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병장병장 Dec 01. 2019

당신은 도덕책...

전도사님 당신은 도대체...

어릴 적 친구 손에 이끌려 가는 곳이 두 군데 있다. 첫 번째는 태권도 학원. 나보다 먼저 태권도 학원에 다니던 친구는 항상 도복을 입고 다녔다. 지금 보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 하얀 도복은 요즘 말로 치면 인싸템이었다. 어디 이뿐이랴 학원 안에는 또래 친구들이 바글거렸고, 마음껏 뛰 놀 수 있는 놀이의 장도 마련됐었다. 결정타로 관장님의 문화상품권 공세는 나를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격언에 밀어 넣었다. 두 번째는 교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나님과 예수님은 생소하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교회에서 주는 맛있는 간식과 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름철 계곡을 외면할 수 없었다. 독실한 신앙보다는 친구와의 만남이 나를 교회로 이끌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기도 시간에 실눈으로 보던 십자가를 보며 가장 많이 떠오른 속마음은 ‘어떻게 저 무거운 걸 저기다가 매달아 놓은 걸까’였다.


시간이 지나 태권도 학원이 있던 상가 층에는 PC방이 개업하고, 교회가 있던 자리는 빌라가 들어섰다. 나를 태권도 학원에 이끌었던 친구는 속도위반으로 결혼을 했고, 함께 여름 성경학교에 갔던 친구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겹겹이 쌓여 예전의 모습을 덮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시간도, 장소도, 사람도 모두 변해버린 중에 추운 겨울이 되면 아직도 내 기억에 각인된 교회의 특별한 추억이 있다. 당시 교회 전도사님의 기도이다.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분이 하고픈 이야기는 이렇다. “가장 낮고, 힘든 이가 제일 먼저 추워지는 겨울철, 이들이 부디 무사하기를”


전도사님의 기도가 시간을 이겨내고 내 뇌리에 박힌 이유는 그분의 집 때문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는 전도사님은 종종 우리를 본인의 집에 데려갔다. 집은 교회 근처에 있는 작고 낡은 빌라로 살림은 단출했다. 누리끼리한 벽지에 달라붙어 있는 어울리지 않게 큰 시계, 앉을 때마다 삐걱이던 식탁 옆 의자는 ‘안 좋다, 구리다’라는 부정적인 면을 넘어 신비롭게까지 보였다. 하지만 이 집의 진한 추억의 향기는 겨울에서 나타났다. 실외보다 추운 실내,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집 안에서 입김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겨울왕국에서 사는 전도사님이 겨울의 혹한 때문에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걱정한다는 사실은 쉽게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추억이었다. 온몸으로 겨울과 겨루던 전도사님의 혹한과 사투를 벌이는 또 다른 이들을 위한 기도. 전도사님은 본인을 위해서 기도해도 모자를 바였다. 그런데 타인을 위한 기도라니, 기도의 우선순위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있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전도사님의 기도는 이제 내가 그의 나이 즈음이 된 요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나도 죽겠는데 다른 사람을 향해 손을 내민다는 것이 멍청한 것이 아니라 숭고한 것인지를 깨닫고 있는 중인 것이다. 우선 지금 내 상황은 어렸을 때 내가 전도사님의 집에서 느낀 그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설고 안타깝다. 학생과 군인 하다못해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조직에 소속됐었던 나는 현재 무소속이다. 명절 때마다 친척 어르신들의 질문 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비빌 언덕이 없고 비를 피할 우산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런 내가 안쓰럽다. 사면초가에 불안감을 느껴 허구한 날 손톱을 물어뜯어 바짝 짧아진 손톱을 보고 있자면 스스로가 불쌍하기까지 하다. 그 겨울 전도사님에서 느껴졌던 감정이 오버랩된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상황에서 타인의 안녕을 빌었다. 아직도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전도사님이 가진 생각이 너무나 생소하다.


종교의 힘일까.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종교가 가진 초월적인 무언가가 그를 이토록 이타적으로 만든 것일까. 다만 분명한 건 현재 무소속으로 여러모로 총체적 난국인 내가 그의 깊은 뜻을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또 어린 시절 내가 비웃던 그는 현재의 나보다 훨씬 깊고 풍부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젠 너무 늦었을지 모르지만 그를 이해하고 싶다. 혹한의 날씨에도 피할 곳이 없었던 전도사님의 인자한 기도는 차치하고, 그의 여유로운 미소 한 조각의 의미라도 알고 싶다. 이해하지 못하면 배울 수 없다. 그를 본받으려 한다면 그에게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깨치지 못하고 암기로 세상을 배우는 것은 학창 시절로 충분하다. 일단 올 겨울에는 추위를 온몸으로 느껴봐야겠다. 이 속에 어떤 깨달음이 있는지를 온몸으로 깨달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지루함, 일상의 권태로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