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보름을 보내며.
¶ 신입생 아들을 교실로 들여보내며
처음 입사했을 때 내 다리는 성할 날이 없었다.
원래도 잘 넘어지는 데다가,
의욕은 넘치는데 동선이 익숙지 않으니
혼자 엎어지고 복사기에 부딪치고 책상다리에 걸리며 몸개그를 했다.
공부 잘한 학생이었고
공채 시험에 합격해 입사했지만
사소한 심부름도 물어물어 겨우 해내는
얼탱이 새내기일 뿐이었다.
아무리 공부하고 준비해도 새내기는 원래 모자란 존재다.
당연한 거다.
곰이 입학이 다가오면서
내 위장은 아침마다 배를 쥐어짜며
담대한 척하는 나를 비웃었다.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모자란 것 투성이었다.
애초에 모자랄 게 없었다면 준비도 안 시켰겠지만. ㅋ
학교에서 할 만한 것들 중 무엇 하나도
음, 그래 그건 그 정도면 괜찮아.
라고 마음 놓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입학식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아, 될 대로 되라지.
나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애랑 열심히 놀러 다녔다. ^^
아무리 열심히 연습시켜도
곰이는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얼빵한 신입생이 된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보다 적응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릴 거다.
그건 당연한 거다.
최선을 다하지만, 현실은 받아들이자.
괜한 엄마 욕심에 아들은 충분히 고생했다.
고생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것도
곰이가 앞으로 살아낼 인생의 일부이다.
모자란 채로 나이를 먹는 것도 그렇다.
나 또한 나이만큼의 어른이 아닌데,
아이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고 나이를 먹었다며
전전긍긍하는 내가 우습다.
¶ 역시나 곰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이 먹으라고 하면 먹는 척은 하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역시나였다.
기관에서 한 번도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걱정에
첫 급식부터 도움반에 내려가 시도했지만
아이는 입학 후 쭉 밥을 먹지 않고 하교하고 있다.
기본 생활인 식사가 전혀 되고 있지 않으니
도움반 선생님의 전체적인 평은 꽤 부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어린이집에서 단 한 숟가락도 먹지 않던 아이가
학교에 갔다고 갑자기 급식을 먹는 것도 퍽 이상한 일이다.
언젠가는 먹겠지.
엄마가 더 태평하네.
대신 아이는 하교 직후 집에서 점심밥을 아주 잘 먹고 있다.
밥 실랑이를 하느라 하염없이 등원이 늦춰지던 어린이집 시절과 달리
잘 먹던 밥도 시간이 되면 야멸차게 치워버리니,
아이는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당연한 것처럼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받아먹는다.
와.
그동안의 내 개고생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선생님이 아침밥 꼭 먹고 오라고 하셔서 그러나...
정답 없는 추리를 해본다.
여하튼 하루 두 끼 채우기 어렵던 아이가
삼시 세끼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고 있으므로
엄마로선 학교급식 그까이꺼 좀 안 먹으면 어떠랴 싶다.
게다가 코로나 덕에 5교시인 날도 12시에 수업을 마치니
당장은 아직, 괜찮다.
언젠가 준비가 다 되면,
곰이도 학교에서 밥 먹고 오는 날이 있겠지.
¶ 곰이의 학교생활은 깜깜밤중
학교에 들어가서 생긴 변화 중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건
아이의 오전 일과를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집에서야 말 못 하는 아이 대신
그날의 활동과 특이사항을 선생님께서 이야기해 주시고,
친절하게 사진도 찍어서 따로 보내주시곤 했지만
학교 선생님이 그렇게 해주실 리 만무하다.
학급 알림장 공지에 전체 일과만 간단하게 언급이 될 뿐
곰이가 어떤 태도로 무슨 활동을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대답 없는 아들에게 물어봐야 내 질문만 메아리칠 뿐이다.
