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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Dec 02. 2019

퇴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퇴사자는 작가가 된다

여기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퇴사 관련 글이 넘쳐나는 이유가 뭘까? 


글쓰기, 나 또한 그 시작은 퇴사와 함께였다. 내가 브런치에 입성한 지 4개월째 접어들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열심히도 글을 올렸던 것 같다. 물론 브런치에 입성하기 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썼지만 작가들의 플랫폼이라는 특수성 때문일까? 이곳에서 여러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스스로가 이전보다는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쓰게 되었다. 덕분에 더 깊이 사유(思惟)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은 독서로부터 시작되었다.


과거 직장 생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책과의 인연이 깊지 않았다. 여가 시간엔 영화나 운동 혹은 시간이 많을 땐 여행을 선호했지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씨도 결혼하고 애 생겨봐 다 이렇게 돼!" 직장생활에 중에 회사 월급의 족쇄에 묶여 살아가는 기혼 동료들을 바라보며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월급 없이 한 달도 버틸 수 없을 만큼 월급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대출 이자(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아이들 학원비, 과외비, 자동차 할부금 등 마약이 끊기는 순간 찾아올 부작용은 불을 보듯 뻔했다. 월급 말고 또 다른 수입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지배해가고 있었다. 돈을 깔고 살진 못하더라도 돈에 깔려서 비굴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宁可我负天下人不可天下人负我” 

                                                    - 曹操 -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져버리게 하진 않겠다. -조조-)


당시 나의 정신적 멘토였던 삼국지의 조조가 했던 말처럼 내가 회사를 버릴지언정 회사에서 버림받지 않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회사에는 철저히 비밀로 한채 부업을 시작했다. 


다소 황당한 계기로 책을 읽게 되었다. 


퇴사하기 한 일년 전쯤부터 였을 것이다. 지인을 통해 부업으로 흔히들 얘기하는 다단계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주중엔 퇴근 후 방문판매 교육을 다녔고 주말에는 지인들을 만나며 제품 판매와 회원 모집을 위한 숨 가쁜 일상이 이어졌다. 특이한 점은 방문판매 교육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독서였다. 매주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서로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슨 독서 동호회인 줄 알았다는... ) 방문판매 교육에 웬 독서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급격히 변해가는 세상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니즈를 알고자하는 취지였던 것 같다.(그러고 보니 선정된 책은 돈과 자기 계발 관련 위주였다.)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부자가 될 수 없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생각을 바꿔야만 한다는 모두가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뭐든 돈벌이와 연결되면 안하던 짓도 하게 되는 법이다.


알 수 없는 미래가 도래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려고 한 것이었을까? 뭐 어쨌든 책 읽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니까.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책을 한 권 두 권씩 읽다 보니 어느새 내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게 되고 너무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온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방문 판매 교육의 첫 번째는 신규 회원들의 생각을 개조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결국 월급쟁이 마인드를 버리라는 것이었다. 본디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 업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직장생활과 방문판매라는 투잡 생활을 이어가며 스트레스는 더 가중되었다. 일과 중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에서도 모잘라 퇴근 후 방문 판매로 만나는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까지 견뎌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방문 판매는 나랑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독서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이후에도 회사와 독서라는 두 가지 삶이 공존하는 시기가 좀 더 이어졌다. 그런데 독서를 하면 할수록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의 달라진 생각과 가치관으로는 회사라는 조직 속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돈과 생계를 위해 존버 하는 삶을 사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무책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돈을 벌어서 책임져야 할 처자식이 없다는 게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다. 


당시 회사의 개인 의사와는 상관없는 해외파견 강요와 여자 친구와의 이별이 맞물려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아직 30대 후반 아직 현업을 떠나기엔 이른 나이였다. 이직을 생각해도 될 나이였지만 이미 3번의 이직을 경험하고 머릿속을 가득 채워버린 회사에 대한 회의감에 또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사회와 직장에서의 존버와 결혼과 자녀 양육이라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국민총생산 기여, 세금 납부, 사회 구성원 생산 등)을 모두 내려놓았다. 어차피 직장 없는 백수 남자에게 결혼을 허락할 만큼 관대한 여성을 한국 사회에서 찾을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그냥 "나도 이제 좀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보자 "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인생에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무책임한 시간을 보내보고 싶었다. 


주변의 시선이 싫었다. 


