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대지를 휘감는다. 바람결을 따라 벌판이 요동친다. 초원이 거대한 힘에 압도당한 채 쓰러진다. 거목의 잎사귀가 주체하지 못하는 무게로 동요한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대자연이 자아내는 떨림에 일체가 되어 있던 쿠르트는 나무에서 내려와 벌판을 달리기 시작한다.
“아버지, 이제 이해했어요. 모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세상의 비밀을요. 이제 걱정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어요.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돼요. 저는 진실을 찾아낼 거예요!”
기쁨으로 들뜬 채 뛰쳐나가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누굴 생각하는지 알아. 하지만 저 녀석은 다를 거야.”
쿠르트의 아버지는 아내의 기우를 애써 부정한다. 과연 그들은 누구를 떠올렸기에 그렇게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일까?
1937년의 드레스덴Dresden.
“국가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독일에 ‘현대미술’이란 것이 있었죠. 하지만 국가 사회주의는 독일미술로 돌아가길 원하며 그 미술은 민족의 창조적 가치로서 영원한 가치에 기반을 둬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영원한 가치를 대변하지 못하면 현재에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광기와 정신병이 의미를 규정하는 원칙으로까지 격상되었죠. 들판을 파란색으로, 하늘을 녹색으로, 구름을 유황색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구요? 그들은 보는 게 아니라 인지한다고 주장하겠죠. 소위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그들의 시력에 문제가 있거나 유전병 때문이겠죠. 후자라면 제국 내무부에 보고하여 그런 끔찍한 질병이 후대로 전해지지 않게 막아야 할 것입니다.”
도슨트를 따라 이동하던 이모와 쿠르트는 국민의 세금을 좀먹고 있다는 칸딘스키 그림 앞에 멈춰 선다.
“저 화가 안 될래요.”
“비밀인데 난 이 그림 좋아.”
나치가 세력을 키워가던 독일의 드레스덴에서는 ‘퇴폐 예술 전시회’가 열렸다. 미술 애호가들은 그곳으로 몰려갔고, 아이러니하게도 나치가 의도했던 바와는 정반대로 자유주의 예술가들의 그림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쿠르트의 이모는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조카에게 그림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전시회에 데리고 온다. 어린 나이의 쿠르트는 현대미술을 타락으로 표현하는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자신이 느끼는 그림에 대한 감정과 다른 데 따른 혼란을 느낀다.
그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는 쿠르트가 전에 살던 집 근처를 지나친다. 빨간 머리를 땋은 요하나, 늘 어린애처럼 손을 꼭 잡고 있던 슈뢰더 노부부, 그 집 개 닥스훈트 틸로, 쿠르트는 이웃들과 살던 집이 그립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치에 입당하지 않아서 집을 빼앗기고 교사직도 박탈당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설득해서 당원으로 입당시키려 애쓰는 중이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선 이모는 대기 중 휴식을 취하고 있던 버스 기사들에게 부탁을 한다. 기사들은 익숙한 듯 차례대로 클락션을 울리고, 한데 어우러진 경적의 하모니가 교향곡처럼 웅장하게 허공에 울려 퍼진다. 이모는 눈을 감은 채 황홀경에 젖는다.
“그림으로 그런 느낌을 주려는 것, 그게 ‘퇴폐’ 예술가들이 하려는 거야.”
방에서 여자의 젖가슴을 그리고 있던 쿠르트는 피아노 소리에 아래층 거실로 내려온다. 이모는 옷을 모조리 벗어던진 채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고 있다.
“눈 돌리지 마!”
쿠르트를 의식한 엘리자베스는 시선을 회피하지 말기를 강조한다. 그녀는 그로스쇠나우에 사는 마이네 집 피아노의 A음, 삶을 우주 전체를 담은 음을 발견한 데 대한 감격에 젖어 재떨이로 테이블을 내리치고 자신의 이마를 짓찧는다.
"이모, 머리에 피가 나요."
가족들은 그녀를 병원에 데려간다. 의사는 조현병 판정을 내리고 보건 당국에 이를 알린다.
이모 엘리자베스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면서도 쿠르트에게 절대 눈을 돌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열등한 인자를 가지고 있는 정신병자'
엘리자베스는 더 이상의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는 나치의 우생학 논리에 의해 불임 시술을 받게 된다. 자신의 차트를 훔쳐본 그녀는 강렬하게 저항해 보지만 산부인과 의사 제반트 교수는 결국 그녀를 수술대로 보내고 만다.
