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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y 09. 2024

사라졌지만 영원하다

발리에서 생긴 일 ep 11

和三明治怎么这么好吃呢” (별것도 아닌 커피 한잔과 샌드위치  이렇게 맛있는 거지?)

”(고통 뒤엔 오는 달콤함이 찾아오게 마련이지)

又来了间写皇” ( 시작이네 사이황후님)

“有时候气氛和情况会带来饮食的味道”(분위기와 상황이 음식의 맛을 바꾸기도 하지)

遵旨,皇后,够了够了”(네 네 알겠습니다 황후마마, 그만그만!)

哈哈哈”(하하하)

 

나에게도 달콤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비록 현실은 궁핍했지만 모든 것이 꿈만 같이 달콤했었다. 하지만  달콤함의 대가는 달콤했던 만큼 씁쓸하고 또 고통스러웠다.

 

과거 글에 빠져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 옆에서 항상 나를 응원해 주던  남자친구가 없었더라면 나는 계속 글을 써내려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의  번째 독자이자 유일한 편집자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쓰는 소설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인물에 나보다  많은 애착을 가지는 듯했다. 그는  소설  인물을 현실에서 만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인물에 나를 투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는  인물을 현실의 다른 누군가에 투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내가 만든 허구를 현실과 뒤섞어 버렸다.


그리고 허구와 현실이 뒤섞인 세계로 떠나버렸다.

 

----- (   ) ----- 

 

你觉得在这里男主角做这样的行为太普遍了吧”(여기서 남자 주인공이 이런 행동을 하는  너무 뻔한  같지 않아?)

是吗? 那你觉得该怎么做才好的呢”(그래, 그럼  같으면 어떻게 했을  같은데…?)

嗯。。做些女主角完全预料不到的行为和语言才会更加有意思吧”(글쎄... 완전히 생각지도 못한 행동과 말로  여자 주인공이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어 버리는 거지)

嗯。。好主意”(그거 괜찮을  같은데…)

 

그렇게 그는 내가 쓰는 소설 초고를 가장 먼저 읽어보고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남자의 관점을 조금씩 이해해   있었다. 우리는 마치 소설  남녀 주인공이  것처럼 소설 속에서  다른 연애를 하는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 속의  남녀의 연애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케 했다. 당시 나와 나의 남자친구는 현실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소설 속에서 재현하며 색다른 즐거움을 느꼈다. 그렇게 내가 소설의 초고를 쓰면 남자친구의 내 초고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초고를 퇴고했다.

 

그리고 소설이 초중반을 넘어가면서 남녀의 갈등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在这里男主角说什么谎脱离这情况好呢?”(남자 주인공이 이럴  어떤 거짓말을 해서  상황을 벗어날까?)

 

극본  남녀의 갈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남자친구의 기발한 생각들이 소설 몰입감과 긴장감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런데  극본  갈등 상황은 비단 드라마 속의 상황 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霈云,那你找一找有份工作,怎么样?“(페이윈, 이제  제대로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낫지 않겠어?)

嗯。。你很辛苦吧? “(음… 나 때문에 많이 힘들지?)

 我不辛苦只是我觉得你总是只照顾在你想做的事情”(아니 내가 힘들다기 보단  네가 하고 싶은 일에만 빠져 사는  같아)

那是什么意思呢?”(그게 무슨 뜻이야?)

总在现实里生活你总在理想里活着。人总是也得做着不想做的事情这么活着嘛,可你不是那样”(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데  현실 밖에서 살고 있는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처럼 누구나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살아가는데  아니잖아)

“对不起”(미안.. 해)

别别。我不是想听这句话而跟你说的。 我只是希望你也照顾点现实。还有我们也得想一想我们的未来嘛”(아니, 미안하단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런  아니야. 그냥 현실도  생각해야지 않을까? 우리 이제 미래도  생각하고 해야잖아)

“嗯。。”(.. 그렇지)

 

그와 나는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 길수록 그는 지나온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행복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과거 그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나를 좋아하고 또 동경했었다.


