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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youth Sep 20. 2020

정원을 가진 자의 여유(?)

코로나로 집콕을 이어가던 중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선선한 바람에 높고 푸른 하늘, 청명한 날씨로 마음을 들뜨게 하는 요소가 지천에 널려있으니 개인적으로 1년 중 가장 컨디션이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좋은 계절에 나들이 한번 못 가고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7개월을 집에 갇혀있다시피 하니 자타공인 집순이인 나도 삶이 조금은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집과 회사를 무한 반복하고, 가끔 마트만 겨우 갔는데 곧 2020년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지기 딱 좋은 상황. 이런 게 코로나 블루인가?


남편이 재택근무 중인 마당에 답답한 내 마음을 달랜답시고 카페를 가는 것도 기분이 찝찝했다. 코로나 걸리지 말라고 배려해줬더니 괜히 다른 곳에서 병이 걸리면 어떡하지 하는 소심한 고민과 갈등에 나는 그만 집에서 심심해 죽어가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씻지 않은 채 산발 머리로 마시는 커피만이 유일한 낙이 되어갔다.


가을 햇살에 빨래 말려보기


점점 게을러지는 나와 남편으로 인해 여름을 잘 넘긴 우리 정원은 나의 머리처럼 산발이 됐다. 남편은 한주를 더 넘겼다간 우거진 숲을 집 앞에 만들 것 같았던 모양인지 잔디 깎기 기계를 꺼냈다. 아직은 따사로운 햇빛에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잔디를 정리하니 마지못해 화단 정리라도 하기 위해 축 처진 몸을 일으켰다. 이 놈의 성가신 정원관리!


역시나 우리 정원은 자라난 잔디뿐만 아니라 잡초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지금 난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데 정원 관리까지 해야하나?!’ 여기저기 난 잡초에 왈칵 짜증이 났지만, 누구의  탓도 할 수 없기에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 잡초뽑기에 정신을 집중했다.


'얼른 이사 가야지, 그럼 이놈의 정원관리 그만 할 수 있지'


정원에서 책 읽기 커피 마시기 뭐라도 해야지


그런데 정말 이 푸른 공간엔 묘한 매력이 넘쳐난다. 엉망이 되어가는 모양새를 보면 마음속에 풀지 못한 숙제를 가득가득 짊어진 것 마냥 마음이 무거운데, 햇살 한가득 머금은 정원에서 정신없이 풀을 가다듬고 나면 이처럼 뿌듯한 일이 또 없다. 억지로라도 햇빛을 쬐고, 단정해진 정원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상승세를 탄 기분을 이어가기 위해 이 공간에 나와 책을 읽고 커피도 마셨다. 강아지 털도 깎여주고, 흠뻑 젖은 빨래도 널고 나니 우울했던 마음이 절로 달래지고 여유로움이 가득 찼다. 나만의 정원을 가져보지 못했다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이 들뜨고 설렌 마음.


여행을 가지 못해도, 가까운 거리의 나들이도 멀리한 채 코로나 잔혹사 속에 나와 남편을 버티게 해 준 건 이 정원일 지도 모른다. 가을을 조금이라도 즐기게  해주는 이 빛나는 정원의 가치를 알기까지 사실 우리 부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론 성가시기만 했던 이 공간을 정리하며 마음먹었다. 새로운 집에 가서 오롯이 햇살을 누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꼭 마련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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