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위에는 좀처럼 맥을 못 추는 사람이기 때문에 얼른 이 여름이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물론 캠핑은 두 어 번 갔지만 여름 백패킹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자마자 우리의 백패킹 멤버들은 두 번째 장소를 물색하기시작했다. 원래 가장 먼저 달려가고 싶은 곳으로 백패킹의 성지라 불리는 선자령을 꼽았으나 떠나기 전날까지 계속 쏟아지는 비 때문에 우리는 급하게 장소를 변경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두 번째 백패킹 장소로 정해진 곳은 바로 오서산!!
충청남도 보령과 홍성의 경계에 있는 높이 790m의 산이다. 억새로 유명한 오서산은
산 아래 자연휴양림도 있어서 캠핑족들도 좋아하고 백패커들에게 꼭 가야 하는 명소 중 하나다.
그런데 출발하는 날부터 날씨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폭우처럼 쏟아졌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우리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날 백패킹을 가는 게 맞나 싶은 마음이었지만 우리는 어디로든 출발해야 했다. 도착했을 때도 비가 너무 많이 온다면 안전한 자연휴양림 캠핑장으로 장소를 바꾸기로 하고 일단 달렸다. 다행히도 서해안 쪽으로 갈수록 비가 그치고 날이 개기 시작했다.
오서산은 여러 등산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가장 최단코스인 쉰질바위 코스로 방향을 잡았다.
산 아래에서 쉰질바위까지 내비게이션을 찍고 차로 오르는데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는 것 자체가 긴장의연속이었다. 오른쪽은 절벽, 왼쪽은 나뭇가지들이 마구 차를 때리고 있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산길이라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면서 올랐다.
날씨도 흐린 데다 점점 숲이 무성한 산속으로 차를 몰고 달리니 묘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거겠지.... 비밀의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천천히 산을 올랐다.
산 중턱쯤 올라왔을까. 드디어 쉰질바위 이정표가 보였다.
서 너대 정도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에 주차를 하고 우리는 배낭을 짊어졌다.
이제 이곳에서부터 40~50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
오서산으로 출발!
배낭을 챙겨 메고 스틱도 양손에 들었다. 5분도 채 못 가서 걸음을 멈췄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있었고14kg 배낭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전진.
출발한 지 10분 만에 드는 생각은 '우리 여기 왜 온 거지'였다. 늘 그랬다.
이렇게 힘든데 왜 온 거야 하면서도 또 잊고 나는 배낭을 싸며 설레겠지.
그렇게 한 1리터쯤(?) 땀을 흘리고 나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기 시작했다.
힘들어서 땅바닥만 보고 올랐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는 어느새 산꼭대기에 와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잠시 그쳤던 비가 정상에 도착하자 미스트를 뿌리듯 흩날리기 시작했다. 비가 더 쏟아지기 전에 우리는서둘러 텐트부터 피칭하고 짐을 풀었다. 오후가 되면서 기온은 점점 떨어지고 땀이 식으면서 으슬으슬 추웠다. 혹시 몰라서 경량 패딩 조끼를 챙겨 왔는데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조끼와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핫팩까지 침낭 안에 넣어두었다. 핫팩을 넉넉히 챙겨 온 건 잘한 일이었다.
역시 산 정상의 날씨는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더니 좀 더 따뜻한 긴 옷을 더 챙겼어야 했는데...
이럴 때 필요한 건 역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 준비해 온 김치 어묵우동으로 몸을 녹이고 나니 겨우 눈이떠졌다. 그제야 풍경을 보려고 텐트에서 나왔는데 하얗게 낀 운무 때문에 산 아랫동네는 보이지도 않고 구름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이 텐트 안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 일찌감치 잘 준비를 하려는데 등산을할 때 시원하다고 느꼈던 바람이 점점 더 거세게 불었다. 텐트를 심하게 흔들더니 밤이 깊어 갈수록 바람이 잦아들기는커녕 텐트를 날려버릴 기세였다. 이대로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텐트를 다시 정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시각은 새벽 3시.
미스트처럼 얼굴에 뿌려지는 비를 맞으며 텐트가 조금이라도 더 고정이 되도록 손을 봤다. 펄럭거리는 느낌이 아주 조금은 나아진 것 같으나 바람소리 때문에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에어팟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의 도움을 받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두어 시간 남짓 잠이 들었을까. 텐트 밖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 텐트 사람들의 소리 같았다. 눈을 비비며 텐트 문을 열고 나간 바깥 풍경은 감탄사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운무가 걷히면서 산 아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서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밤새 잠을 설치며 힘들었던 기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래, 이 맛에 오르는 거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이 풍경을 보고 산을 내려갈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비록 조금 이른 계절에 와서 그 유명산 오서산억새는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또 한 번의 도전에 성공한 것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