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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Mar 28. 2020

신라면세점의 밤 10시 30분

싱긋-웃고 있는 구겨진 남자를 보았습니다

내 퇴근의 역사

2020.03.18


1. 

퇴근할 때는 왠만하면 버스를 탑니다.

바깥 풍경을 보는 시간은 왠지 모를 위로가 됩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가 버스 창가의 썬팅 사이로 떠있는 하늘을 보곤 해요. 하늘은 깜깜하고 가로등 불빛으로 번쩍이기도 하고요. 오묘하고 비현실적인 연보라빛이 흘러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또 어떤가요. 그렇지 않아도 속도를 내는 버스만큼이나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약속장소에서 친구와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 건물로 들어서는 사람의 뒷모습, 을지로의 긴 횡단보도에 일정한 간격으로 질서정연하게 이동하는 사람들. 이름 한 번 건네보지 못한 이들이지만 저는 그 사람들 덕분에 세상을 조금 더 담았습니다. 내가 사무실에서 8시간 일하는 동안 이 세계도 어떻게든 어디론가 흐르고 있었구나 정보를 받아들여요. 멍 때리기도 하고 관찰하지 않고 스르륵 흘려보내기도 하는 날도 있지요. 그렇게 실내가 아닌 밖을 움직여가면서 보는 그 시간이 있어 하루를 차근차근 닫을 수 있습니다.

 영화 <벌새>를 보고 난 이후부터 저는 종종 손가락을 움직입니다. 내가 여기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쓰기도 하지만 벌새에서 알려준 방법을 제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일상 속에서 자주 꺼내보곤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뿐 아니라 업무를 마감하고 큰 숨을 들이쉬며 집으로가는 버스를 탔을 때, 자기마감을 슬며시 시작하려는 때, 뭔가 저는 손가락을 움직이듯 버스를 타고 넓직한 버스에서 넓은 도시의 면면을 보고 듣습니다.


영지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순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영지의 희고 긴 손. 그 느린 움직임.

김보라, 벌새 시나리오 중

 참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을 때, 오늘 저녁의 에너지를 조금 더 가져다 썼을 때 특히 저는 그 느린 움직임을 천천히, 찬찬히 듣습니다.



2.

 평소에는 을지로입구 쪽에서 남산터널을 지나는 버스를 타는데, 오늘은 길을 잘못 들어서 그 정류장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길을 잃지 않는 지도 앱은 제게 다른 노선의 버스를 알려주더라고요. -가장 빠른 길은 지하철이었으나 퇴근길은 역시 버스가 좋습니다.- 신속한 세상에 태어나 버스가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도 볼 수 있어서 2분 23초 남았다는 소식을 슬쩍보고 경보 실력을 뽐내면서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기어코 뛰었는데요. 여유를 만끽하는 느낌으로 올라타고 싶었지만, 영화와 현실은 얼마간 차이가 있더라고요. 제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와 보폭으로 거의 정류장에 도착했으나 저를 보고도 멈추지 않으시고 출발하려던 기사님. 저는 결국 뛰어서 그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기사님이 조금 미웠습니다.

 숨이 차서 진정시키면서 본 저녁 10시 남짓의 길은 한산했습니다. 그래도 정거장마다 사람이 타고 내렸어요. 그리고 낮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전집의 간판이 유독 환히 켜져 있어서 재밌다싶었습니다. 그리고 동국대역 지나 장충체육관의 모습도 보입니다. 달이 크지 않은 날인지 남산타워는 보이지 않았어요. 타워가 보이는지, 무슨 색인지 고개를 돌려서 끝까지 쳐다보다가 실패하고 그 사이에 버스는 신라면세점 앞을 지나는 중이었습니다.

 근데 핀조명이 쉭쉭 지나가는 거예요. 콘서트 장에서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에 스포트라이트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대감을 업시키는 스포트라이트 아시려나요. 한바퀴 뱅 돌려서 마지막에 짠 등장하는 스타를 가리키는 조명이요. 전 분명 장충체육관을 지났고, 평일 10시 30분이 다 되어가는데, 아무리 장충체육관에서 콘서트를 한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로 집단이 모이기 쉽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에 눈을 꾹 눌러감았다 떴습니다.

