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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평 Feb 17. 2020

코로나19의 사회학

도와줘요 벡 선생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생각보다 무섭다. 며칠간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이대로 잘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바로 어제 방역망을 벗어난 첫 확진자가 나왔다. 나는 그동안 사태의 위험성을 인지하긴 했으나 안심하고 사는 편에 속했다. 우리나라 방역체계와 국가조직의 힘을 신뢰하는 편에 속할뿐더러, 주된 생활권인 세종시는 코로나 바이러스 맵에 어떠한 표시도 되어있지 않은 곳이기에 나는 당연히 아닐 거라 믿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확진자들이 지나쳤을지도 모를 서울 도처를 마스크도 쓰지 않고 쏘다녔다. 위험이 눈치껏 나만 피해 가지도 않을 텐데.. 오늘에야 살짝 후회가 된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한다. 그는 위험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공장이나 일에 관련된 위해와는 달리 새롭게 등장한 위험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위험은 국경을 넘어 생산 및 재생산 전체로 퍼져 나가는 전 지구적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위험은 초국가적이며 비계급적 특징을 지닌다." 현대사회 이전엔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것이 가장 큰 위험이었다. 이는 인간의 한계 바깥에 있거나 인간의 본능과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각 사회와 집단마다 다른 위험 특성을 보인다. 하지만 기후변화, 금융위기, 자살폭탄 등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회발전이 낳은 위험에는 빈부도, 계급도, 국경도 없다. 현대사회에서 인류는 공평하고 보편적이며 잠재적인 위험을 가지고 살아간다.


질병이라는 위험도 빠른 속도로 세계화된다. 이제는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이상, 피할 구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륙과 국경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피할 구석이 조금이나마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누어지기는 한다. '부는 상층부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부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정보는 말 그대로 넘쳐나고 있었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정보는 이번 달 초까지만 해도 제공되지 않고 있었다. 장애인권단체가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제출하고 나서야 의견이 반영되어 일주일 전부터 관련 수어 통역이 실시되고 있다. 문제가 사회적 약자뿐일까. 자타공인 국제사회 아싸인 북한은 여전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보건기구(WHO)에 긴급히 방역 및 보호장비와 진단 키트 등을 요청한 것으로 보아 현실은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러한 위험사회 해결책으로 제안되는 답안들은 이미 많다. 우선, 보건당국은 일원화된 감염병 관리체계를 보다 견고히 할 뿐만 아니라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 국민의 안전 민감도를 올려야 한다. 또한, 지자체에서는 각 관내의 취약계층 점검 인력을 일시적으로나마 늘리고 해당 인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사전예방과 사후 대처를 상시적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국가 간 감염병 대응 거버넌스를 구축해 협력을 꾀해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 것임에도 어디서 한 번쯤은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럼에도 막상 실행은 되지 않는 듯하여 섭섭한 단골 해결책들이다.


그 이유는 '공감대 형성 부족'에 있다. 국가단위의 대응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시민들의 공감이 중요하다. 시민들에게 지지받지 못한 정책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짧은 현대사가 증명한다. 위기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박기수 고려대 환경의학연구소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인류 역사 이래로 위험한 상황에서 논리 뇌(신피질)보다는 감정 뇌(구피질)가 더 작동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놓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합리적으로 반응하기 어렵다. 극단적 이기주의, 혐오, 차별 같은 반응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생존에 필요한 공감은 형성되기 점점 어려워진다.


나부터 시작하자. "어우 중국인이네"(피하기)와 같은 행동양식은 저리 치워보자. 코로나 맵을 살펴보며 "이 확진자는 왜 하필 우리 동네 영화관에 들렸어. 걸릴 거면 지만 걸리든가"와 같은 폭력적인 언사는 최대한 참아보자. 잠시나마 '생명의 무게와 경제력의 무게가 비례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면 스스로를 경계하자. 대신에 하루가 다르게 얼굴색이 안 좋아지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장의 일간 브리핑을 꼼꼼히 챙겨본다거나, 개인 방역부터 철저히 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당신도 바로 내가 감염병 대응의 조력자가 아닌 ‘당사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러한 인식이 하나 둘 모여 만들어질 일종의 집합 의식이 가장 강력한 대응체계의 출발점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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