1945년 2월.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이 짙어질 무렵 잠에서 깨어난 쿠르트는 전투기가 몰려오는 것을 창문으로 목도하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무선과 레이더를 교란하기 위한 은박지가 공중에서 쏟아져 내리고 도시 전체가 폭격으로 폐허가 된다.
엘리자베스는 가스실에서 장애인들에 뒤섞인 채 죽임을 당한다. 쿠르트의 형들은 전투에서 총탄을 맞고 사망한다.
불임 시술을 자행했던 제반트 교수는 소련군에 의해 체포되고, 소련 장교는 주모자 크롤의 행방을 추궁한다.
“내 아이가 건강 문제를 안고 태어나면 죽여야 하나?”
“지구상에 자원이 한정돼 있으니 누가 누려야 하죠? 건강한 사람 아니면 환자?”
“곧 지구에 빈자리가 하나 더 생길 것이다.”
하지만 장교의 아내가 난산을 겪게 되자 태아가 옆으로 누워 있는 것을 인지한 제반트는 출산을 도와 아이를 안전하게 뱃속에서 꺼냄으로써 장교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 생명을 구하면 세상을 구하는 거요. 내 세상을 구하셨소. 누구도 머리카락 하나 못 건드리게 하겠소.”
그는 장교의 도움으로 자신의 전력을 지울 수 있게 된다.
그에 반해 쿠르트의 아버지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나치당에 가입했던 오점이 남아 전쟁이 끝나고도 교사로 복직되지 못한다. 이후 그는 계단 청소부로 전락하고 천정에 목을 매는 방식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내 외할아버지는 6ㆍ25 사변 당시 지역에서 가장 넓은 일본식 가옥을 소유하고 계셨고, 인민군이 점령하면서 그 집은 그들의 관사로 쓰였다. 폭력이 전부이던 시대였고 개인은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행되는 전쟁이야말로 개인에게는 꼭 죽음만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치명적인 뇌상을 입힌다.
인민군이 점령했던 주둔지는 다시 국군이 탈환하고 외할아버지는 인민군에게 집을 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국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셨다. 엄마의 전언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그때 발가락 한 개를 절단당해서 절대 양말을 벗지 않으셨다고 한다.
문제는 그가 절대 하지 않은 행위가 양말을 벗지 않는 것만은 아닌 데에 있었다. 고문 이후 그의 시계는 멈춰버렸고, 지병으로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술에만 의존하셨다. 집이 넘어가고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게 사라졌다. 한낱 개인이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의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가를 외할아버지는 온몸으로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무기력하신 외할아버지가 나한테만은 상처를 낫게 해주던 의사의 역할을 대신했다.
어느 날 집에 오신 외할아버지는 내 무릎에 난 종기를 보고는 그것을 짜야겠다고 하셨다.
"아냐 그냥 보기만 할게."
잔뜩 겁을 집어먹자 나를 안심시키시더니 순식간에 종기를 짜내버렸다. 노랗게 곪았던 고름이 빠져나오고 피가 맺혔던 상처는 아물었다.
이후로도 외할아버지는 내게 단지 외피의 고름만을 제거해 주는 분은 아니셨다. 그저 사람 좋은 미소는 내 부모의 정신적인 부재에 스며들어 불안한 의식에 안온함을 주곤 했다.
그 따스함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천정에 목을 매는 방식으로 자신의 무기력한 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누군가에 있어 한 세계가 통째로 사라진다는 것은 실로 아픈 일이다. 한없이, 울었다.
1948년.
바람이 대지를 휘감는다. 바람결을 따라 벌판이 요동친다. 초원이 거대한 힘에 압도당한 채 납작 엎드린다. 거목의 잎사귀가 주체하지 못하는 무게로 동요한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대자연이 자아내는 떨림에 일체가 되어 있던 쿠르트는 나무에서 내려와 벌판을 달리기 시작한다.
“아버지, 이제 이해했어요. 모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세상의 비밀을요.”
쿠르트는 뭘 이해했다는 것일까?
감독은 대체 무엇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을까?
그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독일의 척박한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오래도록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독일의 미술사 또한 그 맥락과 이어져 있다. 혹독한 자연을 초월하는 방법이야말로 그들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이다.