그룹 수업을 함께 했던 엄마들과 얘기해보니,
언어 전달이 잘 안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엄마들은 모두 분리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
혼자 끙끙대지 말고 담임과 통화를 한 번 하라는 조언이 많았지만,
나는 아침 등교 시간에 아이 실내화 갈아 신는 걸 도와주며
담임 선생님과 꾸벅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을 뿐
다른 이야기를 더 나누지는 않았다.
통합교실에 지원 가셨던 지도사 선생님 말로는
"잘 앉아는 있으며,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 비슷~하게 해 보려 시도는 한다"더라고
도움반 선생님을 통해 한두 번 전달받은 내용이
아이 학교생활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처음 일주일 동안 나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면 다리에 힘이 풀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망원경이라도 설치해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말 못 하는 아이에 대하여, 한 번쯤 먼저 전화를 걸어 물어줄 수는 없는 걸까,
담임교사에게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참고 기다렸다.
¶ 일은 이미 벌어졌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 장애가 있어도 아이는 여덟 살, 어엿한 학생
아이는 학교라는 새로운 사회에 첫발을 들였다.
학교에 가도 되는 나이가 되어서 간 거고,
가도 되겠다는 판단을 해서 보낸 거다.
그럼 믿어야 한다.
엄마가 유치원 가는 다섯 살 아이 취급을 하면
아이는 여덟 살로 살 수 없다.
여느 아이들처럼 자기 일과를 이야기해 주지 못한다고
저희 아이만 다섯 살인 걸로 생각해 주세요, 하면
곰이는 학교에 가서도 다섯 살로 살 수밖에 없다.
학생이다.
아무리 엄마라도 자식이 학교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을 알 수는 없다.
알려고 하는 건 욕심이다.
다만 잘해주기를 기도하며 잔소리 폭탄을 준비할 뿐. ㅋ
£ 잘하든 못하든 그건 아이와 선생님의 일
집에서도 단번에 안 되는 지시 수행이 학교라고 잘 되지는 않겠지.
바지에 오줌 싸서 오지는 않는 걸 보니 교실이 그렇게 무섭지는 않은가 보다.
오늘은 필통 정리가 엉망이네. 요 녀석이 직접 했구나, 기특하다.
교실을 돌아다니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수준이면 벌써 전화가 왔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오히려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없는 게 다행으로 여겨지고 마음이 편해졌다.
학급 알림장을 매일 받다 보니 선생님의 스타일도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전달사항은 명확했고, 소통과 준비는 노련했다.
아이들에 대한 언급도 중립적이었고, 간결했다.
마음이 놓이기 시작하던 중
비대면 학부모 총회와 교과과정 설명회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의 태도와, 한 반 다른 엄마들도 걱정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마음이 좀 더 놓였다.
특수교사인 도움반 선생님은 학교에 새로 오신 분이라
통화만 몇 번 하다가 입학식 날 처음 봤고,
첫인상이 꽤 좋으신 분이었다.
매일 하교 때 만나니 아이에 대해 묻고 싶지만
아직 정식으로 도움반 수업도 안 하는데
선생님이라고 해줄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다.
학기 초 많은 아이들을 새로 만나 선생님들도 정신이 없을 텐데,
내가 곰이는 이렇고요, 저렇고요, 한다고 그게 귀에 들어올까.
아이 파악은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고,
직접 부딪치며 알아가는 게 제일 좋다고 나 혼자 생각했다. ㅋ
3월에 개별화 회의도 있을 테고,
4월에는 학부모 상담도 있을 테니,
정보 제공은 그때 해도 늦지 않다.
내 궁금병만 잘 누르면 될 일.
£ 믿자. 아이와, 학교와, 선생님 두 분을.
이건 그냥 신앙의 영역이다.
가정에서 할 일이 있다면 요청이 들어올 테니 기다리면 되고,
이제 내가 할 일은 그저 믿는 것뿐.
잘하겠지.
잘하시겠지.
어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