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진 Jul 13. 2022

처음엔 사소했던 일

책을 읽으면서 웹툰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 하나는 인간의 모습이 단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 속의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인간은 누구나 야누스의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은 지킬 앤 하이드 박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매우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이라고 그리는 모습이 있다. 누구에게든 적당히 친절하고, 모진 말을 하지 않으며,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타인의 이야기를 잘 수용하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을 좋은 사람, 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때로는 만만하게 여기며 자기도 모르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면은 인지하지 못한 채로 내 편이 아닌 사람의 양면적인 모습에 분노하며 비난을 쏟아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 절대적으로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은 없다. 언제 어느 때에서든 누구 앞에서건 언제나 좋은 모습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은 언제나 정의감 넘치고 누가 보아도 착한 사람들이지만 그건 어쩌면 우리 자신도 갖고 있는 모습이고, 현실의 삶에선 그 모습만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단지 아쉬울 노릇일 뿐이다.


<처음엔 사소했던 일>이 그렇다. 학급에서 누군가의 볼펜이 없어지고 그 용의자로 사건과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모범생 '천융허'가 걸려든다. 그리고 다음 날 또다시 학급에서 돈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천융허에게로 시선이 쏠린다. 다음 날 또 돈이 사라지고, 그다음에는 충전해둔 버스 카드가 사라진다. 얄궂은 우연은 자꾸 천융허에게로 쏠리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렇게 범인으로 의심을 받게 되기까지 이를 주도하는 아주 교묘한 주동자가 있다. 거기에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목격자들의 이야기가 보태져 멀쩡했던 한 아이가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서 착한 아이, 나쁜 아이는 없다. 단지 이해관계에 따라서, 혹은 내편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한편으론 나랑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면서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anybody 들의 속내가 그려진다.


 주동자는 바로 '장페이페이'이다. 엘리트 부모의 엄격한 지도 아래에 상류사회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녀는 누구나 우러러보는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면서 살아오고 있지만 실상은 외로움으로 가득  아이이다. 이런 장페이페이에게 어느  '장쉐'라는 아이가 막역하게 다가오고 그녀는 세상 처음으로 인간관계가 가져다주는 '따뜻함' 알게 된다. 그리고 누구와도 바꿀  없는 절친이  장쉐가 천융허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장페이페이는 자신의 지위(?) 이용해  둘을 이어 주기로 결심한다. 값비싼 카드를 준비하여 장쉐의 마음을 받아달라는 메시지를 적어 천융허에게 전달하는 장페이페이.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 달리 천융허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오히려 다시는 이런 장난을 치지 말라는 그의 차가운 말대꾸에 그녀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지금껏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란 없었던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그의 거절은 있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자신의 부모, 그리고 자기에게 따뜻한 정을 보여주지 않는 아버지에 천융허를 대입시키며 그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마치 천융허의 거절이 매우 나쁜 일인 , 천융허 라는 아이 자체가 매우 나쁜 사람인  여기며 그녀는 사건의 주동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옛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절대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고, 그렇게 보는 것으로만 그 사람을 판단하며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흑백 논리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정말 위험한 일이고, 모두가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나를 대접해줄 것이라는 그런 착각 속에 빠져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말이다. 내 인생에선 내가 주인공일지 모르지만 타인의 인생에서 나는 하나의 엑스트라에 그치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살아야 할 필요성도 말이다.  


특히 내가 깊이 상처로 기억하고 있는 일들을 빨리 떨쳐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천융허가 그랬던 것처럼 정작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리라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장페이페이의 고백 편지를 거절한 것은 결코 그녀를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천융허 역시 여느 여자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장난때문에 지쳐 있었고, 자신을 동물원 원숭이처럼 여기는 아이들처럼  사건 역시 그런 종류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노릇일 뿐이었다. 그건 그녀와  모두에게 정말 재수가 없었던 타이밍이 가져온 결과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사회적 인간의 기준으로만 본다면 크게 흠잡을 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로 비추어보면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안다. 나의 부모 형제에게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된 나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모르긴 몰라도 사회적 관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할 모습을 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라는 건 안다. 아마 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아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랑 가까운 가족들에게 좀 더 잘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과 달리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나와 가장 밀접한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안다. 비뚤어진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하지 않기 위해, 의도치 않았던 누군가의 행동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https://youtu.be/kMefuCdiqdM


 

이전 09화 다산의 아버님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