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발리로 떠났습니다. 요즘 이런 분들 많죠? 2년 동안 발리에서 주야장천 서핑만 하다가, 한국의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아직은 여유 있는 전원생활 중입니다.
다시 언제 될지 모르는 발리 생활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네요.기록해 두지 않으면 그저 사회의 공백 2년으로 남을 것 같아서,급히 정리해봅니다.
나에게 남겨진 발리의 흔적들
새로운 도시로 떠났다는 흥분, 퇴사를 했다는 해방감
이 모든 감정이 흐릿해지고 발리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이 가지는 일상은 어디서든 똑같았다. 게으른 집순이.
다른 점이라면, 발리는 하나의 목표를 중심으로 하루가 구성됐다.
바로, '서핑'
해 뜨기도 전의 이른 새벽에 바다를 나가서, 모래사장을 밟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일상. 하루의 기분도, 일정도, 그리고 컨디션도 그날의 파도와 서핑에 따라 좌우됐다.
나의 정신적 우선순위가 서핑인데, 당연히 입는 옷도 서핑이라는 목적에 맞춰졌다. 바로 바다에 입수할 수 있도록 수영복을 입고, 더운 나라니까 긴 티셔츠나 간편한 원피스를 걸쳤다.
그러다 보니 옷이 점점 간소해지고, 편한 옷만 입게 되고, 나한테 없는 수영복을 사게 되었다.
발리에서 가장 많은 돈을 수영복, 그중에도 비키니 사는데 탕진했다. 초반에는 원피스 수영복을 가장 많이 입었다. 비키니는 벗겨질까봐 무서우니까. 연차가 좀 쌓이니, 여러 생리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비키니가 가장 편했다. 그 이후로는 주야장천 비키니를 샀다.
일주일, 한 달 동안 다 다른 비키니를 입을 수 있었다. 파도 사이즈에 맞춰 큰 날, 작은 날 입을 비키니가 따로 있다. 내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골라 입는다. 점점 늘어가는 몸무게에 사이즈 다른 비키니도 늘어갔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나에게 기내용 캐리어 하나 가득 비키니가 남았다.
내가 이렇게 많은 비키니를 가지고 있다니,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한국의 나에게 비키니는 입어 본 적도 없고, 입기에 부담스러운 옷이었는데 어느새 비키니가 이렇게 많아졌지? 살이 빠져서? 몸매가 아주 근사 해져서?
내 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살은 원래 찌라고 있는 거고, 까매져서 좀 건강해 보이긴 했다. 일상이 서핑이라 운동은 꾸준히 했지만, 몸무게나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했다.
발리에서는 왜 편해졌지라는 의문도 안 생겼다. 그냥 입었다. 그냥, 발리에서는 새벽에 눈 뜨면 세수만 하고 비키니를 입고 서핑하러 나갔으니까. 한국처럼 어딘가 놀러 갈 때에 특별히 입는 옷이 아니었다.
나에게 비키니는 외출복, 출근복, 운동복, 그리고 일상 생활복이었다. 그 자연스러움 속에 익숙해져서 나는 비키니를 아주 편하게 매일 입었다. 항상 바다로 출근해서 인스타용 사진도 찍고, 예쁘게 찍어서 올렸다.
그냥 그렇게 큰 의식을 안 하고 살았다. 자연스럽게 비키니를 입었더니, 어느 순간 내 몸을 드러내는 것이 편해졌다. 아니 내 몸을 직시하게 되고, 내 몸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내 몸을 어깨, 허리, 배, 허벅지, 다리로 나눠서 고깃덩이 감정하는 것 마냥 자기 검열했다면, 뭐 그냥 이 몸이 나다 라는 생각이 생겼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긍정하게 되었다.
이게 비키니 때문에 얻은 효과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벗어봐서(?)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나에게 비키니는 아주 특별한 옷이었다. 몸매에 자신 있는 사람들이 입는 옷, 나는 언젠가는 입을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 언젠가가 과연 언제 올지 모르는 언젠가인, 나에게 한계를 정해 뒀던 옷이다.
다이어트 성공해서 비키니 입는다고 했던 사람, 나야 나!그러던 옷을 발리에서는 자유롭게 다들 입으니까, 특별할 것 없이 입었고, 막상 입어보니 목적성에 잘 부합하는 나에게 가장 편한 옷이었다.
옷이 그냥 옷이지 무엇인가를 입는데 내가 달성해야 할 특별한 조건이 필요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설정한 한계가 나도 모르게 사라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에 좀 더 자유로워졌다.
이제 발리 사람은 한국에 왔고, 비키니가 일상복이 아니다. 그래도 한국도 발리만큼 자유로워졌다. 집에 있으면 편하게 입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름 격식을 갖춰야 하는 곳, 멋 내고 싶은 자리 모두 참석해봤다.
과거에는 날씬해 보이는 것에 집착해서 시도하지 않았을 조합을 즐기기도 했다. 또 너무 참석하는 분위기에 맞추느라 내 몸이 불편함을 입지 않았다. 격식에 맞추면서도 내 몸이 편안한 옷을 이제 고르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발리에서 얻은 것', '한국으로 돌아와서 답답하지 않냐'를 물어본다.
나는 발리에서 내 몸에 나도 모르게 그어둔 경계를 벗어 자유로워졌고, 한국에서도 자유롭게 지낸다.
다만, 아직 따뜻한 바다로 출근해 모래사장을 맨발로 밟으며, 짠 바닷물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