 타이밍이 맞아서 정지신호 속에서 저는 스포트라이트의 정체를 알아냈어요. 제가 생각했던 스포트라이트는 먼 곳에서 강력하게 쬐는 조명이라면, 실제로 본 조명은 누군가의 헤드랜턴에서 나오는 빛이었습니다.

신라면세점 건물의 벽면에 붙어있는 입간판/현수막을 교체하시는 중이었던 것 같아요. 시즌이 바뀌었나봅니다. 꽃봉오리와 새싹을 보면서 계절이 돌아오는 것을 인지했지 면세점 현수막이 바뀌는 걸 보면서 아 새로운 시즌이 오는구나, 라고 알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하

 결국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는 두명의 사람이 간밤에 현수막을 교체하기 위해 머리에서 쏘는 빛이었던 거예요. 면세점 운영시간에 바꾸면 고객들에게 마법같이 등장하지 않으니, 다음날 아침 뿅. 구김없이 등장하기 위해 늦은 밤, 꽤 추운 저녁 현수막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겠죠.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지만, 그래서 밤 늦게 일해야하는 사람이 생기는 게 옳을까요?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저는 의아합니다.

 이제는 마법으로 뿅 하고 생기는 건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그런걸까요? 헛으로 생기는 게 없듯, 바뀐지 모르게 쨘 하고 등장하는 다음 시즌 예고에는 누군가의 노동력이 들어가있을 겁니다. 구김없이 펴시더라고요. 제가 처음 본 순간에도 현수막은 이미 잘 달려있었는데, 왜 계속 줄 하나에 매달려 부단히 움직이시나 봤더니 한점의 구김도 없이 깨끗하게 펴고 계시더라고요.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잘해내시는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여전히 인위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한낮의 잘 펼쳐진 그림을 위해 한밤에 펼치는 한줄타기 헤드랜턴쇼. 좀 기괴하다고 느끼곤 일기에 썼어요. 뭐가 이렇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가.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인데,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에 왜 나는 분노하는가. 이런 생각들이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가 기본값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것을 감수하고- 잠을 자지 않고- 저녁없이 밤 늦게까지- 누군가가 꼭 일해야만 할까요? 계절이 바뀌듯 현수막이 바뀌는거라면 새 잎이 돋아나는 게 뿅. 나타나는 게 아니듯 그 과정을 충분히 공유해도 되는 일 아니었을까요? 물론 그들도 동의했겠지만, 저는 가끔 우리가 너무 밤에 일하는 것을 너무 당연시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얻으면 다른 어떤 건 잃을 수 있잖아요. 밤에 일하는 사람에게는 볕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사람에게 병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는 사회잖아요.

 꼭, 서로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정당한 보수가 주어지길 바랍니다. 일상의 한 부분을 들어낸 이의 면면을 고려하길 강조합니다.

 와 멋지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지? 하는 영감을 주는 결과물에 놀라고 기뻐했습니다. 종종 인사이트도 얻고, 하트도 보냅니다. 그리고 덧붙여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콘텐츠로 도출하기까지 얼마나 지난했을까. 몇 번 엎었을까. 얼마나 많은 토론이 있었을까. 지금 키보드 자판을 누르는 이 노트북도 어떤 물건들도 다 누군가의 노동력일텐데요. 자주 망각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묵묵한 움직임을 이제 조금 알겠습니다.

 어렸을 때 급식실에서 선생님이 밥 먹기 전에 맨날 하시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식탁에 오르기까지 농부의 수많은 보살핌이 있었다. 의 맥락이요. 그때는 감동을 잘 받는 아이어서 그저 와아-하고 단편적으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시스템을 학습한거라고 할까요? 그런데 요즘은 정말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고 그래서 내가 지금 편하게 쓰는 이 물건이, 소비하는 콘텐츠가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공을 들여서 에너지를 벼려서 나온 걸까를 이해하게 됩니다. 해보지 않으면 정말 모르는 사람이라서요, 제가. 하하 요즘 뭐 하나 뚝딱 만들어내기가 그렇게 어려워서 말입니다.






글과 사진은 모두 채소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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