----- (좀 더 먼 과거 회상)  -----


5년 전 내가 그를 처음 만난  SNS에서였다. 그의 말처럼 그때 나는 나만의 세계 속에 갇혀 있었다.

 

10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잘못한  같은 기분을 가지고 나왔다. 그냥 존재감 없이 조용히 회사의 경리업무를 보면서 평범한 다른 이들처럼 보통 여자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부서장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보통의 일상은 이제  이상 보통스럽지 않게 되어버렸다. 일상의 예상치 않은 변화는 항상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새로운 사건의 발생에 의해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인물과 사건은 나의 통제 영역 밖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심은 관계를 이어가고 발전해 가는데 가장 기본이자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남녀 관계의 관심은 조심스럽다. 동성 간의 관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은 이해관계나 가치관의 차이로 생기는 경우이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나의 존재에  타격을 입진 않는다. 왜냐 다른 나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혹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은 이해관계나 가치관이 비슷하면 관심이 생기기 때문에 동질감이 관심을 불러온 것이다.

 

하지만 남녀 관계에선 상황이 다르다. 이성(異性) 관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은 때론 나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최초 이성 간의 끌림은 이해관계나 가치관의 동질성에 의해 생기는 관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적 끌림(관심) 유전자의 발현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건 아웃 오브 컨트롤(out of control)이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자신의 현실적 상황이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생겨난다. 물론 자신의 현실적 조건이 우월하고 상황이 자유롭다면  관심은 자연스럽게 말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번뇌(惱) 시작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의한 괴로움이다.

 

간혹 현실의 조건은 우월한데 상황이 자유롭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하필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인 남자의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관심은 내가 원치 않는 일방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에게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새로 온 부서장은 대기업 고객사에 있던 구매 부장이었는데 우리 회사의 핵심 요직인 영업본부장 자리로 낙하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그가 공수부대 부사관 출신이라는 것이다. 낙하를 잘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장이 삼고초려의 러브콜까지 해가면서 데려온 인사(士)였다. 사장은 그의 인맥과 배경을 이용해 회사의 외적 성장을 도모해 보려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새로 온 본부장은 회사의 성장보다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영업부는 남자들의 세계였다. 나만 유일한 여직원이었다. 제조업의 보수적이고 거친 영업은 여자들이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나는 그저 영업부 직원들의 각종 잡무들과 경리업무들을 도맡아 하는 보조계원이었다. 그런데 그 본부장은  영업담당자들에게 보여야  관심과 노력을 나에게 쓰고 있는  같았다. 그건 아마도 그들이 그에게   없는 , 즉 실적을 통해 회사가 주는 보상 돈이나 명예나 직위가 아닌  다른 것을 나에게서 얻을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小霈,我有话跟你说,下班后在外面见个面吧 ] (페이윈씨, 퇴근하고 따로  얘기가  있는데, 밖에서  볼까)

 

그는 나에게 공적인 사유로 사적인 만남을 요구했다. 만약 그가 가정을 가진 유부남이 아닌  싱글 남자로서의 이성 (異性) 대한 관심이었다면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도 동물의  종류로서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을 것이다.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그리고 이젠 성별도 사라진 세상 아니던가.

하지만 그의 책상 위에는 너무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와  여자를 품고 있는 사진이 나로서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없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만남을 번번이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이제 공적인 자리에서 나와의 은밀한 접촉을 시도하려 했다.

 

来来,大家都辛苦了。来喝一杯,咦!霈云你怎么来晚了?”(자자, 다들 수고했고 한잔씩들 하라고, ! 왜 이리 늦었어? 페이윈)

对不起,今天为止我得报销了营业部招待费用给财务部,所以来得晚”(  재무팀에 보내야 할 영업팀 접대비 영수증들 정리한다고요 죄송합니다.

