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호르몬 수치를 지켜보며
장기 요법의 시험관 시술을 시작한 지 2달이 지났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지도 거진 2달. 빛을 보지 못하고 서랍에 쌓인 글들은 그동안의 불안과 기쁨과 절망을 가득 담고 있다. 차마 공개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럽고 지저분한 감정의 배설들. 이렇게 쏟아놓는 취미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이번 회차도 만만치 않았다. 주사나 부작용보다 맘고생에 유의하라는 난임 고차 수분들의 조언이 딱 들어맞는 두 달이었다.
우선, 이식 후 복수가 차더니 임신 수치가 올랐다. 오랜만에 만난 테스트기의 두 줄이 반가워 5개나 플렉스 해버렸다. 복수가 차면 임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에 주야장천 포카리스웨트를 먹고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면서도 힘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짠 음식을 먹으면 실시간으로 부어오르는 배는 얼핏 임신 6개월 차 같았다. 실제로 몸무게도 4kg 정도 불었고. 다행히 복수 천자를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집에서 요양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딱 열흘. 2차 피검사 전까지. 행복한 상상이 허락된 꿈같은 시간이었다.
2차 피검 날, 룰루랄라 채혈을 마쳤고 늘 그랬듯 점심시간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의심 없이 받아 든 그 전화가 사건의 시작이 될 줄이야. 적어도 몇십 배는 늘었어야 할 호르몬 수치가 겨우 2배 올라있었다. 1,300이 아니고 130이라고요? 조금 느린 것 같으니 일단 질정 처방약을 잘 유지하고 다음 주에 다시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말에 직감했다. 아, 이번에도 어렵겠구나. 음... 엄마한테 괜히 말했다...
그 후로 한 달. 폭풍 같은 감정 변화에 정신이 혼미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포기하기에는 너무 치솟은 호르몬 수치. 분명 어딘가에 착상을 했다는 뜻인데, 초음파로 찾기가 어려워 자궁외 임신을 의심해야 했다. 비정상 임신으로 보이지만 수치상으로는 임신이기에 임신확인서를 받고 국민행복 바우처도 신청했다. 임신도 유산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한 달을 보냈다. 뱃속에 생명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8주 이내의 유산은 엄마의 몸보다 배아의 문제인 경우가 크니 죄책감은 갖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런 배아를 인공적으로 자궁에 넣은 건 난데. 아기집을 짓다가 지쳐버린 이 작은 배아에게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걸까.
자연임신이라면 조금 늦은 착상으로 배아가 주수보다 느리게 자랄 수도 있지만, 시험관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이렇게 되니 부딪힌 또 하나의 현실적인 고민은 질정을 계속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인위적인 임신이라 자체적으로 생성되지 않는 호르몬을 보충해주기 위한 질정 처방은 시험관 시술을 받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고민거리 중 하나다. 특히나 주사로 처방받는 경우에는 임신 유지를 위해 11주가 넘도록 아픈 주사를 맞아야 한다. 임신이면 복수가 차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들지만 임신의 표시니 기꺼이 감내하는 고통이랄까. 의사의 처방은 물론 넣어야 한다였지만, 배아의 착상을 돕는 질정이 지금 상황에 무슨 소용일까. 금액도 만만치 않은데... 현실적인 생각이 추가되니 더 답답해졌다. 그래서 질정을 넣어 말어, 뱃속의 배아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해, 말어.
결국엔 유산 판정을 받을 때까지 넣었다. 완전히 포기하는 건 어쩐지 미안했다. 아니, 고민하는 것 자체도 미안했다. 희망고문이라지만, 그 작은 희망이 가슴 아픈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2년 전 화학적 유산과 달리, 계류 유산은 초음파 사진과 산모수첩, 임신 바우처를 남겼다. 초음파상에서 어렵게 찾아낸 배아는 까만 점으로 흔적을 남겼다. 자궁외 임신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의사는 나를 위로했다. 산모수첩을 들고 일부러 버스 임산부석에 앉았다. 정말 앉아보고 싶은 자리였다. 임신 바우처는 곧 있을 소파수술 비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다음 주 수술이 끝나면 이번 임신은 종결이다. 당분간은 호르몬 수치를 걱정할 필요도, 질정을 더 써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직 작은 흔적이 뱃속에 남아있다. 고생 많았고, 다음에 다시 만나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