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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Oct 11. 2024

주말 목전, 위스키 한 잔

밤, 음악, 술… 감성 게이지 차오르기에 완벽한 조건

퇴사 후 5개월 차.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생활패턴이 굉장히 단조로워지고 있다.


외부활동이 줄어드는 만큼,

활동성이 줄고 인간관계가 좁아진다는 건

장기적으로 보면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기는 좋다.

사람 대하는 일이 늘 서툴었던지라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참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세상만사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이 좀 가신다.

좀 더 지내면서 생활패턴이 익숙해지면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찾으면 되겠지…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일을 마친 뒤 운동을 다녀와서 술을 마신다.

최근까지 다녔던 회사에서 만났던 후배에게 배워

새롭게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싱글몰트 위스키.


한 병 값이 비싼 편이라 얼핏 보면 사치 같다.

하지만 한 번에 마시는 양이 적으니,

한 병을 사서 혼자 마신다면 보통 1~2개월은 마신다.

즉, '월 단위 술값 총액'은 줄었다.

덕분에 음주량도 줄고, 안주값도 줄었다.

그리고 만족도는 오히려 훨씬 높아졌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아버지와 함께 흑맥주 한 잔씩을 나눠마신 뒤,

혼자 방에 올라와 위스키 한 잔을 기울인다.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틀어두었다.


오늘 선곡은… 임재범이다.

유튜브에 검색만 하면 라이브 버전이 쭉 나오니

참 좋은 세상이 아닌가.

작년 초 <비긴 어게인>에 출연했던 클립도 있고,

꽤 오래됐지만 <히든싱어>에 출연했던 영상도 있다.

(오랜만에 다시 봤지만 4라운드 다 맞췄다. 뿌듯…!)




좀 이르게 술을 처음 배워서,

대학교 때 소주를 주종으로 하던 시절.

참 못 볼 꼴(흑역사)을 많이 보였었다.

이후로도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다가,

30대에 가까운 나이에서야 주종을 맥주로 바꿨다.

술에서 무쓸모한 자존심 부리지 말자 싶어서.


그러다가 30대 초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링크 : 서울을 떠나오며)

한동안 술을 끊었다가, 다시 소주에 손댔었다.

오랜 시간 투자한 무언가를 실패했다는 상실감.

그걸 견디기 힘들었던 탓이다.


중·고등학교는 아웃사이더처럼 살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쭉 수도권에서 지냈던 탓에

고향에는 딱히 만날 친구도 거의 없다.

그러니 답은 뻔하다.

매일 집에서 소주로 혼술.

가장 권장하고 싶지 않은 바로 그 패턴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직장을 얻었다는 것.

나락으로 빠질 뻔했던 삶에 구원이라 여겼기에,

꽤 야박했던 조건이었음에도 묵묵히 다녔다.

밤늦게까지 혼자 남아 일을 하기도 했고,

새벽에 일어나 출장을 가기도 했었다.


더 빡빡하게 사는 사람들이 한가득일 테니

구태여 더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노력은 하며 지냈다.




입사 후 3년 차.

승진과 함께 책임져야 할 영역이 늘었다.

내 손으로 '함께 일할 첫 팀원'을 뽑았다.

수십 건의 서류 검토.

추리고 추려낸 딱 세 번의 면접.

경험이 없었기에 확신도 없었지만,

느낌 하나만 믿고 밀어붙였던 선택이었다.


7살의 나이 차이.

까딱하면 그만둬버리지 않을까 늘 전전긍긍하며

나름대로 애지중지하며 가르쳤던 팀원.

다행히 그는 생각보다 훨씬 진국이었고,

수습기간을 마치자마자 먼저 술자리를 제안했다.


좋은 징조라 여겨 기꺼이 한 잔 사주겠노라 했고,

그때부터 '위스키'라는 주종을 배우게 됐다.

그것도 싱글몰트 위스키.

한 달에 한 번.

단골 집에 약간의 비용을 얹어드리고

후배가 가져온 위스키를 즐겼다.


척 봐도 제법 값이 나가보였던 종류들.

그땐 정확한 가격을 몰랐지만,

내가 사줬던 안주보다는 분명 비쌌을 거다.

(물론 이제는 안다. 확실히 비싸다.)

그럼에도 그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달마다 다른 위스키를 들고 와 나눠주었다.


무려 2년 가까이를 그렇게 했으니…

금액으로만 따지자면

내가 그에게 진 빚이 훨씬 큰 셈이다.

심지어 새로운 '취미'까지 제공해 줬으니…

앞으로도 갚을 일이 더 많이 남았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다 마신 병도 꽤 많아졌다.




올해 초.

그는 나보다 조금 먼저 회사를 떠났다.

물론, 여전히 그와 연락하며 종종 만난다.

갚을 게 많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그냥 '사람 자체가 좋아서'라는 게 더 크다.


위스키 스승님(?) 덕분에 나도 변했다.

여전히 가끔씩은 소주나 맥주를 마신다.

하지만 이젠 예전처럼 '들이붓지' 않는다.

적당히 마시고 끊는 법을 익혔다.


이제는 그저 일주일을 열심히 보낸 뒤,

컴퓨터 앞에서 편안한 자세로 즐기는

위스키 몇 잔이 못내 즐겁다.


'센티멘탈'이 찾아온다는 밤 시간.

즐겨 들었던 가수의 라이브 음악.

진한 알코올 너머로 전해오는 몰트 향.


'날것 그대로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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