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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Feb 14. 2024

애정과 우정 사이

관계에 관한 상념

"사람들은 보통 완전하게 자신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중략) 다들 자신의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저 친절할 뿐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


언제부터인가 느껴왔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친근하지도 또한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다는 것을.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하진 않는다. 또한 나를 그렇게 편하게 대하지도 않는다.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그런 관계가 많아진다.


함부로 대할 수 없기에 편해질 수 없는 것일까? 편해질 수 없기에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일까?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편안해지지 못한다는 뜻의 다른 말인가? 편안하지 않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로 산다는 것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속되지 않는 건 자유롭지만 또한 외로움을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면 원하지 않는 것도 품어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자유로움은 외로움의 다른 말이다.


나는 사람들과 쉽게 사귀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과도 그리 어렵지 않게 친해진다. 하지만 그 관계에 애정을 쏟는 것이라면 조금은 망설여진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사랑만큼 사람을 살 맛나게 하는 것이 없다. 사랑하면 호르몬 분비의 이상 변화로 세상을 보는 눈이 변하게 된다. 나도 그걸 잘 안다. 사랑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이유다. 사랑은 사람이 삶을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알려준다.

About Love

닫힌 사랑


하지만 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건. 아마도 이제는 이 '사랑에 의한', '사랑에 대한', '사랑을 위한' 생각과 행동 그리고 신념이 너무도 명확해져서 일지도 모른다.  과연 어느 누가 나의 이런 '사랑'을 받아주고 또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두려워진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 기준은 삶이 깊어질수록 더욱 깊고 좁은 우물 속에 갇혀버린다. 그 누가 그 어둡고 좁고 깊은 우물 속에 자신을 던져 넣을 것인가? 삶의 시간이 만든 자신만의 사랑의 깊이를 타인이 이해하기란 어쩌면 너무도 위험하고 무모한 모험일지 모른다. 당신이 뭐 지극한 효심을 가진 심청이라면 눈감고 몸을 던져볼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어쩌면 심청이처럼 용왕(신)을 만나 꿈꾸던 염원을 이루게 될지도... 그러고 보면 사랑을 얻기 위해선 용기와 모험이 필요한 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은 보편적 가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사랑이 주는 느낌이 보편적인 것이지 '사랑을 하는', '사랑을 받는', '사랑을 주는' 즉 현실에서의 표현과 행위의 방식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이건 연인과 친구와 부모자식 간에 각자 그들만의 방식과 추억들로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이건 자신이 삶을 살아오면서 했고 받고 줬던 사랑(혹은 미움)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그리고 다른 방식과 다른 추억의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낸 보편적 느낌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

 

♪ ♫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 피노키오 [사랑과 우정 사이] 중에서 –


과거 나의 노래방 18번은 "사랑과 우정 사이"였다. 대학시절 오랜 짝사랑의 기억이 만들어낸 취중 습관이었다. 과거 한국에서의 음주는 항상 가무로 끝을 맺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취기가 오르면 잊혔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감성에 젖어든다.


"또냐? 지겹다 좀... 이 자식아! 그만 좀 불러라"


그 때면 항상 이 노래가 떠올랐고 그럼 또 친구들의 핀잔 섞인 잔소리와 함께 반주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들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술에 취해 감정에 취해 그 노래를 열창하곤 했다. (아직도 이 노래만큼은 잘 부르는 듯… 수많은 연습은 배신을 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나중엔 친구들의 핀잔을 좀 누그러뜨리려 노래방 기기의 다양한 반주 버전을 이용해 트로트, 댄스곡, 랩, 민요등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어서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발라드 곡을 부르는데 노래방이 나이트클럽으로 변하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곤 했다. 이 노래를 하도 많이 부르다 보니 이젠 가사 없이도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는 더 이상 이 노래를 찾지 않게 되었을 때쯤, 이 사랑과 우정 사이가 비단 이루어질 수 없는 연인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기억의 편집


애정(사랑)도 변하고 우정도 변한다. 시간은 애정과 우정을 시험에 들게 만든다. 사랑과 우정도 기억의 한 종류이다. 시간 안에서 편집(변형)된다. 사랑과 우정은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모두 품고 있다. 사랑이 뜨거워지고 식고 우정이 돈독해지고 깨지는 것은 우리가 좋은 기억들로 편집하느냐 아니면 나쁜 기억들로 편집하느냐의 문제이다. 가령 한 사람의 인생을 80년으로 친다면 700,800시간짜리 풀 영상이 된다. 풀 영상에는 수많은 희로애락의 순간순간들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영상은 버려진다. 뇌에 산소 공급이 끝나는 순간 모든 영상은 영구히 삭제된다. 여기서 어떤 영상(기억)들을 Cut 해서 의미 있는 영상으로 만들 것인가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은 해피스토리 혹은 새드스토리가 될 것이다. 해피스토리를 만든 자는 삶의 마지막에 미소를 머금고 잠들 것이고 새드스토리를 만든 자는 후회 속에 잠들 것이다.


애정과 우정의 차이점


애정과 우정의 차이점이 하나 있다. 애정은 종종 사소한 무례함들로 인해 상처받고 우정은 큰 무례함으로 인해 상처받는다는 것이다. 애정은 선을 넘는 아주 가까운 관계이고 우정은 가깝지만 선이 있는 관계이다. 그래서일까 애정은 종종 시간이 가면 식어가고 우정은 시간이 지나면 끈끈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건 사소한 무례함에 익숙해진 결과이며 큰 무례함을 저지르지 않은 결과이다. 오랜 우정은 금전 문제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탐하거나 빼앗을 경우가 아니고서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선을 넘지 않기에…


어쩌면 애정은 무례함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무례함을 받아줄 수 있는 관계의 또 다른 정의가 아닐까? 관계가 깊어지면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애정이 깊은 사람 간에는 그것이 단지 무례함으로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친근감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문제는 이 애정이 식으면 그것은 다시 무례함으로 둔갑해 버린다.


사실 나는 그런 무례함이 두렵다. 너무 친근해지고 허물이 없어지면 생기는 무례함. 애정에 눈이 멀어 그 무례함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무례함이 가시가 되어 돌아올 것이 두렵다. 그리고 그 애정이 만든 사회적 의무와 책임이 그런 무례함을 모두 받아주고 무뎌져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럼 삶 전체가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난다.


범사(모든 일)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5:18 -


그래서일까 요즘 성경 속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무례함은 어쩌면 모든 것이 습관이 되고 당연해지면서 생기는 것이리라. 처음엔 그 관계가 깊어지길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깊어진 관계로 인해 상처받는 것은 서로가 깊어진 관계로 인해 서로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게 했음일 것이다.


이건 비단 관계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누리고 이루고 가진 것이 자신이 이뤄낸 것이고 자신이 뛰어나서이고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우월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감사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능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효율적인 자원과 시간 활용을 통해 최대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부가가치를 만드는 자는 그에 상응하는 부를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논리이고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무너지면 세상, 아니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일이든 관계이든 감사함을 잊어버리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당연한 것이 사라지면 그때서야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건 바로 우리가 자주 하는 후회이다. 그래서 우리는 후회로 점철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이에서...

애정(사랑) 우정 사이


우리는 어쩌면 사랑보다는 멀고 우정보다는 가까운 관계 속에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서로의 소중함과 모든 것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그럼 우리는 애정과 우정을 모두 잃지 않고 감사로 점철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때론 연인처럼 때론 친구처럼,

아끼지만 구속하지 않는

편하지만 무례하지 않는

애정과 우정 사이를 살아야 한다.


Nyaman Art Gallery in 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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