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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ug 05. 2024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2023, 비채)

도둑맞은 자전거가 전하는 전쟁의 기억’

‘도둑맞은 자전거가 전하는 전쟁의 기억’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2023, 비채)


*나만의 독서 평점 : 4.9(5점 만점) ; 문체가 간결하고 묘사가 아름다우며 가독성이 좋다. (5점 만점 작품은 좀 기다리는 걸로)
*재독 여부: OK (여러 번 읽고 서평 및 독서 토론에 좋은 작품)
*추천 대상: 대만 국민 작가라 불리는 우밍이가 궁금한 사람들, 대만 문학이 궁금하거나 대만을 여행하고 싶은 이들.



 대만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에 오른 우밍이의 소설 <도둑맞은 자전거>(2023, 비채)는 ‘주인공 아버지와 사라진 자전거는 어떻게 됐느냐’라는 독자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작가 오르한 파묵은 독자들이 소설을 읽을 때 ‘어디까지가 상상이며, 어디까지가 경험일까?’라는 질문을 계속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소설이 창조된 허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지만, 때로는 작품 속 서사에 ‘실제상황’인 양 깊이 빠진다. 독자의 이런 궁금증은 원작자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상상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만들며 새로운 창작물을 탄생시키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도둑맞은 자전거>는 주인공 '청'이 자전거를 매개로 실종된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과정에서 대만 현대화와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전쟁에 휘말린 인간과 동식물의 일생이 켜켜이 얽혀 펼쳐지는 장편소설이다.


 현재 둥화대학 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1971년생 작가 우밍이는 현대 대만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불린다. 그는 1997년, 작품 <오늘은 휴일 本日公休>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다. 작가는 2000년 에세이 <나비탐미기>로 타이베이 문학상을 받았고, 2007년 장편소설 <수면의 항로>로 아시아 위클리 선정 중문 소설 베스트 10에 꼽히며 명성을 떨쳤다. 특히 <나비탐미기>는 대만 자연 에세이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장르를 넘나드는 뛰어난 글쓰기로 문단과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우밍이는 2011년 장편소설 <복안인複眼人>으로 2012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소설 부문 대상과 2014년 프랑스 문학상 리브르 앵쉴레드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8년 <도둑맞은 자전거>로 대만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로 올랐다. 하지만 수상작이 결정되기도 전에 국적을 ‘Taiwan’에서 ‘Taiwan, China’로 바꿔 표기한 사실에 반발한 작가의 사연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결국 빗발치는 여론으로 주최 측은 우밍이의 국적 표기를 ‘Taiwan’으로 되돌려놓았고, 그는 앞으로 작가의 국적이 아닌 활동 지역을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도둑맞은 자전거>의 첫 장면은 평화로운 반농반어촌의 논바닥에서 허수아비 흔들기를 하는 4명의 아이를 보여 주며 시작된다. 그중 함께 놀던 한 꼬마가 잠이 든다. 이후 깨어난 아이는 ‘낯설고 험악하게 변해버린 들판’을 발견한다. 놀란 꼬마는 눈앞의 ‘까만 자전차’를 타고 하늘에서 내리는 까만 비를 뚫고 마을로 달린다. 이후 주인공 ‘청’이 설명하는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작품의 주요 서사는 주인공 ‘청’이 1993년 타이베이의 대형 상가 중화상창이 철거된 다음 날 실종된 아버지와 함께 자취를 감춘 ‘행복표’ 자전거의 행방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청’은 고물 수집가 ‘아부’를 통해서 사라진 아버지 자전거의 행방에 대한 힌트를 얻고 자전거의 과거와 관련된 여러 인물과 사건을 접한다. 이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까지 거슬러 대만을 거쳐 말레이반도, 북미얀마의 밀림까지 펼쳐진다.


