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초고草稿는 쓰레기다
어느 글에서는 헤밍웨이가 한 말이라고 읽었다.
2018년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그때 감정이 “아... 이 쓰레기를...” 하고 글쓰기를 접었다. “세상에 또 하나의 쓰레기를 양상하고 있었구나” 하는 자괴감에서 그랬다.
이런 망할.....
그래 정말 망할 생각이었는데 내가 몰랐다.
아니 나만 몰랐다.
쓴 글을 퇴고推敲 하여야 한다는 생각 해본 적이 없었다.
나도 그냥 글을 쓰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쁜 글 이쁘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자괴감이 들었다. 그것도 많이, 아주 많이 들었다.
그날 나는 아는 것이 없는 무식한 놈이라는 결론에 글쓰기를 접었다.
작법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정말 우연히 읽었다.
『“모든 초고草稿는 쓰레기다” -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1899~1961)』
순간 몇 만 볼트의 전류에... 이것은 아니다. 몇 만 봍트 경험이 없으니...
그냥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고, 이 문장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러시아 최고의 문장가 투르게네프(1818~83)는 작품을 쓰고, 서랍에서 3개월에 한 번씩 꺼내 고쳤다고 한다. 좋아하는 안도현 시인은 1 한편에 4~50번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였고, 헤밍웨이도 《노인과 바다》를 200번 이상 퇴고推敲를 하였다.
보석도 갈고 다듬어야 하고, 글도 퇴고에 퇴고를 거처야 빛나는 보석이 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단 한 줄의 문장이었다.
다시 시작이다.
그래서 노트북에서 예전에 쓰다 만 자서전 Polder를 열었다.
2018년 3월 22일 처음 쓴 《포도주와 칼국수는 그리움이다》 파일을 다시 펼쳤다.
눈에 들어오는 오타를 교정하고, 어려운 단어를 쉬운 단어로 고쳤다.
물론 어려운 단어라 표현하기보다 조금 더 쉬운 단어를 선택하였던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문맥을 수정하고 앞뒤 문장에서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과감히 삭제하고 수정하였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정말 “모든 초고草稿는 쓰레기다” 이런 문장을 처음 헤밍웨이가 사용하였을까?
이 문장은 누가? 왜? 처음 사용하였을까?
어쩌면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누가?” 이것이 아니고 “왜?”였을 것이다.
답은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초고草稿
초草 풀 초, 거친 풀, 잡초, 황야
고稿 볏짚 고, 원고 고, 초고, 초안
명사 : 퇴고를 하는 바탕이 된 원고.
내가 쓴 글이 쓰레기가 맞다.
글을 처음 쓰고 고치지 않았고, 수정도 해보지 않았으니 거친 잡초가 맞고, 쓰레기가 맞다.
다음 찾아보자.
퇴고推敲
퇴推 밀 퇴, 밀 추
고敲 두드릴 고, 두드릴 교
처음 : 작성한 초고를 다듬는 과정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다.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僧推月下門’이란 시구를 지을 때 ‘推’를 ‘敲’로 바꿀까 말까 망설이다가 한유(韓愈)를 만나 그의 조언으로 ‘敲’로 결정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이런...
이런....
퇴고退稿가 아니었다....
한번 쓰고 물리(발표, 접는, 끝내는)는 퇴고가 아니었다.
순간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퇴고와 탈고를 동의어로 알았던
내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고,
내 무식함을 세상이 알아도,
어쩔 수 없이 고백할 수밖에 없다.
지금
승추월하문僧推月下門 가도賈島(779~843)
눈에 가시처럼 알알이 박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