작고 초라한 존재인 인간이 거대한 대자연 앞에 서 있던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바닷가의 수도승’은 그들이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대자연의 무한 속에서 나약한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엄숙한 숭고함.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태어난다고 다 바닷가 앞에만 사는 것이 아닌지라 바다를 처음 본 것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동네로 이사를 하면서다. 그렇다고 먼 거리도 아닌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다 쪽으로 건너온 정도에 불과했다는데 어릴 때의 세상이란 골목 안이 전부이지 않던가.
그렇게 이사를 한 게 네 살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의 어렴풋한 느낌은 압도감이었다. 작고 왜소한 내게 덮쳐오던 그 거대한 물결이 무서워서 잔뜩 겁을 집어먹었던 기억이 지금껏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충격이란 도저히 잊혀 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부두에 서서 나를 덮칠 것 같아 다가서지도 못한 채 파랗고 거대한 물결을 목도하던 순간의 인상은 평생 내가 바다를 그리워하게 된 까닭일 것이다.
그렇게 바다라는 세계를 접한 뒤 아침에 눈을 뜨면 좁다란 골목을 지나 부두로 달려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그곳에서 멀어졌고, 나는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조차 모른 채 친구이자 내 전부였던 바다는 머릿속에 이미지로만 간직되고 말았다.
이후 성년이 되어 부산에 갔을 때 ‘바다’라는 곳 앞에 이르자 그 바다는 더 이상 내가 기억하던 바다가 아니었다. 빌딩으로 둘러싸여 인간에게 점령당한 바다는 이미 바다이기를 포기한,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 그 무엇이고 말았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드레스덴은 재건이 필요했다. 쿠르트는 건물의 간판을 제작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스텐실 작업으로 본을 떠서 물감을 찍어내고 있을 때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글씨를 입혀서 메워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상사는 드레스덴 예술학교 회화과 입학을 주선한다.
“예술학교의 여자애들이 더 예뻐.”
상사의 말처럼 예술학교에서 예쁜 패션과의 금수저를 만난 쿠르트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어릴 적 그를 아끼던 이모의 이름과 같은 엘리자베스, 엘리. 쿠르트는 그녀에게 자신의 수트를 만들어 달라 요구한다.
“절대 벗지 않을 거야!”
수트를 입어본 쿠르트는 그날 밤 옷을 모두 벗은 채 엘리와 사랑을 나눈다.
“태도에 공을 들이세요. 손길에 공을 들이세요. 그러면 올바른 예술이 나옵니다. 본받지 말아야 할 예로 파블로 피카소를 보죠. 그는 노동 계급과의 진정한 연대를 보여주었죠. 그러나 그는 이내 전통주의자가 아닌 혁신가로 보이길 원했어요. 혁신, 창조적 독립, 예술적 자유, 예술가에게 처음엔 솔깃한 말이죠. 이히Ich, 이히Ich 이히Ich. 나, 나, 나.
그러나 현대 예술가가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인민의 이익에 도움이 돼야 합니다. 나, 나, 나의 태도는 불행으로 이끕니다. 기껏해야 퇴폐적이고 부유한 수집가의 돈이나 받겠죠. 타락, 신비주의, 포르노그래피, 형식을 위한 형식, 인위적 구조, ‘반점, 선, 구, 뿔’ 혁신가로 인정받기 위해 이런 걸 동원해요? 네, 새롭긴 하죠. 하지만 잘못된 겁니다. 남들과 달라지십시오.”
교수는 학생들에게 남들과 달라지기 위해 인민을 위한 그림을 강요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이야말로 누구나 어디서나 똑같은 선전용 포스터를 모방하는 데 불과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제시할 수 없었고, 그 공백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엘리는 주거배급 당국과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을 우려해 아버지가 방을 세 내놓으려 한다며 쿠르트에게 자신의 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한다. 쿠르트는 엘리의 집으로 찾아가고 그녀의 아버지 제반트와 맞닥뜨린다. 자신의 이모에게 불임시술을 자행했던 자임을 알 리 없는 쿠르트는 그의 집에 세 들어 살며 엘리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제반트는 딸이 계단 청소 좀 했다고 목을 매는 자의, 혈통이 좋지 않은 쿠르트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 엘리의 태아마저 자궁에 문제가 있다고 속여 낙태 시킨다.