 이 소설은 독자들이 아버지의 ‘행복표’ 자전거 과거를 추리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또한 작품 곳곳에 자전거와 관련된 인물들의 숨겨진 개인 서사와 다채로운 내용들이 읽는 이들의 집중을 끌어당긴다. 특히 우밍이는 1인칭 주인공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각 인물의 상황에 따라 번갈아 가며 사용하고 있다. 그는 현재 시점에서의 화자인 ‘청’의 이야기를 설명할 때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과거에서의 주요 인물들인 ‘압바스’, ‘사비나’와 ‘스즈코’, 동물들의 심리와 상황을 묘사할 때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표현하며 등장인물들의 상황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바로 이 점이 독자들이 주인공 ‘청’의 가족 서사뿐만 아니라 대만의 현대사와 엮인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도둑맞은 자전거>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상처를 입은 인간들과 동물들이다. 특히 소설 속 전쟁과 관련 있거나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본인의 과거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주인공 엄마가 비행기 폭격을 당한 어린 시절도, 참혹한 전쟁의 시기를 거쳐온 아빠의 과거도, 전쟁 피해자임을 고백하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는 압바스 아버지인 ‘바쑤야’의 옛 시절도 다른 이의 추측과 말, 그리고 기록으로만 설명될 뿐이다. 특히 주인공 ‘청’ 아버지의 과거는 베일에 싸여 있다. 그는 “바늘과 실만 있으면 종일 한마디로 하지 않을 수 있는”(p.20) ‘반벙어리’인 인물로 묘사된다. 아버지는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총 3번 도둑맞지만, 상황마다 본인의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이웃들과 자신의 자전거를 훔쳐 간 도둑을 잡을 수 있는 순간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몸을 돌려 가게로 들어”(p.213)가며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이 도둑은 주인공 아버지의 과거와 관련된 전우였음이 뒤늦게 밝혀진다. 작가는 전장의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은 끝난 이후에도 온전히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홀로 전쟁의 트라우마를 감내하는 상황들을 여러 일화로 보여 준다.


 우밍이는 영문을 모르고 인간들의 욕망에 희생되었던 동물들의 사연에도 관심을 준다. ‘청’이 아버지 자전거의 궤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난 ‘무 분대장’의 연인 ‘스즈코’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동물원의 동물들이 사육사들의 손으로 죽임을 당했던 전쟁 당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거의 모든 물자가 전쟁에 투입되어 사람이 먹거나 사람을 죽이는 데 쓰”(p.336)이던 시절, 동물원의 동물들은 식량으로 “시의원과 고위층에게 나눠”(p.338) 졌다고 말했다. 작가는 동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인간의 눈으로 묘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옛 전장에 대한 코끼리의 기억으로 확장한다.


“코끼리는 이미 갑작스러운 죽음에 익숙했다. 사람의 것이든 코끼리의 것이든. 그들은 심지어 제 어미의 죽음을 목도하기도 했다. (중략) 언젠가는 인간도 알게 될 것이다. 코끼리도 자신들처럼 캄캄한 밤과 밀림, 우기를 알고 슬퍼할 줄도 안다는 것을.”(p.375)


 “그 자전거는 어디로 갔나요?”라는 독자의 질문에서 창조되었던 <도둑맞은 자전거>는 전쟁과 관련된 대만 현대사를 표면에 드러내며 ‘그때는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도, 애도할 수도 없는 시대였다’(p.462)라는 작가 우밍이의 성찰로 끝난다. 그는 주인공 ‘청’의 언어로,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허구의 일과 실제 인생이 서로 뒤섞일 수밖에 없고” (p.60),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기 위해 대만 현대사의 ‘진실의 기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그에게 있어 소설은 “과거에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체험할 수 없었던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체험”(p.459)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대만 현대사와 자전거의 역사, 그리고 전쟁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분량,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서술 방식 때문에 대만 역사를 잘 모르거나 시간적 흐름에 따른 평면적 구성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자연을 보호하는 이들의 관점에서는 이야기 속 몇몇 장면들에서 묘사된 전쟁 속 동물의 일화만 보고 이 작품을 ‘환경소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작가의 섬세하고 간결한 문체와 아름다운 자연 묘사와 상상력 덕분에 대다수 사람에게 흥미롭게 읽히는 작품이다. 현재 ‘대만 국민 작가’로 불리는 우밍이가 궁금한 독자, 읽는 이의 한 궁금증으로 시작된 자전거 행방 찾기방대한 서사가 궁금한 이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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