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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건

[소설과 소설가] 오르한 파묵

by 글짓는 목수

"문학은 시간에 기반을 둔 예술입니다. 그림이나 조각 같은 시각 예술은 공간에 기반을 둔 예술입니다."

- 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20p -


책을 펼쳤다. 시작이다. 글을 읽어야 한다. 읽는다는 것은 시간의 경과를 포함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장면들이 떠오른다. 글을 계속 읽어나가지 않는다면 당신은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림과 조각은 다르다. 한눈에 직관적으로 모든 것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회화와 조각품은 질량과 부피를 가지며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시간의 경과를 거치지 않고도 순간적으로 그 예술작품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오랜 시간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안목을 쌓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예술 작품들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거나 머리를 긁적일 수 있다. 한눈에 보인다고 한눈에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문학은 시간을 견디고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며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고 미술(회화, 조각)은 시간의 경과 없이 전체를 보지만 그 전체가 품고 있는 부분(내용, 질료, 동기, 시대적 상황 등등)들을 알아야만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은 시간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 예술이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예술도 있다.


그건 바로 음악(音樂, Music)이다.

Orhan Pamuk (1952~ )


니체는 예술 중에서 최고의 경지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 철학을 논하면서 음악의 세계가 그 모든 제약에서 벗어난 가장 자유로운 예술로 봤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음악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를 가지는 것이 아니냐고? 물론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음악에 심취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이런 음악은 대게 고전음악이나 뉴에이지 음악에서 경험되곤 하는데 물론 대중음악에서도 가능하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반복 구간이 있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이런 반복의 패턴을 가진다. 만약 이런 반복 패턴이 없는 음악이 있다면 이건 그저 실험음악일 뿐이다. 모든 고전 음악(Classic Music)은 이 패턴을 반드시 가지게 되어 있다. 이걸 고전 음악에서는 오스티나토 (Ostinato)라고 하고 재즈(Jazz)나 펑크(Funk) 혹은 R&B에서는 그루브(Groove)라고 표현한다.


보이지 않는 반복(Invisble Patt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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