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라지다

평범한 남자 시즌 2-74 (추가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유진 씨! 괜찮아요? 정신 좀 차려봐요"


결국 홀짝홀짝 들이키던 소주가 그녀의 중추신경계를 무력화 시켜버렸다. 그녀의 볼은 술기운에 붉게 달아올랐다. 너무 느리게 깜빡이는 그녀의 눈꺼풀은 금방이라도 붙어버릴 분위기다.


"아~ 대리니임! 오늘 왜 이렇게 기부니가 좋죠?"

"좀 일어서 봐요 집에 가야죠"

"전대리님! 땅이 자꾸 움직여요"


그녀의 말은 늘어난 테이프처럼 늘어진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균형을 잃는다. 나는 그녀를 부축한다. 인파가 북적이는 곱창 골목을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녀는 술기운에 기분이 좋은지 연신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다. 눈꺼풀이 닫힌 채 웃고 있는 그녀는 마치 안동 하회탈을 연상케 한다.


"택시!"

"어서 오세요! 아이고 아가씨가 완전히 떡이 됐네"

"아... 네, 분지 아파트로 가주시겠어요?"


우연찮게도 여자 택시기사다. 중년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택시기사는 뒷좌석에 만취한 그녀를 보더니 혀를 차며 한마디 한다. 그녀는 택시에 오르자 그나마 남아있던 몸의 기운을 놓아버린 듯 고개를 나의 어깨에 기댄 채 축 늘어진다. 그녀의 머리에서 샴푸 향이 은은하게 스며 나온다. 취한 사람의 체중은 평소보다 더 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취하면 중력에 무력해진다. 평생을 중력을 버티면서 살아가지만 의식을 잃으면 중력에 의해 한없이 밑으로 끌려 내려가나보다. 그녀는 모든 의식도 긴장도 모두 내려놓은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무게가 가중되는 느낌이다. 목이 꺾인 그녀의 머리를 아래로 내려 나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몸을 누인다. 그녀는 그 자세가 편했던지 얕게 코를 골기 시작하며 깊은 잠에 빠져든 모양이다. 그 모습이 귀엽다.


"호호, 아가씨가 완전히 곯아떨어졌네요"

"그러게요, 못 마시는 술을 왜 그리 마셔대는지.., 참..."

"아가씨가 총각이 믿음직했나 봐요 호홋"

"예?! 그런 건가요?"

"아님 뭐… 속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었나?"

"예?!"

"아니 뭐… 남자가 답답하면 여자가 그럴 때도 있죠 호홋"

"무슨... 뜻인지?"

"아아아 암... I... can't wait to love you"

"아이고! 아가씨가 영어로 잠꼬대를 다 하네, 뭐라는 거예요? 호호호"

"아… 암 것도 아녜요. 기사님 천천히 가주실래요"


나는 그녀를 내려다본다. 옆으로 젖혀진 고개를 손으로 돌려 바로 누인다. 얼굴을 반쯤 가린 머리칼을 옆으로 넘긴다. 그녀의 하얀 이마가 드러난다. 사랑스럽다. 차 안 룸 미러에 택시기사의 시선을 확인한다. 몰래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나의 입맞춤을 눈치챈 것일까? 그녀의 입가에 얕은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택시는 그녀의 기숙사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다.


"죄송한데 혹시 여기 좀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다시 돌아가야 해서요"

"그래요 그럼, 여기 이 시간에 택시잡기가 쉽지 않죠, 그럼 여자 친구 데려다주고 와요. 여기 기다리고 있을께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를 부축해 택시에서 내린다. 힘겹게 그녀를 이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그녀의 집 앞에는 또 그 때 봤던 러닝 팬츠의 배불뚝이 아저씨가 담배를 꼬나물고 있다. 그는 멀리서 걸어오는 우리를 발견한다.


"오! 형씨! 오늘은 역사를 이루것구마이, 아가씨가 완저이 맛탱이가 가부렀네!"

"아녜요 그런 거!"

"또 아니긴 뭐가 아녀, 기회 랑께~ 나도 다 이런 때가 있었지라, 뭐 내 마누라는 술이 세서 내가 실려오긴 했지만서도… 그때 거시기 술만 안 마셨어도 나가 정신만 똑바로 차렸음 이렇게 되진 않았을 터인디... 으매! 그 술이 왠수여~ 훗~"


그는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연신 담배연기를 품어댄다.


"유진씨 좀 일어나 봐요"

"아... 여... 기.. 가?"

"기숙사 왔어요 열쇠 어딨어요?"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나는 그녀의 가방을 뒤져 열쇠를 찾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뒤에선 배불뚝이 아저씨가 또 음흉한 미소를 띠며 손바닥과 주먹을 부딪치며 화이팅을 외친다. 그녀의 방을 찾아 침대에 눕힌다. 그녀를 부축해서 올라오느라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한숨을 돌리려 잠시 의자에 앉는다. 창 밖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하얀 이마부터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 매끈한 목선, 봉긋한 가슴, 여리여리한 허리선, 매끈한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를 따라 발끝까지 스캔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나의 모습에 나도 놀란다.


'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얏!'


