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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un 27. 2022

다산의 아버님께

내가 결혼을 해 보니 그렇다. 나라를 위해, 그 어떤 대단한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위인들의 이야기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아버지가 저리 나라를 위해,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동안 엄마는 자식들을 데리고 어찌 살았을까를 떠올리면 그야말로 가슴을 턱턱 치게 되는 답답함 만이 남는 것이다. 


정약용 선생 역시 역사적으로 봤을 땐 없어서는 안 될 너무도 훌륭하신 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부인과 자녀들 입장에서는 과연 좋은 지아비이자 아버지였을까 싶은 생각이 오지랖이라는 건 알지만 솔직히 그렇다. 물론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서 아버지의 역할이 지금과 다를 수는 있겠지만 평생을 유배지에서 학문정진에만 힘썼던, 그야말로 상징적 인물로서의 가장의 역할을 했던 사람이 가족에게 어떤 의미였을까를 떠올리면 지극히 이기적인, 개인의 행복이 더 중요한 나 같은 사람에겐 '몹쓸 사람'이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남편들의 큰 뜻을 지지하고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여인들의 삶이 더없이 대단하다 느껴진다. 늘 느끼지만 역사는 어떤 대단한 한 사람의 공로만큼이나 기록되지 않는 주변 인물들의 공로로 인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다산의 아버님께>를 읽노라면 앞서 이야기한 것들이 무색할 정도로 평범한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다산 선생의 둘째 아들인 '학유'의 입장에서 풀어나가기에 그의 마음은 짐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작가는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묘사해낸다. 시집가는 딸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자식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매조도> 그림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매화꽃이 활짝 피고 향기가 그윽해 새가 절로 날아든다. 새가 찾은 그 자리는 가지마다 즐거움으로 가득 차고, 매화꽃은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것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예나 지금이나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비슷한 것 같다. 소중한 내 딸이 시집가서도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토끼 같은 자식들 낳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딸의 앞으로의 삶에 즐거움과 풍요가 가득 넘치기를 바라는 선생의 그 마음이 이 시대의 부모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조선이라는, 그야말로 유교사상이 초절정에 달했던 그 시절, 아버지가 딸에 대한 마음을 저리 표현했다는 것이 더욱 감동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죄를 짓고 유배를 온 처지. 자식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어 부인이 보내온 헌 치마폭에 글과 그림을 그려서 축하의 마음을 담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그저 어디에 있든지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다잡으려 부단히 노력했겠구나 짐작할 뿐이다. 아마 그가 날 선 정신으로 학문에 정진하며 자신을 다잡지 않았더라면 저런 글과 그림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 탓을 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괴로워만 하면서 술로 근심을 잊고자 했다면 '정약용'이라는 이름은 이토록이나 오래도록 회자되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산 선생이 그 오랜 유배 기간 동안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가문은 몰락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살아가는 상황에서 가족들을 건사할 수도, 자식들을 가르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학문에 정진하며 기품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언제 풀려날지 모를 기약 없는 그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의무, 책임감.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하의 도리를 다하고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부차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잃지 않았고, 늘 생각하고 염려했다. 그리고 아마 본인이 제대로 살아가는 것만이 자식들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정신적 지주일 뿐이라도 가장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 그 노력의 대상이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정진이었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된다. 


단순한 역사 속 기록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으로 위인들의 삶을 접하는 것은 그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또 다르게 만들어준다. 뛰어난 인재로, 훌륭한 신하로, 존경받는 학자이자 스승의 모습이 아닌 그저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으로 다산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이 책을 통해서 시대를 초월한 부모의 사랑을 느낀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물질을 제공하는 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의 전부가 아님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그의 정진하는 삶의 모습은 한 가족의 울타리가 됨과 동시에 시대를 관통하는 깨달음이 되었다. 그 기저에는 그저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자 했던 지극히 평범한 부모의 마음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나는 알 것 같다. 


셀 수 있는 것보다 셀 수 없는 것이 더 강하다 (by 찰스 핸디)


셀 수 없는 것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한다. 그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고 셀 수 없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기둥이 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은 그저 가르침을 통해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건 어떤 한 사람의 삶을 통해서 스며들듯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불특정 다수로부터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자 함이 아닌 나와 살을 맞대면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똑바로 살아야겠다 다시 다짐한다. 


 https://youtu.be/VkBkRqg1p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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