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인 취미 기둥의 하나, 글쓰기(글짓기)
지금까지 취미를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설득하고자 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시작해서 개발한 취미에 대해 개별적으로 접근하였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취미의 우선순위를 정하라면 어렵다. 각 취미마다 갖는 기능도 다를뿐더러 얼마나 하고 싶었느냐는 욕망의 크기, 또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실력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고, 바람처럼 붐이 일어나면서 모든 사람의 관심을 일순간 앗아가는 종류도 있기 때문에 순위로 정하기는 더 힘들다. 그래서 경험했던 순서로 시작하자니 나이와 관련이 있으려나? 했지만 그도 아니었다. 해서 취미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자체가 가장 어려울 수도 있고, 다른 취미를 개발하는데 효과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매개가 될 수 있는 것으로 ‘글 쓰기; 글짓기’를 최우선하기로 했다.
정적인 취미 기둥의 하나, 글쓰기
글짓기! 어렵다!! 처음부터 드는 생각이다.
필자는 시를 쓰는 것부터 시작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풋풋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선배 공무원의 소개로 여성회관(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으로 성평등에 의해 현재는 대부분 평생교육원이나 교육문화회관 등으로 명칭이 바뀜)에서 운영하는 ‘문예 창작 교실’에서 수강을 시작했다. 공직자로서 글쓰기 공부의 시작은 행정 기획력을 향상해 시민들에게 보다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대학에서 ‘평생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개강하거나 굵직한 대학의 경우 대부분 사이버 대학을 운영하고 있어 접근하고자 한다면 훨씬 쉽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한 4주는 수업만 듣다가 글을 써서 시평에 들어갔다. 내가 고심해서 썼던 시어들은 푸념 혹은 의미의 중복이라는 명목하에 난도질로 겨우 건져낸 건 ‘단 한 줄’뿐이었다. 아니 한 줄도 안될 때가 허다했다. 단어 하나만 건져도 다행이었다. 사실이었다. 단어 하나, 하나를 써서 문장을 만들자면 뒷따라 오는 단어가 앞단어를 잠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쓸 줄 몰라서 그것도 용기를 내서 썼던 것이었다. 수업 중 시평이 시작되면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중간에는 울그락불그락 몸 둘 바를 몰랐다가 결국엔 ‘이걸 계속해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닫히길 여러 번. 또, 불혹 40줄에 들어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콘크리트로 쳐진 나의 심장 속에 정서라는 게 있을 리 만무라며 도래질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인정하길 ‘정서’는 마음에 씨를 심고 싹을 내듯 길러내는 것이다.
똑같은 연간 커리큘럼, 거의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 강의를 4년을 들었다. 그렇지만 똑같은 강의라 하더라도 듣는 나는 매번 다른 글감을 찾아냈고 어느 순간부터 나의 과거를 더듬어 시와 글로 풀어내고 있었다. 지난한 삶 속에서 생채기 난 영혼을 스스로 치유하며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 문방구 아저씨의 아이스크림 유혹으로 시작했던 이모부네 계란과 찹쌀을 훔쳐 바꿔 먹었던 굴욕적이었던 행동이 지금은 ‘그땐 그랬지!’하며 자신을 까발리며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나에게도 사춘기가 있었나? 하지만 청소년기 수치심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며 상상으로 채웠던 음탕했던 욕정은 청소년기 아들을 키우면서 그들의 행동을 통해 나의 그때를 기억해 내고 인정하며 아이들은 그러한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하여 온전히 성인으로 그들의 삶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들들이 성에 대한 상담도 허심탄회하게 하는 모자의 관계가 되었다.
글쓰기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그때를 인정하며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어 미래의 과거가 될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었다. 필자는 “지난 과거가 뭐 중요한데? 지금이 제일 중요해, 지금이 즐거우면 미래가 즐거워!”하며 지금을 아주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조금은 무책임하다 생각한다. 당연히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즐거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즐거워야 한다. 하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그 미래를 준비하는 즐거움을 위해서 실존하는 지난 과거를 인정하며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사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SNS 활동으로 동기부여 장치 마련
나의 글쓰기는 지역의 문학인 활동으로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연간 글 서너 편을 써서 1년에 한 번 발간하는 문예지가 있었고, 지역 축제 등에서 시화전을 통한 세상 구경과 10년 동안 꾸준히 쓴 시로 시집 ‘첫사랑이 식기 전에(2015, 네오 이마주)’ 을 발간하며 전반기 개인사를 정리함으로써 성취감을 더욱 가질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활동은 나의 아이들이 엄마를 바라보는 눈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또, 글쓰기와 같이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시작한 SNS는 필력을 키우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미지화되어가는 세태 속에서 함축적인 글쓰기는 정보의 전달 혹은 공유하는데 필수 조건이었다. 읽는 이들에게 보다 효율적인 정보전달을 위해 3 또는 4단 형식의 문단으로 글을 이미지화함으로써 나만의 시적산문 형식의 글을 썼다. 그렇지만 너무 형식화된 이 글쓰기의 한계는 긴 글을 쓰기엔 필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SNS도 블로그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전달 내용을 함축해서 다른 SNS에 공유하는 방식을 취했다.
필자는 취미로의 글쓰기, 글짓기는 모든 취미 활동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로도 취미활동으로 충분하지만 다양한 취미 활동 사항을 글로 남길 수 있으며, 그러한 습관은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인 활동작가로서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타 취미의 경우엔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블루투스 자판기 하나면 어디에서든 소일거리로 준비가 세팅 된다. 그러면서 특별하게 시간을 내어야 할 때도 있지만 어디서든 언제든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나처럼 시간에 대한 분할 개념으로 스스로를 압박하는 경우엔 최고이다. 예를 들어 약속이 있는데 텀으로 시간이 비어 있을 때 한 두어 시간 보내기는 식은 죽 먹기다.
일상을 통해 생각의 근력 키우기
그렇다면 글쓰기를 취미로 갖기 위해서 무엇부터 해야 할까?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통해서 다양한 거리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특히 생각의 근력을 키우기란 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하나는 매일의 자신을 기록하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단조로운 하루라지만 그 틈바구니 속의 감정들을 하나씩 잡아내어 정리하다 보면 성찰의 시간을 별도로 가질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자신을 적확히 들여다보는 눈도 생기게 된다. 그러면서 그 감정의 근저에 접근되면 과거 자신으로 가는 키가 생기게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 사실대로 묘사하듯 써 내려가기와 그 쓴 글에 대해 생각 정리해서 쓰는 방법으로 추천하고 싶다. 보이는 모든 것은 생각거리로 생각의 근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이 나의 글은 쉬워서 좋다며 방법 좀 알려 달라고 하면 꼭 함께 추천하는 것이 있다. SNS로 블로그도 시작해 보시라고. 그리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으로 매일 한 가지만, 어떤 대상이든 그날을 대표할 수 있는 대상을 정하여 사진 한 장을 찍고, 사진을 포스팅하면서 그 사진에 대해 기록하듯 한 줄부터 써보시라고, 그러다 보면 그다음은 글이 너무 길어져서 고민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결국 글쓰기가 취미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