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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색 Aug 25. 2024

복잡한 이별 뒷면엔 단순한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상대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곱씹는 순간이 온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저녁 헬스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데 문득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궁금했다. 왜 갑자기 정확한 이유가 궁금해졌는지 모르겠다. 헬스를 마치고 인증사진을 주고받는 게 짧게나마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했던 까닭이었을까. 습하게 내리누르는 공기가 오랜만에 피부로 와닿음을 느낀다. 어떤 생각에 집중할 때, 그리고 생각이 그닥 긍정적인 방향은 아닐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유를 굳이 알고 싶지 않았기에 그 순간을 곱씹지 않았더란다. 그가 말한 우리의 이별 이유는 신뢰의 부족이었다. 나를 신뢰할 수 없어 더 이상 마음이 커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나는 변명이라고만 생각되는 이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진짜 이유는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났거나, 혹은 얼굴을 보지 않았던 기간 동안 나에 대한 마음이 식었거나. 단순한 이유였을 것이다. 죽어서 헤어지는 사별이 아니고서야 모든 이별은, 아무리 복잡한 이유가 있다 한들 결국엔 단순하게 헤어지니까.


 그의 마음을 식게 한 사건을 제공한 것은 나였다.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이려고 해도 나였다.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 사건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의 마음인 것은 그였고. 더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수 없었다. 난 그 사건을 묻으려 했고, 그는 그 사건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소통의 부재였을까? 그가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을까. 당시 내가 이유를 곱씹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그는 이 관계에 대화라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


 30년을 넘게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맞춰 가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을 쪼개 자주 본다거나, 대화를 한다든가, 혹은 몸을 부대낀다거나. 어느 종류의 노력이든 중요하겠지만 서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노력의 형태는 다를 것이다. 예를 들면 바쁜 틈을 타서 전화를 하는 애정표현과 관련된 노력이라든가, 서운한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대화를 하려는 노력이라든가. 우리는 아마도, 서로의 노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티나지 않는 내 마음을 의심했고, 나는 대화할 의지 없이 혼자 마음을 정리하는 그의 모습에 실망했다.


 다만, 갑자기 이유가 궁금해진 이유는 내게도 아쉬움이라는 것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아쉬웠다. 요 근래 처음 느껴보는 자극이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사실을 각성시켜 주는 새로운 사람. 그의 블로그를 되짚어 보던 중, 한 문장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합리화라는 단어를 맘 한켠에 품고 살던 나였다. 제대로 하지 않더라도 한 것에 이의를 두며 살았 내게,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한 문장  마치 그를 구원투수인양 만들어 버렸. 그와 함께라면, 나도 내 행위에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때문이었을.


 정말 짧은 만남이라도 이별은 이별이다. 뒤돌면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게 되는 그런 사이. 한번 더 대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그의 입에서 생각 정리를 끝냈다는 말을 듣고선 그 마음을 갈무리했다. 서로의 입장이 얽히고 얽혀 복잡한 상황이 되더라도 이별은 단순했다. 서로 이별을 수용하고 나면 더 이상 안부를 묻지도, 서로의 일상을 궁금해 할 수도 없다. 이별의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은 단순한 이별에 비해 너무나 머리가 아픈 일이다. 가만히 이유를 생각하다 또다시 머릿속 골짜기로 새나가는 생각의 흐름에, 오늘도 사유를 멈추어 린다. 이별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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