자리에 일어서 방문을 열고 나갈려던 찰나였다.


"가지 마요~"


등 위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나즈막 했지만 선명했다. 그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뭔가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도둑처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녀를 쳐다볼 자신이 없다. 나는 고개만 반쯤 돌려 말한다.


"아.. 안 자고 있었어요? 이만 쉬어요, 전 밑에 택시가 기다리고 있어서 가볼게요 내일 연락해요!"

"...."


나는 서둘러 아파트를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머릿속은 이성과 감성이라는 두 명의 내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양쪽의 팽팽한 접전은 끝이 나질 않고 택시에 앉은 나는 아파트에서 멀어지고 있다.


"총각이 여자 친구한테 참 자상하네요"

"예..."


자상함은 이성에 가깝다. 자상함 이라는 이성에 묶여 감성이 살아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녀는 용기 내어 나의 감성을 건드렸지만 나는 이성으로 막아 섰다. 그리고 다시 둘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아무런 결정과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사랑은 때론 주어진 상황을 무시하고 빠져들 필요가 있다. 일단 빠져들면 주어진 상황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게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가고 사회화 되어가면서 사랑의 감성이 설 자리는 갈수록 줄어든다. 누군가는 육체적인 쾌락을 사랑이라 여기고 누군가는 사랑을 통해 육체적인 쾌락에 도달한다.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지만 현실 속에서 이성적으로 살아가기 바쁜 우리는 사랑의 감성에 쏟을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 하고자 한다.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경쟁력 있는 인간의 표본이다.


육체적인 관계를 통한 호르몬 분비의 변화를 통해 그것이 사랑임을 확인한다. 결국 사랑도 화학적 반응일 뿐임을 깨달은 인간은 호르몬 분비를 통해 정신적 사랑까지 느끼게 된다.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은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것일 뿐이다. 그건 마치 우리가 술과 마약과 도박에 중독되는 것과 같다. 상대와 대상을 통해 얻는 느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도 너도 원한다. 그 느낌을…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안전한 사랑이라고... 믿어야만 한다. 그리고 습관처럼 관계를 가지고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의무처럼 되어버린다. 그렇게 서로에게 구속되어 간다. 그리고 구속됨을 깨닫는 순간 벗어나려 할 것이다.


우리는 보상을 위해 사랑하지만, 정말 사랑하면 헌신한다.

그것이 바로 진실한 사랑(agapē)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처럼 그녀도 저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그 사랑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아아아악!"


나는 일요일 아침 교회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하던 도중 귀 속으로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엄습한다. 그 소리는 귀를 뚫고 뇌 속을 통과하는 듯한 통증을 수반한다. 예배당 바닥에 쓰러져 뒹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예배당은 아수라장이 된다. 사람들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몸부림치는 나를 충격과 걱정 섞인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렇게 뒹굴다가 정신을 잃었다.


“흑흑흑”


유진이 내 앞에서 눈물 흘리고 있다. 그녀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섰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녀의 하얀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잠시 뒤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한 두 걸음 멀어진다. 눈물로 붉어진 눈은 나를 응시한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어보지만 이제 닿지 않는다.


"대리님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녀는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안돼요~ 가지 마요!"

"희택 형제! 정신 차려요!"

"여기가 어.. 어디예요?"

"깨어났어요? 괜찮아요?"


병실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한다. 안 에스더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말로는 예배중에 내가 교회의 예배당 십자가가 올려다 보이는 중앙 통로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뒹굴었다고 한다. 교회 안에 있던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교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상황을 지켜봤다고 한다. 나는 정신을 잃었고 엠불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루가 지나도록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뒤 의사가 간호사와 함께 나타났다. 나의 양쪽 눈을 뒤집어 보고는 말을 꺼낸다.


"전희택 씨 괜찮으세요?"

"예 괜찮아요"

"머리에 통증이나 불편한 느낌 같은 거 없으세요?"

"예 없어요"

"음... 아무래도 이전 후두부 수술 부위 문제인 거 같은데... 정확한 원인은 저희도 아직 잘 알 수가 없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뇌의 해마부위 수술을 하고 정상적인 지각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구요. 일단 내일 두뇌 MRI를 한번 촬영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오늘은 늦었으니 쉬시고 내일 다시 볼게요. 혹시 다시 그런 통증이 오거나 하면 여기 비상 버튼을 누르세요"

"예 알겠습니다. 의사님"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고 안 에스더가 물을 한 잔 따라서 나에게 건넨다. 창 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


"고마워요 에스더"

"고맙긴요, 빨리 회복해요"

"지금 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말요? 참 신기하네요, 저번에도 저희 집에서 목장 모임 할 때도 한 번 그랬던 것 같은데..."

"아!"

"왜 그래요? 희택 형제?"

"제 핸드폰 어딨어요?"


불현듯 예전에 중국에서 머리를 다쳤던 그 때 기억이 떠오르며 불길한 예감이 감돈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찾는다. 안 에스더가 옷걸이에 걸려있는 나의 옷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나에게 건넨다. 나는 유진 씨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 후..."


