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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y 07. 2024

대학생은 바람막이 잠바를 입으면 안 되나요?

‘윈드 브레이커’라고 불리는 바람막이 잠바는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 사람들이 자주 입는 옷이다. 세련된 이미지의 코트와는 달리 옷자락이 짧고, 장식이나 화려한 무늬가 적어 투박한 맛이 있다. 이 옷은 스포츠, 등산, 레저 등 다양한 활동에서 기본적인 방풍 목적으로 많이 활용된다. 한때 중장년층 중심으로 산에서 입는 교복과 같은 등산복으로 크게 유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일상복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미 박혀 버린 선입견을 빼내기는 쉽지 않다. 몇몇 젊은 세대들이 바람막이 잠바를 ‘나이 든 이미지’의 옷으로 여겨 입기를 꺼리기도 한다. 최근 스포츠 웨어 회사에서 유명 아이돌들을 바람막이 잠바 광고모델로 앞세워 ‘세련되고 젊은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 옷을 여전히 ‘촌스럽고 나이 들었다’라고 보는 시선들도 만만치 않다.


  패션에도 나이의 구분이 있다면 바람막이 잠바를 어디에 넣으면 좋을까? 모든 패션은 돌고 돈다지만, 이 옷만은 이상하게도 연령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다. 요즘은 중고등학생들도, 혹은 성인들도 바람막이 잠바를 즐겨 입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집 주변의 대학생들은 이 잠바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침에는 쌀쌀하고 낮에는 더운 환절기에도 그들은 가죽 재킷을 입거나 통풍도 잘 안되어 보이는 학교의 과 잠바를 입을지언정 바람막이 잠바만은 극구 거부한다. 그것도 한낮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말이다. 이들에게 남모를 패션 철학이 당장의 더위보다 더 중요한 걸까? 무척 더운 날 대학생들이 줄기차게 입고 다니는 과 잠바를 보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된 아들은 엄마가 주는 대로 옷을 받아 입던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입고 걸치는 옷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루는 검은 티셔츠와 어두운 색깔의 바지를 입고 나가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축 늘어지는 회색 츄리닝 바지를 대충 집어 입었다.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옷매무새를 보면 특별히 그 녀석만의 패션 철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요 며칠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한 탓에, 큰 애는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며 옷장을 한참 동안 뒤적거렸다. 결국 아이가 고른 옷은 학교에서 단체로 제작한 두꺼운 재질의 학과 점퍼였다. 내가 보기에 무척 덥고 답답해 보였다.


 문을 나서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그 녀석이 이 계절에 가볍게 입을 만한 바람막이 잠바가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그래, 이참에 깜짝 선물을 줘야겠다.’ 당장 지갑을 들고 나와 가까운 아웃렛 매장으로 향했다. 신나게 30분 넘게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요즘 유명한 아이돌이 선전하는 파스텔 색조의 바람막이 잠바 한 벌을 구매했다. 아주 고심 끝에 말이다.


 그날 저녁,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큰 애에게 그 옷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왠지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다. 마지못해 잠바를 걸치더니 거울에 본인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죄송한데, 솔직히 이런 바람막이 잠바류는 제 취향이 아니어서요.”라며 슬며시 옷을 다시 내밀었다. “그래? 음…. 그럴 수 있지.”라며 옷을 받아서 들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내심 무척 서운했다. 솔직히 이런 마음이 아들이 엄마의 호의를 받아 주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옷에 대한 내 눈썰미가 아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요즘 아이를 보고 있자면, 고3이었던 작년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 눈에 띄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엄마가 챙겨주는 대로 입고 먹고 잤던 예전의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어느 순간 자기주장이 강한 성인이 되어 가고 있다. 그 녀석은 아무리 더워도 얇은 바람막이 잠바보다는 두꺼운 재질의 학과 잠바를 입고 싶어 하고, 집에서 통학하기보다는 또래 친구들과 밤새도록 어울릴 수 있는 기숙사를 원했다. 아이의 나이, 이제 갓 스무 살, 그 녀석은 어느 순간 혼자 날기 위한 독립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빈 둥지를 붙들며 깃털 자국만 바라보고 있었다.


 호의가 거부되었다는 섭섭한 마음, 불퉁한 감정들이 섞인 채 며칠이 지났다. 힘들게 산 바람막이 잠바는 결국 남편의 옷장으로 들어갔다. 신랑은 바람막이 잠바 한 벌이 마침 필요했는데 잘됐다며 웃었다. 사실, 아들의 취향을 고심하며 고른 옷이라 그가 입기에는 너무 ‘어려 보인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거울 앞에서 아들의 잠바를 입어보며 ‘젊어 보여서 좋다’고 웃는 남편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 패션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렇게 바람막이 잠바는 영원히 남편의 옷이 되고 아들이 입을 기회는 평생 없을 줄만 알았다.


 며칠 뒤, 결국 나는 바람막이 잠바를 걸친 아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그 녀석이 1박 2일 학과 엠티 떠날 때 호기롭게 겉옷을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던 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억지로 아들의 배낭 속에 바람막이 잠바를 밀어 넣었다. 솔직히 그런 행동 뒤에는 이 옷에 대한 억척스러운 미련보다 아들이 감기 걸릴까,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러면서도 그 녀석만은 여전히 ‘촌스럽고 나이 들어 보인다’라는 이유로 거부하며 끝내 그 잠바를 안 입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침과 저녁의 온도 차가 심했던 날, 그 녀석은 바람막이 잠바를 걸친 채 멋쩍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아들을 보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에구 통쾌해라, 그래, 멋보다 추우면 우선 살아야지. 이런 즐거운 감정이 아들이 결국 내가 사준 옷을 입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은 그 녀석이 품 안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아들과 난 서로 마음의 독립해야 할 때가 다가오겠지만, 아직은 시간의 브레이크를 걸면서 서서히 적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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