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동요를 느끼며 살고 싶어
글쎄, 아무리 바쁜 삶이라고 해도 감정은 느끼며 살아야 하는 거 맞지?
요즘 들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허겁지겁 눈 앞에 놓인 일처리를 하나둘 처리하다 보니 갈수록 사람이 차분해졌다. 좋은 말로 차분이지만, 좋지 않은 말로 풀자면 무감이었다. 어느 일을 하더라도 설렘이 없었다. 설렘? 아니, 슬픔도 없었다. 말 그대로 감정의 동요가 사라졌다.
스스로를 억눌렀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오히려 감정이 널뛰면 일할 때 힘드니까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려 했다. 기뻐도, 슬퍼도, 웬만하면 평온을 유지하려 했다.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다음 차례의 일에 실수가 생겼으니까 말이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차분하게 집중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잘못 진행하는 일이 있었다.
그 생활을 한지 4개월이 지났다.
잘 모르겠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안정적인 것이 좋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항상 약속으로 꽉 차있던 삶을 살았는데, 지금 내 달력에는 그닥 잡힌 일정이 없다.
그리고 항상 확인을 가지고 살던 내가 지금은, 나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오늘은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침겸 점심으로 족발을 시켜 먹었다. 3명이서 먹는다는 그 세트를 앉은 자리에서 모조리 먹어 치웠다. 어제 참은 술 한잔과 함께 말이다. 독립 이전, 그리고 워라밸이 보장되던 근무지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배가 아플 정도로 먹어서, 숨을 쉴 때마다 흉부가 조여왔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달달한 디저트를 시켜 몇 개를 추가로 더 먹었다.
빌어먹을 보상심리. 열심히 일했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이정도는 주말에 해도 된다는 그런 보상심리에 사로잡힌 것이다. 스스로 바보같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안다. 건강을 망치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이런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내 자신을 좀 더 아껴주려고 헬스장 피티까지 끊었는데 결국 또 이런 선택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건, 오늘 하루종일 행복하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일엔 회사를 가니 매일 행복할 수는 없었겠지만, 주말만큼은 행복한 순간을 꼭 가졌던 나다. 그런데 오늘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종일 드라마를 켜놨다. 그렇게라도 웃고, 울어보려고.
행복을 위해 사는 삶에 행복이 느껴지지 않으면 나는 지금 옳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옳은 삶은 누구도 정확히 정의할 수 없겠지만, 누구든 각자의 행복이 전제가 된 삶일 것이다.
조금만 버티면, 마음을 바꾸면, 지금 이 삶에서도 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조그마한 자극에서 설렘을, 슬픔을, 기쁨을 느끼며 행복을 찾는 내가 현재를 버텨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