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youth Jan 03. 2021

야박해도 너무 야박했던 수도권 입성기

"진짜 이 계약 취소하려고 했어!!"

"나 진짜 이 계약 취소하려고 했어, 꼭 부자 돼요! 알았죠?"


잔금을 치르기 위해 도착한 부동산에서 남편과 나는 전 주인 부부의 끝나지 않는 하소연과 분노를 들어주어야만 했다. 야박해도 너무 야박했던 수도권 입성기의 서막은 그렇게 불안과 불쾌함으로 점철된 채 서서히 올라갔다. 전 주인 내외의 푸념은 20여 분간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강한 멘탈을 자랑하는 나마저도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가까스로 끝이 났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종잡을 수 없이 제 마음대로 춤을 추는 부동산 가격 탓에 전 주인은 매매 계약 체결 후 오른 아파트 가격에 배알이 꼴려도 단단히 꼴려  불편한 심경을 거침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이른 6월 지금 집을 보러 갔던 우린 친절해도 너무 친절한 주인 부부를 보고 단숨에 계약을 결정했다. 이사 예정일을 한참 남겨두고 미리 집을 보기 위해 방문한 우리에게 중개인들을 싫은 내색을 감추지 않았지만, 정말 인연이 될 모양이었던지 전 주인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반색하며 자신들이 집을 짓게 되어 이사를 가는 거라 이사일이 늦어지면 더욱 좋다 흔쾌히 우리에게 동의했다. 천안에서 올라갔던 우린 다시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전화로 계약을 체결했다. 처음 보았을 때도 무척 여유로워 보였던 중년부부는 우리를 적극 배려해 남편과 나는 '우리도 저렇게 늙자'라고 다짐했더랬다.


오빠야 우리 부자 안 되면 큰 일 나 


사실 영끌로 이사를 강행했던 우리 부부는 중도금 액수를 맞추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일이 제대로 되려고 했던 모양인지 중도금을 치르기 전 천안 집도 정말 좋은 새 주인을 만나 매도했다. 약속한 날에 중도금을 내고 이사를 목전에 둔 순간부터 우리의 고난은 시작됐다.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고 전 주인은 조금씩 변하는 판세에 무척이나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고, 부동산 중개인의 전화를 받지 않는 가하면 조금이라도 뭔가 요청하는 눈치가 보이면 단칼에 거절했다고 했다. 자세한 내막이야 모두 이 글에 담을 수 없지만 결국 우린 이사일을 바꾸기까지 했다. 아울러 입주청소 날짜와 시간도 수차례 바꾸며 전 주인 부부의 불편한 심기의 상승과 하락이란 롤러코스터에 탑승해 우리 부부도 춤을 추었다.  


마침내 마주한 계약일. 사실 난 먼 거리를 오고 갈 수 없는 우리 부부를 대신했던 부동산 중개인이 귀찮아 전 주인 내외 핑계를 대는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 만났던 그분들은 어디로 간 게 틀림없었다.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생경함. 그 속에서 우린 기나긴 연설을 감내해야만 했다.


"중도금 내도 요즘 부동산 계약 파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내 친구들 다 파기했어."

계약금이며 중도금이며 모두 깔끔하게 지불했던 우리 부부가 이모뻘 되는 전 주인의 성토를 꾸역꾸역 듣고 있자니 짜증이 스멀스멀 치솟았다. 매도인과 매수인으로 만났음에도 남편과 나는 나이에 밀려 그분들께 단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경청의 시간을 가졌다. 옹졸한 난 속으로 '그럼 집값 내려갔으면 당신들이 물어줄 거예요?'를 오백만 번 외쳐보았다. 꼭 부자 되라는 가시가 오천만 개 박힌 말로 긴 분노가 막을 내렸다. 


짧다면 짧은 그 20여분 간 온갖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의 변심으로 집을 내놓았다 물었을 때, 이사를 결정하고 새로운 집을 계약하곤 마주했던 엄마의 눈물,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 주인의 모진 행동 등등...


결국 이 모든 야박한 상황을 뚫고 마침내 수도권에 입성했다. 나의 30층 파라다이스! 천년만년 살게!!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무시하고 싶다 '대박 구성 핫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