빠로서의 부성애는 제노를 데려오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부터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제노가 초대형 사고를 친 어느 날이었다. 우리가 외출한 사이 제노는 진정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소중한 물건들을 망가뜨렸다. 전부 갉아져 가루가 되어버린 탓에 형체조차 알아볼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우리가 앞으로 제노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고 녀석의 거취에 대해 여러 대책을 떠올릴 정도로 대형 사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방향에서 봉합되었다.
제노가 저지른 사고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앞으로 감당 못할 테니 녀석을 다른 곳에 보내든가 어찌 되었건 정리하는 편이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순간 제노를 향해 솟아올랐던 모든 분노가 확 가라앉으면서 '우리가 책임지기로 한 생명이고 보호할 의무를 가진 어린 존재'라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감당 못할 일을 벌여놓는 무책임한 어른이어서는 제노에게도,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도 좋은 부모나 보호자일 수 없었다. 그렇게 책임이라는 것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감당하고, 그 방법을 터득하며 차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 믿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해도' 제노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나는 자신을 '제노 아빠'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제노 앞에서 자신을 '형'이라고 지칭하던 내가 어느 샌가부터 자연스럽게 "제노! 아빠랑 산책 가자!"고 외치고 있었다.
제노를, 그렇게 우리 가족을 외부환경으로부터 지켜야겠다는 '보호 본능'이 바로 부성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책상이나 컴퓨터 앞에서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현대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운동을 하기 위한 억지 시간을 짜내지 않는 이상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는 길과 유리되어 있다. 햇빛을 쬘 야외 활동이나 여가가 부족해 비타민 D 결핍 현상이 일어나는 일도 자연스러운 오늘날이다.
시베리안 허스키를 키운다는 것은 그런 일상적인 삶에 매일 1~2시간씩 야외로 나가 걷거나 뛰어야만 하는 스케줄이 생기는 것이다.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가장 한적하고 시간이 남는 이른 새벽에 산책이나 운동을 했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엔 늦은 밤에도 꼭 바깥공기를 마시며 비교적 긴 시간 몸을 움직여야 했다. 실내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끊임없이 쳐 대는 반려견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충분한 야외활동 시간이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제노 역시 마찬가지다. 산책이나 운동을 시켜준 날은 하루 종일 얌전하게 그리고 귀엽게 굴지만 사정이 있어 그렇지 못한 날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거나 밖에 나가자고 신경질을 부리곤 한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 사고는 주로 '저 스트레스 받았어요!' 하는 일종의 항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운동을 하게 되고 야외활동에 끌려다니다 보니 어느 샌가 제노 엄마도 나도 '건강해져 버렸다'. 실제로 예전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감기나 몸살 등으로 고생하곤 했는데, 제노와 본격적인 강제 야외활동을 시작한 이후 우리는 지금껏 아픈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얼떨결에 운동을 하게 되니 잘 먹고 잘 자게 되고 체력이 좋아지는 동시에 체질적으로 면역이 강해진 것이다.
녀석이 따라오는 것도, 내가 쫓아 뛰는 것도 참 즐겁다. '너, 체력이 많이 늘었구나?!' 싶다가도 어떤 날은 '그래도 아직 아빠는 못 따라오네!' 하면서 놀리다 보니 어느덧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어 있었다. 내 몸매는 순식간에 결혼 전으로 돌아갔고 체력은 군 시절보다 좋아진 듯했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존재감이었다. 아이를 갖거나 이사를 생각함에 있어서도 제노의 존재를 고려해야만 했다. 어릴 적부터 아이와 함께 잘 지낼 수 있도록 훈육시켜야겠다는 각오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거주지를 고려할 때에도 제노와 함께 운동하기에 좋은 공원이나 산책로가 갖추어진 환경이어야만 한다는 마음이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경중을 논하는 것이 조금 우스울지는 모르겠지만 근처의 공원이나 산책로 등의 녹지 공간 유무 여부가 교통 환경이나 학군만큼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실제로 지금은 도심 한복판에서 제노를 데리고 다니다 보니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녀도 산책로나 제노에게 보여줄 수 있는 풍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가끔 애견 학교에 보내 신나게 뛰어놀게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좀 더 맘껏 지낼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러니 공원이라도 가까워야 한다.
여건만 된다면 제노가 맘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많은 희망사항을 갖고 살거나 이루고 싶은 바를 여럿 품고 살아가지 않는다. 그런 내게 어쩌면 앞으로 실현하고 싶은 꿈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많은 분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중 대형견을 실내에서 기르려면 덩치에 비례하여 공간이 넒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너무 비좁은 공간에서 허스키나 말라뮤트, 골든 레트리버를 기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견종에 따라 적정한 집의 평형대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중 대형견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서도 함께 할 수 있다. 다만 굉장히 무거운 전제 조건이 따른다. 거르지 않고 '하루 2시간 이상의 야외 활동'이라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집이 작은 오피스텔이건 100평이건 상관없이 반려견도 견주도 불편한 동거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차피 야생 들판을 달리던 녀석들에게 있어 단칸방이나 초대형 거주지나 똑같은 실내의 휴식공간이고 '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바깥공기를 쐬어주는 것, 다리를 움직이게 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바깥에서 일이나 활동을 하고 돌아와 집에서만큼은 편하게 두 다리 뻗고 쉬고 싶듯, 반려견들 역시 집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자신이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제노가 애견학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에는 예쁜 공주님이 태어났다. 가슴으로 낳은 털북숭이 아들내미에 이어 새로운 가족이 탄생한 것이다. 허스키를 어릴 적부터 기르면서 사실 육아에 대해 '그와 비슷하지 않겠어?'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막상 닥친 육아라는 현실에 말 그대로 멘탈이 붕괴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지인들에게 아가 하나 육아하는 것보다 허스키 세 마리 기르는 게 쉬울 것 같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제노가 처음 우리 가족이 되었을 때에도 육아만큼 힘들면 힘들었지 쉽지는 않았다. 다만 그러한 부분이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었을 따름이었다. 육아는 제노를 기르는 것보다 손이 훨씬 많이 간다. 사료 그릇에 사료만 담아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배변만 적당히 치워주고 장난감을 던져주면 시간을 보내던 제노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이제는 젖병을 물리는 것도, 여러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들에도 제노와 서로 익숙해져 가던 시절처럼 적응해가는 느낌이 든다.
육아와 때마침 겹친 업무들로 제노 이야기를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컴퓨터를 켜둔 채 잠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16화는 인고의 시간 끝에 탄생한, 가장 소중하고도 기쁜 이야기로 남게 될 것 같다.
지금은 오로지 제노와 우리 이야기뿐이지만, 언젠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 털북숭이 아들과 반질반질한 딸이 함께 자라는 모습을 이야기로 꾸며내어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도 제노가 기를 불어넣어주고 간 허스키 인형을 빤히 쳐다보는 딸에게 매일같이 말해준다.
"아가야, 제노 오빠한테 인사해! 조금 바보 같지만 한없이 착하고 순수한 털뭉치 오빠란다. 오빠가 돌아오면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한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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