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이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다.
우리 회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쭈욱 3분 정도 걸으면 커다란 대학병원이 있다.
원래부터 큰 병원은 아니었다.
본관 건물은 대학병원 치고 작고, 그 뒤에 작은 건물 하나, 그 옆에 또 작은 건물 하나, 그 옆옆에 더 작은 건물 하나 이런 식으로 주변 건물을 대략 6채 정도 사들여 중간층에 구름다리를 연결해 타운처럼 만들어진 병원이다.
이 병원은 화상전문 병원인데, 아마도 공업이 주 업종인 이 지역 특성이 반영된 듯하다.
이 동네에는 골목에서 공업용 기름냄새가 진동하며, 용접하는 곳들도 많을 만큼 유명한 공구&공업 거리가 여전히 남아있다. 그 탓에 산업재해를 입는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먹고살려고 내 몸 망가지는 줄 모르고 일했던 분들의 녹을 먹고 이 병원은 쑥쑥 자랐을 테지.
병원 1층에는 커다란 파리바게뜨 빵집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데, 가끔 팀원 생일파티용 케이크를 사러 들리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복을 입고 1층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름밥을 먹을 것으로 추정되는 30-50대 남성들이다. 표정마저 기름에 전듯한 환자들을 지나 앙증맞은 캐릭터 케이크를 들고 지나갈 때면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올해 1월. 그러니까 한 달 하고 보름 전.
오래간만에 공영장례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승화원에 봉사활동을 가면 서울시 공영장례를 담당하는 '나눔과 나눔' 직원 한 분이 참석하시고, 2-3명의 봉사자가 동행하여 하루 4-5분의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치러드린다. 이 일이 1년 365일 중에 360일가량은 뱅글뱅글 돌아가니 무연고사망자가 얼마나 많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날은 나눔과 나눔 이사장님께서 참석하여 주도해 주셨다.
사실 이사장님과는 구면이었다.
과거 종로에 위치한 직장에서 일할 때 지역단체 개소식에서 뵌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엔 3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평균의 외모를 가진 나 같은 사람은 존재감 0이기 딱 좋은 자리였다. 딱히 발언할 기회도 없었고, 발언할 위치도 안 됐었고. 그저 행사장에 차려진 핑거푸드만 세 번 리필해 먹으며 기분 좋게 두 어시간 보내다 온 게 전부였다.
반면, 이사장님은 해당 단체를 주도적으로 만든 멤버 중 한 분 이셨기에 호탕한 목소리로 축사 비슷한 인사말을 하셨고, 이 공간이 서촌 주민들의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전하셨다.
그게 배안용 이사장님과 내가 만난(말도 안 섞고, 아이컨택도 안 한 그냥 한 공간에 있기만 한 만남) 유일한 시공간이었다.
그. 런. 데.
공영장례 현장에서는 워낙 대기시간이 길기에 (화장하는 1.5시간가량은 대기실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 모인 사람들끼리 대화를 많이 하게 된다.
이사장님께서 "어디서 분명히 봤는데.. 어디서 봤죠 우리?" 이러시는 게 아닌... 가..>. <
앗.. 기억력이 상당히 좋으신가 보다...;;
"전에 ㅍㅇ 에서 뵈었었어요 이사장님^__^"
"아.. 그때 뵈었었구나!! 아니 근데 어쩌다 여기 온 거예요?"
그 뒤로 어쩌고 저쩌고 대화의 물꼬가 트여.. 내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러쿵저러쿵 썰을 풀게 되었다.
2022년 이사장님을 처음 뵈었을 때 '공영장례' '무연고사망자'라는 존재 자체를 처음 들었었고,
'아 그런 게 있구나.. 신기하다.. 그래도 이런 방식이 있어서 다행이네..'
라고 스치듯 생각한 게 다였는데. 내가 공영장례 현장에 오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었다.
정말 사람일은 모를 일이다....
이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적어도 우리가 어쩌다 장례식장을 지나가거나, 영구차가 지나갈 때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잠시 멈춰 서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마음.
그런 작은 행위만으로도 충분한 애도가 아니겠어요"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근데 이 말이 가슴팍에 꽂힌 건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기억력 안 좋은 내 머리에 콕 각인이 되어버렸다.
우리 회사 앞 병원에는 장례식장도 같이 있는데,
대로변이 아닌 한 블록 안쪽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다.
출퇴근길에 나는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2km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장례식장이 보이는 골목 안으로 쓰윽 들어가곤 한다.
아침 8시 30분 전후로 출근길에 지나갈 때면 영구차나 리무진이 큰길에 서서 문을 열고 대기하고 있고,
저녁 6시 이후 또는 야근 후 지나갈 때면 장례식장을 오고 가는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들의 발걸음과 두 세명의 남자들이 모여 뻐끔뻐끔 담배 피우는 모습들이 보이곤 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잠시 속도를 늦추거나
자전거를 멈춰 세운다
그리고 아주 잠시
1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알지 못하는 분이지만
사는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안히 가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건네어 본다.
한 사람의 죽음에 애도를 표현하는 것은
그 사람을 알고 알지 못하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애도는 살아있는 자의 몫인 거니까.
살아있는 동안은 살아있는 자의 몫을 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