쿠르트는 드레스덴의 예술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늘 나를 찾지 못하는 선전용 회화에 회의감이 들어 모든 것을 버리고 엘리와 서독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아직 장벽이 세워지지 않았던 때라 어렵지 않게 서독에 도착한 쿠르트는 현대미술을 할 수 있는 뒤셀도르프 미대에 지원한다.
“작품이 좋은지 아닌지는 본인만이 알아.”
입학 허가를 내줬던 담당 교수 안토니우스는 자신에게 절대 봐달라고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는 수업에 들어와 정당에 투표하지 말고 예술에 투표하라며 오직 예술에서만 자유는 환상이 아니라며 선거 포스터를 불태운다.
하지만 카메라의 등장으로 회화가 한물간 시대에 평생 회화만을 그려온 쿠르트가 자신의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학생들은 각종 아이디어를 끌어다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예술의 자리를 채운다.
“이번 주에 뭔가 깨달은 것이 있는 사람?”
수업 시간 안토니우스는 질문을 던진다.
“로또 번호요.”
학생들은 쿠르트의 대답에 웃음을 터뜨린다.
“아니 진심이에요. 무작위로 숫자 여섯 개를 말하면 그냥 헛소리 같죠. 하지만 당첨된 로또 번호를 읽는다면요? 갑자기 가치가 생기죠. 뭔가 엄숙하고 아름답기까지 해요.”
쿠르트를 주시하던 안토니우스는 쿠르트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전쟁에 공군으로 참전했다 비행기가 추락해서 화상을 입었던 안토니우스를 자기가 공격하려 했던 크림반도의 타타르 유목민들이 구출해 주었던 얘기였다. 상처에 지방을 문지르며 몸을 펠트로 감싸고 혼신을 다하던 적들의 온기에 대한 고백이었다. 자신이 살면서 겪은 경험, 거짓 없이 말할 수 있는 진정한 것은 지방과 펠트라는 고향이라고.
그것은 바로 안토니우스라는 태아를 감싸고 있던 양수 같은 것이었으리라.
지방과 펠트는 내게 깊이 스며들었고 내가 완전히 이해하는 거야. 데카르트가 자신이 존재함을 이해한 것처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그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었어. 모든 것이 환상, 속임수, 상상일 수 있다고. 근데 뭔가 있어야 그런 생각을 하잖아. 그러니까 결국 뭔가가 존재하는 거지. 그는 그 무언가를 ‘자신’으로 부르기로 했어.
“근데 자네는 누구지? 자네는 무엇이지? 이건 자네가 아니야.”
안토니우스는 작업실을 나서며 섹스를 할 때조차 절대 벗지 않던 모자를 벗고 쿠르트에게 고개를 숙여 작별인사를 한다. 머리에 입은 흉측한 화상을 훤히 드러내 보이며.
쿠르트는 지금껏 작업했던, 자신이 아닌 작품들을 다 불태운다. 그리고는 하얀 캔버스들로 작업실을 채워놓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과거를 숨긴 채 여전히 병원장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장인은 쿠르트가 재정지원을 거부하자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쿠르트의 아버지가 모멸감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계단 청소, 그는 상대에게 모멸을 안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한다.
제반트는 다시 쿠르트에게 자신의 여권 관련한 심부름을 시키려고 사진과 서류를 들고 레스토랑으로 불러낸다.
“부르크하르트 크롤 체포! 안락사 정책 책임자가 10년 동안 고문 의사로 버젓이 지냈대요.”
신문팔이 소년의 호외 타이틀을 듣던 제반트는 식사 도중 급히 식당을 빠져나간다.
환자 살인자KRANKENMÖRDER
호외를 들고 온 쿠르트는 동독에서 간판 작업을 하던 습(習)으로 신문의 글자를 캔버스에 옮겨 그렸다가 이내 붓으로 끄적여 버린다. 그러다 뭔가 떠오르는 듯 호외 속 안락사를 명령했던 살인자 크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다음 날은 다시 장인의 여권 사진을 모사 한다.
뭔가 감이 잡힌 듯 가지고 있던 사진을 뒤적여 어릴 적 엘리자베스 이모와 찍었던 사진을 다시 그린다. 그리고는 페인트붓을 꺼내 그렸던 그림을 섬세하게 흩트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빠른 속도로 천에 유화를 그리고 적층으로 쌓인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마른 붓으로 그림을 흩어놓는 작업, 그것은 회회에 숙련된 쿠르트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리하여 흐릿한 사진의 이미지는 그의 손에서 아련함으로 다시 태어난다.
