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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맹 Apr 17. 2020

계획한 대로 살 수 있다는 건 행운

 초 설 명절을 보내는 동안 시어머니는 여러 번 당신 지인의 딸과 통화해보기를 권하셨다.

어머니의 워딩에 따르면,

그녀는 변호사라는 그 좋은 직업도 다 제쳐두고 둘째 아이의 발달치료에 엄청난 금전과 시간을 투입한 결과 아이가 지금은 말을 아주 잘하게 됐다는 발화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

전화번호를 알려줄 테니 그 비결이 뭔지 배워 보라는 권유였다.

며느리인 내 입장에서 받아들이기에는,

치료를 좀 더 공격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의 돌려 깎기와 다그침이기도 했다.


멀쩡한 아이한테 장애는 무슨 장애냐며 나무라시던 시어머니가 보시기에도

여직 말 한마디 못하는 곰이가 이제는 좀 다른 느낌이기는 한가보다.

나는 그냥 그렇게 넘기려 했는데,

남편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더 늦기 전에 ABA 조기교실을 보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꺼냈다.

하루 2~4회 치료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자조활동 훈련까지 병행하는 곳에 보내자는 거다.


곰이는 주 4일 어린이집에 가고 평일 닷새 모두, 주에 여섯 번 치료를 다니는 중이었다.

그나마도 작년 가을 식사를 모두 거부하는 와중에 치료를 줄였다가 다시 늘린 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내가 왜 변명하는 것 같은 구차한 기분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은 아이가 더 많은 치료 횟수를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는 ABA 조기교실에 좀 부정적인 쪽이었다.

상담을 다니다 보니 대체로 그걸 운영하는 곳의 원장들은 아이의 기질이나 현재 컨디션과 상관없이 많은 치료를 집중적으로 쏟아부어야 한다고 권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애초에 ABA 이론이 보상 부여나 환경 조작이라는 일차원적인 기법을 이용하여 개나 돌고래를 훈련시키듯 발달장애 아이를 교육하려는 접근법에서 시작하는 거라 자폐 증상이 두드러지지 않는 곰이에게 적절한 치료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 ABA 이름을 달지 않고 조기교실을 운영하는 여러 곳을 찾아 전화했다.

예상했던 대로 비용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고, 그래서인지 지역 가까운 곳에는 적당한 데가 없었다.

그중 오전 이동시간이 40분 남짓인 용인의 한 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거기에서도 역시나

"발화를 위해서 좀 더 아이에게 푸시를 많이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요."라고 했다.

자식의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상황도 알지 못하면서,

굳이 저런 말을 덧붙이는 걸까.

발달센터 원장들 잘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가슴에는 늘 비수가 꽂힌다.


다시 찬찬히 고민...

가을 겨울을 보내면서 아이는 부쩍 자라 최근에는 새로운 치료에 들어갈 때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한 시간 텀을 두기는 했지만 하루 두 번 치료도 거뜬히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프로그램과 운영방식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먼 거리, 어린이집까지 유지하는 게 문제이기는 했지만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과 저녁마다 회의 아닌 회의를 했다.

이동거리가 길다.

예민한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되면 퇴행이 올 수도 있다.

프로그램은 괜찮다.

아이가 컸다.

가시적인 효과는 뭘 해도 미미하다.

이것마저 할 수 없는 시기가 되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결론은,

가을에 하자.

겨울을 나는 동안 시끄러운 옹알이가 많아지고 단어 모방도 조금씩 늘고 있는 중이니

일단 큰 변화로 인한 부작용을 피하고,

치료를 늘려 적응시킨 다음 보내보자.

일단은 어린이집 새 담임 선생님과 친해지고,

늘리고 있는 치료에 재미를 붙이는 데 집중하자.


아, 그런데 코로나가 왔다.

어린이집은 휴원을 거듭했고,

최근 치료를 많이 늘린 시립 복지관은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뜻하지 않게 긴 방학이 시작되었다.


집돌이 곰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걸 너무 좋아했다.

손대지 않던 피아노 뚜껑을 열어 띵까띵까 놀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도레미파솔라시도"와 "도시라솔파미레도"를 보여주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집안 곳곳에 처박혀 있던 장난감들이 죄다 나와 거실을 점령하고

곰이는 엄마가 집안일을 마치기 무섭게 같이 놀자며 매달렸다.

정말이지 행복해 보였다.



문제는 생활리듬이었다.

아빠가 퇴근해 들어오는 저녁부터 각성이 시작되면

새벽 1시는 예사이고 3시, 4시까지도 잠들지 못하고

더 놀겠다며 울고불고 생떼를 부렸다.

그러곤 다음날 아침 8시에 멀쩡하게 일어나 노는 날도 많았다.

낮잠도 자지 않고 새벽 1시까지 버텼다.


곰이는 너무 좋은 거다.

집에만 있는 게.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위해서

슬금슬금 사람들 눈치를 보며 아이와 마스크를 하고

수목원과 공원을 산책했다.

좀 더 일찍 자기는 했지만 잠깐이었다.


그리고 치료가 중단되었다는 불안감.

나는 치료 자체의 효과가 가시적일 만큼 크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처음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한창 시끄러웠던 곰이의 목청 큰 주절거림이 한 달 사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안 되겠구나.


전염병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이니

복지관의 운영 재개도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복지관 시간표를 무시하고 센터 일정을 더 잡았다.

다행히 곰이는 치료 가는 걸 놀러 나가는 것처럼 즐거워한다.

확실히 아이가 힘들어하는 건 어린이집 단체생활이구나.


저렴한 복지관 치료를 대신해 사설 센터에 일정을 잡다 보니

한 달 치료 비용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지금 어려운 사람 한둘이 아닌데.

당초 계획대로 가을부터 조기교실에 보낼 수는 있을까.

그러자면 예상되는 불황 속에 남편 또한 살아남아 있어야겠지.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행운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을 살다 보니,

내 삶이 내가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오늘 저녁 반찬으로 뭘 만들까, 정도.

일하고 싶다고 일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낳을 수 있는 게 아니고,

건강하고 싶다고 건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삶이 주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사고, 질병, 혹은 운명 앞에서

나란 존재는 얼마나 약해 빠졌는지.

곰이 치료를 두고 이리 재고 저리 재느라 밤잠 설치던 날들이 우습다.


몸이 더 굳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매일 물리치료를 해야 하는

지체장애 자녀를 둔 엄마가 기자들 앞에 나

복지관의 갑작스러운 휴관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우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하는 저 엄마의 심정을,

감히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TcbWsPgf-4

복지관의 주간보호센터에서 일과를 보내던 그 아이들은 지금 휠체어를 타고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리고 곰이처럼 집 바깥에서 생활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아이들이 다시 이전의 일상을 찾으려면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발달장애 아이들이 다시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

그건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자유롭게 내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며 살고 있는 줄 알았어."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학교 방과후수업에 나가고 있는 친구가 마찬가지로 사교육 시장에 있는 남편과 함께 벌이가 끊겨 어려워지면서 한탄처럼 나온 말이다.

조직생활을 안 하면 자유인인 줄 알았더니 더 큰 시스템 안에 갇혀있는 줄을 모르고 살았다며 씁쓸해했다.


재난의 쓰나미가 밀려오니 약한 사람들부터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그래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

모두가 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이 와중에

어떻게 내 사정부터 봐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까맣게 잊지는 않았으면.

어떤 순간에도 우리 모두의 삶은 하나하나 다 소중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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