““好了好了, 辛苦了来这坐下。聚餐不应该缺少我”(그래 그래 수고했어, 어서 여기 와서 앉아, 우리 부서 홍일점이 회식에 빠져서야 되나 캬카캬)

 

언제부터인가 회식 때마다  부서장의 옆자리만 비어있었고  자리는 나의 지정석처럼 되어버렸다. 그리고 회식 술자리가 길어지고 그가 술기운이 오르면 그의 손은 슬며시 테이블 아래 나의 다리로 접근해 왔다. 처음에는 손등으로 우연을 가장해 스치듯이 터치하다가 취기가 올라오면 손바닥으로 터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서 항상 회식 때면 두꺼운 청바지로 옷을 갈아입고 갔다. 회사 내에서는 정해진 여직원의 복장규정이 있어 같은 색깔의 스커트를 입어야만 했다. 그래서 회식이 있는 날이면 청바지를 들고 가서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참석했다. 그래도 옷에 닿는 그의 손길은 두렵고 역겨웠다. 그때마다 화장실로 대피했다. 그럼 영업부 다른 과장이나 대리급 직원이 나에게 연락이 와서 본부장이 찾는다며 회식장소로 다시 나를 소환시켰다. 그렇게  번의 회식이 있고 나는  이상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에게 온화하던 그의 태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霈云,每年的营业部成绩都整理好明天拿给我看,好吗?”(페이윈, 회사 연도별 영업실적 자료들 한눈에   있게 도표로 정리해서 내일까지 나에게 가져다 놔 알았지?)

到明天?”(? 내일까지요?)

对, 明天早上我一上班要看那个,知道了吧”(그래 내일 아침 내가 출근하면 바로   있게 준비해 둬!)

几年业绩呢?”( 년치 영업실적을 정리하면 되는 건가요?)

全部”(전부다)

你说从创立以后开始?”(회사 창립 이후부터요?)

没错!”(그래!)

 

그는 말도 안 되는 부당하고 과중한 업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누구 하나 나를 대변하거나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그는 사장의 총애와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자였고 그의 부하 직원들도 그의 총애와 신임을 받아야 살아남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의 책상 위에도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의 사진이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려 있었다. 그들은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그때 나는 지켜야  것들 많아져서 인간들이 점점 비정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상  부당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만약 그때 누구 하나라도 나에게 도움과 위로의 손길을 내밀었다면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힘든 고난이 와도  고난을 함께 하는 자가   명이라도 있다면 견뎌낼  있다. 하지만 하지만 나에게 고난은 언제나 외로움과 함께 오는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하나만 견디기로 마음먹었다. 외로움을 선택했다.

 

나는 그날 사무실에 홀로 남아 밤을 새워가며 그가 원하던 연도별 회사 영업실적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동이 트는 새벽에 보고서와 사직서를 함께 그의 책상 위에 얹혀 놓고  회사를 나왔다.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을 품은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콧물도 함께 흘렀다. 손으로 콧물을 훔쳤다. 알고 보니 코피였더라.

 

퇴사 이후 들리는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그날 밤을 새워서 만든 창립 이후 모든 영업실적 자료의 도표와 그래프는 내가 회사를 나간 이후 영업팀 사무실 게시판과 사장실에 게시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내가 만든 자료를 매일 같이 바라보며 나를 떠올리겠지 하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개 말단 경리 여직원이 만든 자료를 매일 바라보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더욱 분발하는 모습이 웃기지 않은가.


마치 경전 속의 말씀을 읽으며 매일 자신의 어제를 뉘우치고 내일의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하는 모습이랄까? 나는 떠났지만 내가 남기고  것은 그곳에서 남아 영원히 그들에게 수시로 고통을 주며  높은 목표와  나은 다짐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사라졌지만 그들은 내가 내가 남긴 것을 되뇌인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은 영원히

 

사라졌지만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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