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는 단편소설 <단순한 열정>(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2024)의 첫 문장이다. 화자인 ‘나’는 숨기고 감춰야 할 욕정이 가득한 영화 속 장면을 섬세한 필체로 묘사한 후 “아마도 이번 글쓰기는 이런 정사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p.10)라고 내뱉는다. 그녀의 말처럼, 외국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한 여성의 내밀한 심리를 표현한 <단순한 열정>은 첫 출간 이후 ‘사회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날카로운 비판과 ‘실험적인 자전소설’의 한 분야를 개척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혼재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쓴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부모, 청소년기, 결혼, 낙태, 불륜’ 등 본인의 경험을 다루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글쓰기로 알려진 작가이다.
대학교수인 주인공 ‘나’는 외국인 유부남 ‘그’를 만난 후 그녀의 일상은 모두 바뀌었다. 평소 즐겨 듣던 클래식 음악보다 ‘사랑의 열정’을 노래하는 대중가요에 빠지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종종 그를 생각하느라 일상생활이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아내가 있는 그와의 인연은 사람들의 시선 앞에 드러내지 못하고 감춰야 할 열정이다. 그녀는 연인과 만날 때는 한없이 행복하다가도 그가 본인의 집으로 돌아간 빈자리를 씁쓸하고 허무하게 느낀다. 만남과 이별의 이런 시간이 반복되자 ‘나’는 서서히 이별할 준비를 한다.
포르노 영화 속 정사 장면을 외설스럽게 묘사했던 도입부와 다르게 이 소설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연인들의 욕정을 표현하기보다는 ‘나’의 심리 묘사에 좀 더 무게를 둔다. 아니 에르노는 연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정신적인 교감을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 사람이 없다면 “내 삶이 여기서 끝나게 될지도 몰라”(p.15)라고 여기고 한 여성의 마음, 매 순간 사랑에 빠져 집착하는 인간의 본성만을 두드러지게 그릴뿐이다. 잘 짜인 서사보다는 의식과 감정의 흐름에 집중한 이 소설은 출판했을 때부터 평론가들의 악평에 휩싸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문학평론가인 이재룡 교수는 작품 속 “이성 간의 정신적 유대와 소통이 배제된 채 오로지 단순한 욕정을 기술한 것이 소위 노출증의 일환으로 해석(. p.83)”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리분석과 윤리적 정당화를 꾀하지 않고 내면적 욕망을 드러내고 나열한” 저자의 의도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프랑스 태생의 멕시코 작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는 아니 에르노의 솔직한 글쓰기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레데리크는 그녀의 글쓰기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실존의 고통과 즐거움과 복잡함을 적나라하게 뼛속까지 파헤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p.6)<칼 같은 글쓰기>고 말했다.
사실 <단순한 열정>이 호평을 받고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사랑에 빠진 한 여성의 심리에만 집중한 작가의 기술 방법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격정적인 사랑에 허우적대는 ‘나’의 모습을 그려내는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이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반된 면을 동시에 서술한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 갔다. (p.17)
사랑을 하고 이별을 반복하는 동안 이들의 욕망과 사랑 역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그라들다. 하지만 그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화자는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p.52)어 글을 쓴다. 주인공은 그 남자가 없는 일상을 이어간다. 소설의 마지막은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p.67)라는 주인공의 자문으로 끝낸다. 이 작품에는 한 여자가 사랑하고 이별하고 성장하는 모든 과정이 작가 특유의 단정하고, 간결하고, 차가운 문장들 속에 숨어 있다.
<단순한 열정>은 도덕적 논란이 있는 연하의 유부남과의 사랑과 열정을 객관화된 시선으로 분석한 점에서 사람들의 충격과 당혹감을 불렀던 소설이다. 특히 이 작품은 아니 에르노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고 알려졌기에 ‘유명 작가이자 문학 교수의 불륜’이라는 선정성과 서술의 사실성 때문에 더욱 비판받았다. 작가는 작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집 <칼 같은 글쓰기>에서 직접 보고 듣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고 주로 ‘기억’에 근거에 쓰는 글쓰기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그녀의 글쓰기는 허구와 상상력을 추구하는 다른 소설가의 방식과는 다르게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특히나 <단순한 열정>은 이성 간의 정신적 유대와 소통 없이 한 여성의 욕정과 심리가 자세히 묘사되다 보니 익숙지 않은 독자들은 문학과 외설의 경계 사이에서 이 작품을 어떻게 규정할지 혼란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작가의 사적인 경험과 기억을 객관적으로 승화하고 한 여성이 사랑에 빠지고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내면 일기’라 명명된 검열과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내면적 글쓰기를 개척하고 있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작품세계가 궁금한 독자에게 이 소설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