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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Jan 08. 2020

카세트테이프 B면 끝


7


“아들   잘    지내고 있지?     아빠가       미안하다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차근차근         꿈을      꼭          이루었으면        한다        건투를         빈다”

간혹 그는 상경한 내게 이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에는 예외 없이 자책이 섞여 있었다. 스마트폰에 서툰 그는 늘 문장 사이에 잔뜩 공백을 넣었다. 내게는 그가 이 공백에 자신의 무력감을 빼곡히 눌러 담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나는 아빠가 미안할 게 뭐 있느냐,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 청주에 내려가면 꼭 들르겠다는 등의 실없는 기약으로 그의 자책을 무마시키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나는 잘 지낸다는 거짓말 외에 다른 말은 떠올릴 수 없었다.


장대한 포부 하나만을 품고 득의양양하게 상경한 나는 냉랭한 현실 앞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지냈다. 지난 이 년 남짓을 과거의 경솔함을 나무라는 데에만 허비했다. 그간 내가 이룬 것이라고는 지나친 반성과 포부를 비웃는 현실과의 노여운 타협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잘 지낸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섣불리 하지 않으려 했다. 못 지낸다고 하면 상대가 왜? 하고 이유를 물어와, 대화가 길어질 경우를 염려한 인사치레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따라서 내게는 그의 진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그런 와중에 그의 죄책감 또한 일정 부분 덜어주어야 할 의무까지 알게 모르게 떠맡게 된 나는, 그가 메시지를 보내오면 늘 마음이 언짢았다. 내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줄 몇 없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점에 고마움을 느낀 것도 처음 한두 번에 불과했다. 종국에는 부모를 이런 식으로 여기기에 이른 나 자신이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끝에 가서는 결국 나의 자책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점차 이 같은 반복에 싫증이 나버렸다. 내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그가 자책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매정한 생각까지 품었을 만큼 나는 꼬여 있던 것이다.


이토록 심사가 꼬일 대로 꼬인 나는 한동안 그의 존재를 잊고 지내다시피 했다. 그런 주제에 느닷없이 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가 며칠간 답장은커녕 확인조차 않는 것은 분명 이례적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그러던 도중 돌연 그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와 날짜에 시선이 멈추었다. 헤아려보니 거진 반년이 지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전화야 말할 것도 없으며 그의 안부를 묻는 단 한 통의 메시지조차 먼저 보낸 적이 없었다. 내 신경은 오로지 막막한 장래에 대해서만 곤두서 있었다. 하물며 그의 생사여부와 같은 것은 전적으로 관심 밖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문득 섬뜩한 상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불과 반년 사이에 그가 절망으로 점철된 남은 삶을 스스로 매듭지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나를 초조하게 했다. 나아가 그 과정에 자식인 내가 앞장서 일조한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만에 하나라도 내 거북한 상상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이미 싸늘해진 그를 최초로 발견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실 혼자서 호들갑을 떨어댈 것도 없이 진작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았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육성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처음 그의 단칸방을 찾았을 때 한껏 야윈 그의 팔다리만큼이나 내 주의를 끌었던 것은 그의 목소리였다. 당시 그의 목소리에는 한때 가장이었던 남자의 강경한 어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무기력한 성대에서는 전에 없던 가냘픈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이는 단순히 어조가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성이 지닌, 또는 지녀야 할, 이른바 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무언가를 나는 그에게서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내게는 꼭 한 생명이 숨 쉴 권리를 박탈당하기 직전의 소심한 외침처럼만 들렸다. 이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하지만 초조한 내게는 이번 만큼은 여지가 없었다. 그의 맥없는 목소리를 꺼려오던 나는 결국 전화를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그가 전화를 받든 받지 않든 내 입장이 난처해지기는 매한가지였다. 행여나 그가 전화를 받는다면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도 나는 정해놓지 않았다. 괘씸한 내 꼴만 우스워지리란 걱정이 조금 들었을 뿐이다. 다만 이 역시 개의치 않았다. 그간 없는 사람 취급을 해놓고서 필요할 때만 찾는 패륜아가 되어도 좋았다. 나를 메시지로는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아 도통 하지도 않던 전화까지 가세해 요구를 밀어붙이는 이기적인 자식이라 여겨도 괜찮았다. 나를 그렇게 여기는 것도 비로소 살아 있을 때라야 가능하니까 말이다. 아무쪼록 수화기 너머로 그의 숨소리를 듣는 것이 급선무였던 나는 급기야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그의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이 어쩌고 하는 말을 차분하게 늘어놓는 여자가 다소 얄미웠다. 그러고 나서 삐- 하고 울리는 기계음이 평소와 달리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나는 즉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나는 당장 아빠에게 가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동생의 느닷없는 전화에, 때아닌 다급함에 형은 다소 당황한 듯했다. 알겠다는 대답을 받아낸 나는 온종일 형의 연락만 기다렸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의 이른 저녁이었다. 마침내 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부디 어리석은 동생이 전혀 터무니없는 상상에 휘둘렸음을 입증해주길 바랐다. 전화를 받자 이윽고 형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아빠는 집에 계신다, 다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술을 드시고 있다, 몸이 편찮으셔서 일을 하지 못하고 계신다, 게다가 핸드폰은 요금을 내지 못해 몇 달 전부터 끊어진 상태다, 조만간 너한테 어떻게든 연락을 준다고 하시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나를 진정시켰다. 나는 이보다 심각한 비보를 전해오지 않은 형에게 더없이 고마움을 느꼈다.


이윽고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던졌다. 칠흑 같은 천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여전히 삶에 대한 이른 회의와 옹색함에 허우적대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나는 끼니도 제때 챙겨 먹는다. 대화할 상대도 남아있다. 몇 번이고 좌절해도 마음만 먹으면 재기가 가능한 젊은 육체가 있다. 게다가 끊임없이 내게 관심을 기울여주는 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간사한 맹인이었다. 내가 번민이랍시고 떨고 있던 궁상은 고독과 절망에 짓눌린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내게 손을 뻗어왔다. 피로 얽은 밧줄을 온 힘을 다해 내 쪽으로 던졌다. 다만 나는 줄곧 침묵으로 일관했다. 무책임한 침묵이 혈연 간에는 통역이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우리의 A면은 보잘것없다. 그러나 B면에는 여전히 ‘Ob-La-Di, Ob-La-Da’가 흐른다. 밤하늘엔 어김없이 오리온자리가 수놓여 있다. 나는 그의 B면을 질릴 때까지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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