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_하이데거] 박찬국
"존재자에게서 존재가 빠져 달아나 버렸다."
- 박찬국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하이데거] 65p -
존재자와 존재는 두 개의 나이다. 이건 다른 동식물들은 인지할 수 없는 인간만이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누구나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의 사람들만이 이것을 구분하고 존재자와 존재를 일치시키는 경험을 하고 이것이 일치된 삶을 살려 노력한다.
이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종종 무시당하고 소외당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경외되고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전자는 권위가 없고 후자는 권위를 가진 경우에 해당한다. 대중의 반응은 극명하게 둘로 나뉘지만 실제 둘은 같은 깨달음, 즉 존재자와 존재가 맞닿는 것을 경험한 것이기에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전자는 자연 속 수련을 통해서 후자는 지식을 통해 얻은 지혜로 알게 된 경우일 것이라 생각된다. 전자는 보통 시인 혹은 성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후자는 하이데거와 저자처럼 철학자 혹은 사상가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또다시 만난 박찬국 교수의 책이다. 니체, 쇼펜하우어, 에리히 프롬에 이어 4번째 책이다. 독서 모임에서 서양 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하고자 각자가 한 명씩 철학자를 전담해서 발제를 하기로 했다. 나에겐 마르틴 하이데거가 배정되었다. 이건 우연이었지만 운명이었다. 왜냐하면 하이데거의 철학은 페소아의 상념들과 맞닿아 있다. 그 방식만 다를 뿐이다.
"나는 시인의 영혼을 갖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런 영혼의 유무로 시와 정신의 시대를 규정했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36장 -
하이데거는 인간의 소명이란 자신 안에 존재를 시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예술을 논하지만 시인이라 꼭 집어서 말하는 자는 하이데거가 처음인듯 하다. 이건 헤르만 헤세, 괴테, 페소아처럼 많은 고전 문인들이 궁극적으로 시인의 삶을 지향한 것과 일치한다. 그는 시인과 철학자는 분리될 수 없는 이웃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위대한 문학인들의 소설과 산문 속에는 반드시 그들만의 철학이 담겨 있다. 철학에 스토리를 입힌 것이 문학이다. 철학에 서사를 빼고 운율(리듬)을 더하면 바로 시가 된다. 시는 글(보이는)이 음악(보이지 않는)으로 가는 중간 단계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시인이며 시인으로서 지상에 거주해야 한다."
- 박찬국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하이데거] 92p -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감성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문학이다. 이건 마치 인간이 이성적으로만 그렇다고 감성적으로만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과 같다. 헤세나 괴테, 페소아처럼 이 사이에서 시와 산문을 오고 가는 문인들은 이런 삶의 갈팡질팡하는 고뇌와 갈등을 시와 산문(소설) 사이를 오고 가면서 표현했다. 그들은 산문과 소설로 유명해졌지만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글은 모두 시다. 헤세는 시인이 아니면 되고 싶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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