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사, 그리고 우리'
고2 여름이었다.
교회에서 전교인 여름수련회를 간 적이 있다.
나는 친구 한 명을 전도해서 같이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그 친구와 함께 중, 고등부예배를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 해에 교회에서 고등부선생님과 예배 후 성경학교에도 참석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가까워지기도 했었고, 친구도 수련회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었던지라 자연스럽게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수련회에 가게 된 친구와 나는 그곳의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친구도 나도 숫기가 없어 또래 친구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성격이 활발해서 우리를 계속 챙겼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대화를 나누게 되고, 같이 돌아다니며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며 조금씩 친해질 수 있었고, 마음이 조금씩 놓이기 시작하자 예배도 더욱 편하게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저녁예배가 마무리된 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끼리 모여 게임을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우리가 있던 방에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고, 교회의 단골게임인 마피아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방 한편에서 쉬고 있었고, 쉬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일어났다. 그때 친구 하나가 건넌방에서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좀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나는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건너편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문 열려있어요."
익숙한 목소리였고,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문을 조금만 열고,
"다들 게임 시작한다고 이 쪽 방으로 넘어오라고..."
그 아이와 첫 대화였다.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냥 소심한 고등학생 한 명은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아, 알겠어! 고마워!"
그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나는 물을 마시러 갔다.
그 짧은 복도를 걸어가며 그저 그 첫 대화가 신기해 피곤한 것도 잊고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렇게 짧은 첫 대화를 뒤로 수련회에서는 더 이상 그 아이와의 접점은 없었다. 친구와 함께 한 나의 첫 수련회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이때부터 이 아이를 좋아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저 동경으로 바라보던 그 아이를 어느새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수련회가 끝난 뒤, 여느 날과 똑같이 예배를 드리러 갔다. 그때는 금요일에 드리는 철야예배도 매번 참석하고 있어서 학교를 마치고 교회로 향했다.
당시에 나는 철야예배가 끝날 즈음의 분위기를 너무나 좋아했다. 예배가 마무리되고 넓은 예배당의 불이 하나씩 꺼지고, 강단 쪽의 조명만이 켜져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철야예배를 꼬박꼬박 참석했었다.
그날도 그렇게 예배를 드리러 가서 매번 앉던 자리에 앉아있었다. 예배 시작 5분 전, 찬양팀의 찬양을 들으며 편하게 앉아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내 오른쪽 귀로 들려왔다.
"여기 앉아서 예배드려도 될까?"
보이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그 아이의 목소리였다.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은 완전히 하얗게 변했고, 마치 감정 없는 로봇인 마냥 대답을 했다.
"어."
속으로 생각했다.
이 미친놈아.
'어'가 뭐냐 '어'가.
나의 영혼 없는, 무미건조한 대답을 듣고도, 그 아이는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아니 나는 예배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발표수업 과제를 할 때, 준비를 제대로 해가지 않은 학생 마냥 긴장하고 또 긴장한 채 앉아있었다.
그렇게 내내 긴장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에 예배가 끝나고, 나는 그 아이와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수련회는 재미있었어?"
이때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나도 침착하게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응, 예배도 좋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던 것 같아."
실제로 또래들과 많이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수련회 자체는 나에게 뜻깊은 경험들의 순간이었다.
그런 나의 대답에,
"다행이다. 가끔 이렇게 같이 예배드리자."
라고 그 아이가 대답을 했다.
마냥 좋았던 것 같다.
동경하던 대상에게서 같이 예배를 드리자는 그 말이. 그리고 다음 대화는 나를 더욱 신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