그녀의 핸드폰이 꺼져있다. 그녀를 만나야 한다. 병상에서 일어나 서둘러 병실을 나선다. 안 에스더는 어딜 가냐며 나를 붙잡으려 하지만 이미 나는 병실을 나섰고 병실 문밖에서 뛰어가는 나를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그녀의 기숙사인 분지 아파트로 향한다. 이동하는 동안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녀의 핸드폰은 여전히 꺼져있다. 꿈속에 나타났던 눈물지으며 돌아서던 유진의 모습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린다. 택시기사에게 빨리 가달라고 재촉한다. 차창 밖으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빗줄기는 금방 거세지고 천둥 번개까지 치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강렬한 빗줄기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이구~ 무슨 비가 이렇게 내린담"


기사는 전조등과 비상점멸등을 켜고 속도를 줄인다. 토끼처럼 뛰어대는 나의 심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북이가 되어버린 택시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분지 아파트 가시는 거예요?"

"예 기사님"

"아~ 이렇게 내리면 거기 진입하는 논두렁길이 걱정인데..."


한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기숙사 아파트 진입로에 들어서고 나서 택시기사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논두렁 길 양 옆으로 불이 불어나 길이 질퍽한 진흙탕 길로 변해버렸다.


"아이구~ 이거 길이 완전 엉망이네, 더 이상 못 들어가요 이거 저기 바퀴라도 빠지면 헤어 나올 방법이 없으요, 여기서 내려가 걸어가셔야겠는데..."

"예?!"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우산도 없다. 택시기사는 차 안 콘솔박스를 뒤적거리더니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 준다. 방법이 없다. 그냥 가는 수밖에. 택시비를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린다. 비닐봉지를 뒤집어 쓰고 뛰어간다. 하늘에서 누가 바가지로 물을 붓는 듯한 기분이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온몸이 젖어버렸다.진흙탕으로 변해버린 300미터 남짓한 논두렁 길을 힘겹게 걷는다. 푹푹 빠져대는 신발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신발인지 알아볼 수도 없다.


힘겹게 도착한 아파트 입구에 서서 그녀가 살고 있는 6층을 올려다본다. 방에 불이 꺼져있다. 일단 올라가 봐야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택시기사가 건네준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덕에 머리털만 젖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녀의 아파트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쉬고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


빗소리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눌러본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혹시 집안에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닐까? 불길한 생각은 생각에 생각을 더하기 시작한다.


"쾅쾅쾅! 유진 씨 안에 없어요!?"


문을 두드린다. 여전히 반응이 없다.


"끼이이익 쾅!"

"뭣이여! 이 야밤에! 엇! 그때 그 형씨 아녀?"


열려야 할 문은 열리지 않고 옆 집 문이 열린다. 얼마 전 마주쳤던 그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다. 그는 그때와 변함없이 입에는 담배를 물고 누런 러닝셔츠와 사각팬티 차림으로 나타났다. 다른 것이라면 팬티 색깔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때와 똑같은 음흉한 미소와 함께 주먹과 손바닥을 부딪치는 시늉을 한다.


"으따~ 비도 억수같이 쏟아져 부는데 또 거시기 생각나서 온 겨? 으따~ 리얼러브여?! 큭큭큭"

"아저씨! 혹시 옆집 여자 들어오는 거 못 봤어요?"

"씨펄! 내가 뭐 경비여? 옆집 주민 출입체크나 허게?"


순간 그의 말에 뭔가가 생각났고 일층으로 내려가 경비실을 찾았다. 경비실에는 희끗한 머리의 할아버지 경비가 핸드폰 속의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지 코 앞에다 가져다 댄 체 쳐다보고 있다.


"저기 어르신!"

"누구?"

"저기 606호에 사는 여자분 들어오는 거 못 봤어요?"

"606호? 아가씨?"

"예!"

"어 저기 저기 들어오네!"

"예?!"


순간 고개를 돌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한 여성이 우산을 들고 빗물 웅덩이들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곡예라도 하듯이 이 쪽으로 걸어온다.


"저분이 606호 산다고요?"

"그렇지 아마..."


빗속을 걸어가 그녀 앞에 섰다. 우산을 쓰고 땅만 보며 걸어오던 그녀는 눈 앞에 진흙으로 범벅된 나의 신발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우산을 들어 나를 확인한다.


"헉! 누구세요?"

"저기 606호 사시는 분이세요?"

"그런데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DG 해외영업팀 전희택 대리라고 합니다. 혹시 유진 씨 못 보셨나요?"

"아~ 안녕하세요 유진씨 한 이틀 집에 안 들어왔는데요, 저도 걱정돼서 전화도 해보고 했는데

연락이 안되더라고요"

"아... 그랬군요"


불길한 예감은 한층 더 깊어진다. 멀리 아파트 입구의 논두렁 길은 가로등이 나갔는지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웠다. 마지막으로 꿈속에서 보았던 유진 씨가 뒤돌아서 걸어가던 그 어둠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과거 띠아오챤이 사라졌던 기억이 떠오르며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하나님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고개를 들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시커먼 하늘을 올려다 본다.




[표지 사진] Gone girl

keyword
이전 21화사람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