처음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의 인간이 되었다. 자유의 대가는 잔혹했다. 경제적 불안과 따가운 주변의 시선 기다리고 있었다. 돈은 아끼고 적게 쓰면 되지만 그 시선만은 견디기 힘들었다. 얇고 네모난 작은 명함 한 장으로 나를 알리던 생활에 익숙했던 나에게 사라진 명함은 나의 존재감도 같이 가져가 버린 듯 했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내가 그 조그만 종이 조각 하나로 규정지어진다는 것이... 나는 사회가 정해준 역할과 시선에서 벗어나는 순간 존재감도 사라지는 이 무서운 시스템에 철저하게 얽매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수록 책 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그건 아마도 나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변에선 책 속으로 현실을 도피한다고들 했다. 하지만 도박, 술, 게임 등의 중독으로 도피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으려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 그리고 독서로 퇴사 이후의 삶을 채워나갔다. 책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식과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채워지면서 새로운 무언가가 분출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쓰기 시작했다. 과거 나의 삶과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삶이 오버랩되면서 피어오르는 생각과 느낌들을 글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몰랐다. 그냥 느낌을 시작으로 내 과거는 왜 책 속에서 얘기하는 것과 다른지를 써내려 갔다. 세상은 책 속의 옳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 것인가? 혹시 그래서 세상은 매일 학업과 직장, 생계, 연애, 결혼, 양육, 노후준비에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부으며 몸과 정신을 빼앗기는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일까? 그래야만 책 속에 말하는 길이 아닌 세상이 지시하는 길로 가기 때문인가? 나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다. 세상에 찌들어 살다 보면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인생이 뭐 다 똑같지 하면서... 쓴 소주와 함께 쓰디쓴 사회를 한탄만 하면서... 그냥 처자식을 생각하며 두 눈 질끈 감고 존버 하는 것이 정답이다. 존버 하면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속에서 자신을 찾아간다.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어 직장 다니며 글을 쓰는 사람들도 늘고 있지만 아직까진 곱지 않은 시선이 대부분이다. 여기 브런치라는 플랫폼에도 많은 작가들이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지만 직장인치고 공개적으로 회사에 글을 쓰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자들이 몇이나 될까? 뭐 SF나 판타지 소설을 쓸 거면 모르겠지만 에세이나 일반 소설은 자신의 삶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그 말은 글감이 삶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직장생활이 일상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람의 글감이 회사를 벗어나서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글쓰는 사람이 자신이 삶에서 완전히 벗어난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SF소설을 쓴다고 해도 그 소설의 배경과 설정은 비현실이지만 그 안에 담기 메시지나 내용은 결국 작가의 생각 즉, 생각을 만들어 내었던 삶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가도 결국 소설을 쓰면서 그 속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후감(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에세이(퍼스널, 오피니언)가 아닌 독후감(서평)이었다. 그나마 직장과 사회에서 혹은 나를 아는 사람들이 봐도 크게 무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속에 들어있는 주제까지 피해 갈 수 없는 노릇이다. 인문/교양 도서를 즐겨 읽던 나는 책 속 내용과 회사생활의 괴리를 글 속에 녹아내는 것이 힘들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책 속에서 나를 갈아먹는다고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글로 옮긴단 말인가?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사장은 회사를 위해 더 고민하고 시간을 할애해주길 바라지 내 글과 내 책을 쓰는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하는 이에게 더 많은 급여와 승진을 보장하진 않는다. (출판사 사장은 빼고) 책은 자신들처럼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갖춘 CEO들의 남기는 지적 소유물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내가 다녔던 회사의 분위기는 대부분 그러했다. 독서 또한 경영/경제 등 일과 관련된 도서만 권장한다. 소설을 읽으라고 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 메말라 가는 건 소설책 한 권 읽지 않는 현대인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정성있는 글


사진과 동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글이라는 콘텐츠가 상대적으로 외면받고 있지만, 화려함(뽀샵)과 가식으로 가득 찬 영상과 사진이 대신할 수 없는 진정성이 글 속에는 녹아있다. 영상은 즉각적이고 여운이 적다. 각종 영상효과와 편집기술은 과장되고 화려한 영상을 만들고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영상은 기교를 통해 원하는 메시지와 의도를 전달하지만 글은 진정성을 통해서만 메시지와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가식적인 글은 읽다 보면 들통나기 마련이다. 글은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싸고 있던 포장을 벗겨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공유하면서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거라 믿는다.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편견과 아집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수많은 작은 시도가 모이고 모여 변해가는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퇴사자의 글이 진정성이 있는 것은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 이름 있는 작가와 위인들이 현업을 떠나 있을때 글 쓰고 책을 남긴 것과 같이 진정성이란 수 많은 이해관계와 역할 그리고 관계 속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때야만 비로소 주어지는 선물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것을 포기했기에 주어지는 것이다. 퇴사 했다면 글을 써보라, 내 안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누군가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퇴사자는 한 편의 글을 남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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