바람에 덜컹이는 창문이 닫혔다 열리면서 그림의 실루엣이 그림들을 겹치게 하고 쿠르트는 그 이미지를 다시 한 캔버스에 겹쳐놓는다. 안락사 정책의 책임자 크롤, 그를 시행한 장인 제반트, 시술을 받은 이모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자신의 얼굴이 겹쳐지며 어두운 역사의 이면이 화폭에서 아련하게 수면으로 떠오른다.
여권 확인차 작업실에 들렀던 장인은 그림을 보고는 당황해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난다.
그림을 완성하고 돌아온 집 문 앞 어두컴컴한 계단에서 아버지가 자행한 낙태로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계속 유산을 하던 엘리가 4개월째의 임신 사실을 알린다. 쿠르트는 그토록 사랑스러운 아내의 누드를 사진으로 찍어 그림으로 남긴다.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
1966년.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은 뒤샹에게 바치는 오마주인 거죠?"
쿠르트의 첫 작품 전시회의 기자 간담회가 열린다.
기자는 엘리자베스 이모와 어린 쿠르트를 그린 작품을 보고 어머니냐고 묻는다. 쿠르트는 그냥 아마추어 사진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장인의 자동사진기 여권 사진도 그저 ‘작가 미상’으로만 남는다.
“실재하고 한결되고 일관된 것이 진실이고, 진실된 것만이 아름답습니다.”
쿠르트는 수업 시간에 자신이 했던 로또 얘기를 반복한다. 당첨된 로또 번호의 숫자는 아름답다.
간담회가 끝나고 기자는 브리핑을 시작한다.
“임의로 고른 잡지 사진과 자동 사진기의 여권 사진, 가족 앨범의 순간 촬영된 사진이 그림으로 재현됐습니다. 흐릿하게.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힘이 있는 이 그림들로 쿠르트 바르네르트는 동 세대 화가 중 앞서가는 것 같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회화에서 말입니다.
그 세대가 그렇듯 예술적 전통과 작별하고 예술에 대한 자전적 접근과도 결별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술사상 처음으로 작가 미상의 작품을 이야기합니다.”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를 빠져나온 쿠르트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산책에 나선다. 외곽의 한적한 길을 걷던 중 버스들이 운집해 있는 종점을 발견하자 그는 기사들에게 부탁을 한다. 어릴 적 자신의 이모가 늘 해오던 방식으로 경적을 울려 달라고.
하나둘 차례대로 버스의 경적이 울리고 그것은 마치 웅장한 교향곡처럼 허공에 울려 퍼진다. 그는 이모가 그러했듯 황홀경에 젖는다.
영화 <작가 미상>은 그의 미소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이다. 리히터가 동독의 보장된 길을 버리고 서독으로 갔던 이유는 바로 이히Ich, 나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 계기가 됐던 것이 카셀 도큐멘트에서 봤던 루치오 폰타나, 잭슨 폴록의 그림 때문이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선전용 그림을 그리던 리히터는 잭슨 폴록의 그림을 보면서 개인주의의 당당함을 봤다고 한다. 잭슨 폴록의 마니아인 나로서는 리히터의 심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글을 쓰면서 나는 언제나 갈등을 겪었다. 독자가 원하는 글쓰기를 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글쓰기를 할 것인가는 나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의 화두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독자가 원하는 글쓰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내게 글을 쓰는 작업은 나를 찾기 위함이었고, 그 과정에서 나를 치유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독자가 원하는 글쓰기가 내가 원하는 글쓰기와 일치한다면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못했고, 나는 내가 원하는 글쓰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브런치에 나를 찾는 글쓰기를 시작했고, 구독자 수를 늘리는 일 따위에는 무심했던 글이 한 권의 전자책이 되어 내손을 떠났다. 이제 나는 그녀석이 어느 순간 독자와 만나 서로 화합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 손을 떠났으니 어린 그녀석도 두렵고 외로울 것이다. 그러니 혹 녀석을 만나거든 못난 녀석일망정 손이라도 한 번씩 흔들어주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보잘 것 없는 무명씨가 세상의 바람에 쓰러지는 무명씨들에게 진심으로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