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Jun 22. 2024

낀 세대인 중년들에게 전하는 위로’ <올드 OLD>

 

‘낀 세대인 중년들에게 전하는 위로’

<올드 OLD> (홍승우, 트로이목마, 2024)


 두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 당황스러운 일이 무척 많았다. 낮에는 방긋대며 잘 웃던 아기들이 밤에 갑자기 시뻘게진 얼굴로 우는 상황을 접하면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거렸다. 그때는 지금처럼 육아 정보들이 많이 없었고, 선배 엄마들의 ‘나 때는 말이야’라는 조언을 주워들으며 허덕대던 시절이었다. 더욱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접한 홍승우 작가의 가족 만화 ‘비빔툰’은 육아 초짜인 우리 부부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작가는 본인의 두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감정들과 에피소드들을 재치 있게 작품 속에 털어놓았다. 남편과 나는 그 만화를 읽으며 ‘지금 힘든 육아 과정도 자연스레 지나가는 과정이야’라고 여겼다. 그렇게 ‘비빔툰’과 함께 울고 웃는 동안 작품 속 꼬물거리던 주인공 아이들과 우리 두 아들은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이 만화를 찾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올해 2024년, 홍승우 작가가 새로이 카툰 에세이 <올드 OLD>(트로이목마)를 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작품은 중년의 작가가 따로 살던 80대 노부모를 모시며 생긴 일화들을 담은 책이다. 과거 작가의 만화를 보며 힘겨웠던 육아 전쟁을 극복했던 터라 왠지 이 카툰 에세이를 꼭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도 의미심장한 <올드 OLD>라니, ‘왠지 홍승우 작가답다’라고 여겼다. 이 작가는 예전에 만화 <비빔툰>를 소개하며 ‘두 아이와 부모가 좌충우돌 북적거리는 생활을 비빔밥처럼 섞어 놓았다’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 <올드 OLD> 역시 어떤 의미로 지었을지 궁금했다. 안타깝게도 이 제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책 속에 드러나 있지 않았다.


 ‘늙은, 오래된, 나이가 많은’의 뜻을 가진 영어단어 ‘OLD’는 원시 게르만어 *althaz에서 비롯된 동사의 어간이며 "성장하다, 영양을 공급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출처: 온라인 어원사전, https://www.etymonline.com/kr/word/old) ‘OLD’라는 영어단어는 시간이 흐를수록 쌓이는 세월의 흐름을 표현하는 말에 사용된다. 그 단어가 정신적인 성숙을 의미할 때도 있고, 육체적인 쇠약을 뜻할 수도 있지만, ‘나이 든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OLD’는 정신적인 연륜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고 육체적 쇠락의 뜻으로 표현될 수 있다. 홍승우 작가는 책 제목을 <OLD 올드>라 이름 지은 이유는 중년인 그가 나날이 쇠약해지는 부모를 바라보며 느꼈던 정신적인 성찰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첫 장면은 50대 작가가 결혼 후 처음으로 여든이 넘은 노부모를 집으로 모시면서 시작된다. 아내와 두 자녀를 외국으로 보낸 기러기 아빠인 작가는 치매에 걸린 노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걱정하며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착한 치매’여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요양보호사처럼 씩씩하게 돌보며 매일 만화를 그리느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들의 건강까지 챙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 ‘나이 들어가는 것’, ‘대표적 낀 세대인 40·50세대로서의 미래’, ‘너무도 다른 사고를 가진 2030 자식들을 바라보는 법’ 등 중년에 접어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고민할 법한 문제들을 칸칸이 나누어진 만화 칸 안에 풀어놓았다. 물론 작가가 겪었던 생활의 모든 희로애락을 그림과 글 안에 모두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일상 속에서 반짝거리는 기억들을 잘 포착하여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묘사하며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작품 중에서 유독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작가가 중년이 된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내용이다. 중년이 된 그는 미래를 향한 불안으로 “생각과 두려움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에 키운 ‘상상력과 자신감’으로 지금까지 모든 길을 개척했지만, 최근 들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늙어 가야 할지”(p.38)를 모르겠다고 전한다. 노년을 향해 가는 대한민국 중년들이 유독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의 작가 마사 누스바움은 노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살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달리기 하던 노인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가는 상황’을 예로 들며,  

 “나이가 많으셔서 달리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많은 사회와 “코어 운동이 부족하신 듯하네요. 발목도 더 단련하셔야 해요.”라는 말을 듣는 사회에서 바라보는 ‘노년’의 이미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나이 듦이 과거 삶에 대한 보잘것없는 패러디가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목표들을 위해 계속 노력” (p.217)(<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마사 누스바움, 솔 레브모어, 어크로스, 2019))해야 한다고 말한다.


 <OLD 올드>는 초고령 사회와 초저출산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4050 세대인 작가가 8090 노부모의 자식으로, 그리고 2030 청년들의 부모로 살아가는 현실을 담아낸 카툰 에세이다.  좌충우돌했던 육아기에 가족 만화 <비빔툰>으로 공감을 줬던 만화가 홍승우는 카툰 에세이 <OLD 올드>로 이제 중년인 된 독자들에게 ‘혼자 불안한 것이 아니야’라며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있다. 잘하고 멋지고 반짝거리는 것만 가득해 보이는 대한민국 세상에,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남의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괜찮아.’ ‘스스로 너의 늙음을 만들어 가면 돼’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불안한 중년 독자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을 말하다, 오르한 파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