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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27. 2021

나는 작가다

300회 특집 회고록

   브런치에 글을 올린지 1년반이 훌쩍 지나갔다.


  첫번째 글 [이성과 감성사이] (19.7/27)을 시작으로 벌써 300편의 글을 올렸다. 감회가 남다르다. 짧다며 짧은 시간 길다면 긴 시간 부지런히 썼다. 평균 이틀에 한 편씩은 썼다고 볼 수 있다. 매일 쓰던 시기도 있었고 바쁜 일상의 핑계와 슬럼프로 잠시 글을 손에서 놓은 적도 있었지만 이내 다시 돌아왔다.


    에세이부터 서평(독후감), 소설 그리고 일기까지 다양한 글을 올렸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유하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나의 정신세계가 새롭게 재편성된 듯한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위한 진정한 공부가 아닌가 생각한다.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의 반복을 통해 장기 기억 속으로 저장하고 그 기억들이 조금씩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출력의 흐름을 따라서 피어나는 상념들은 또 다른 입력을 찾게 되고 또 다른 출력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자신만의 가상세계(소설)를 만드는 도전까지 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은 읽고 쓰고 생각하면서 지내 과거 1년반 동안 생겨난 것들이다. 학창시절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도합 16년의 세월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것 보다 더 많은 깨달음과 소양을 쌓았다고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난 주입식 교육이 아닌 것 같다)


   얼마전에 읽었던 야마구치 슈의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재확인 할 수 있었다. 그 책도 조만간 서평을 쓰려 한다. 많은 이들이 독서의 중요성은 강조하는 반면 글쓰기는 홀대 하는 편이다. 사실 바쁜 현실에 읽고 쓰고 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직접 경험해 봤기에 천번 만번 이해한다. 하지만 입력만 있고 출력이 없으면 입력된 내용은 쉽게 잊혀지고 사라지게 마련이다. 한 권을 읽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 가봄으로서 책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철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거 위대학 철학자나 작가들도 다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생각을 적는 것이 어렵다면 책의 감명깊은 부분을 필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운다는 말이 있다. 가르치면서 학습한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집어넣기 때문이다. 나 또한 글을 쓸때는 항상 상대방이 어떻게 이해시킬까를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마치 상대방을 논리적 때론 감성적인 방식을 통해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려 한다고 할까?


   그 오지랍이 커서였을까? 소설을 쓰면서도 한편 한편 쓸때마다 소설 속 상황과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피어나는 나의 생각과 의견을 서술하듯 적어내려갔다. 사실 독자가 차지해야 할 부분을 내가 침범한 것이다. 길게 호흡을 가져가야 하는 장편 연재 소설이다 보니 독자들이 자칫 지루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에피소드마다 나름의 결론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했던 짓이다. 요즘 같이 스압(스크롤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스마트 족들을 나름 겨냥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그래서 편당 길이도 2000자~3000자(공백제외)를 넘지 않는 분량으로 조절해서 썼다. 그렇게 소설을 200편이 넘게 적었다. 그러고 보니 글의 대부분(2/3)이 소설이다.  


  처음 브런치에 입성했을때는 메인 화면에도 올라가고 폭발적인 조회 수에 글쓰기보다 글쓴 후에 돌아오는 반응에 더 관심을 쏠렸다. 그 반응이 궁금해 계속 쓰게 만든다. 브런치의 AI는 정말 대단하다. 그 덕에 이렇게 글쓰는 습관이 만들어 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위한 공부이며 쓰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한다는 확고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글은 남아 나를 대변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늘어나는 글 속에 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담겨있고 그 흔적들이 나중에 생길 반려자나 자녀들에게(생길진 모르지만...) 보여질거라 생각하니 더 소중해진다. 사실 어린 시절 나는 나의 부모가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그리고 당신의 젊은 시절에는 어떤 생각과 행동이 그들의 지배했을까에 대해 궁금했었다.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당시에 생각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생생하게 되뇌이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늙어서도 지금 내가 쓰고 있던 글을 보면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글은 생각을 담고 있는 그릇이고 그 그릇에 채워진 것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얘기한다. 그럼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는 유튜브(동영상)나 인스타(이미지)등으로 기록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백이 없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피어오르는 상념과 기억들이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나중에 더 늙어서 지금의 글을 읽는다면 아마 그땐 이 글을 읽고 난 후 분명 또 다른 글을 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브런치에는 다른 재주많은 작가님들이 많다. 한 때 그들의 글을 들여다보며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들을 부러워하며 부족한 내 글에 대해 자책하곤 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찾는 이도 적고 이걸 계속 올려서 뭐하나? 하는 고민을 했었다. 그냥 혼자 쓰고 보는게 낫지 않을까? 일기처럼...


"각이 시작이고 독자가 끝이다"

                                - [강원국의 글쓰기] 중에서 -

                     

   강원국 작가는 글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라고 말했다. 읽혀지지 않는 글을 죽은 것이다. 보여지는 글만이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작가와 독자는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는 관계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도 찾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글을 계속 올려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내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얼마전 [팔공 남자 시즌 2] 초고를 마무리 했다(퇴고는 언제하지...). 시즌1부터 2까지 지겹게도 써내려 갔다. 소설을 써내려가며 내 머리 속에서 어떻게 이런 스토리들이 나왔지 하며 놀라곤 한다. 참 인간의 머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 생애 처음으로 써 본 소설이었다. 초고를 쓰고 퇴고 없이 바로 올렸기 때문에 곳곳에 오타도 있고 내용도 엉성한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어설픈 소설이긴 하지만 그 속에 삶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녹아내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소설을 써 보고 싶다. 머릿 속에 이것 저것 떠오르는 글감들이 있다. 또 다시 시작할 것이다. 계속 써 나가면서 나만의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나중에 이 글들을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도 있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영국의 소설가 C. S. Lewis -


카톡 프사

    나의 카톡 프사(프로필 사진) 문구이면서 나의 좌우명이기도 한 이 문장은 이 곳 브런치(Brunch)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세상은 어찌 내 마음대로 되진 않지만 글은 내가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한다. 글쓰기 이전에는 머리로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손가락으로 생각한다. 머리를 믿지 않는다. 뇌는 간사하지만 손가락은 정직하다.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400편, 500편이 될 때까지 분명 지금보다 더 성장한 모습이 되어 있을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쓸 수 있다.


  "작가란 글쓰는 습관을 가진 자이다."

         - [글쓰는 삶을 위한 일년] 수전티베르기엥 -


나는 작가다.


 공원 나무 그늘 아래서
Centennial Park


P.S. 그간 썼던 300편의 글 중에 1~8위까지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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