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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치도치상 Nov 25. 2023

데카르트, 철학에서 심리학으로 전환

Cogito Ergo Sum

이제 제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강의할 기회가 통 없어서 답답하던 찰나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있으니 잘 되었다 싶었어요. 이곳에 제가 강의를 하듯 글을 쓰면 될 터이니까요.


저는 철학자이면서, 신학자이면서, 심리학자입니다. 제가 박사학위가 있냐고요? 아니요, 없습니다. 단지 대학교 및 대학원 과정 중에 철학, 신학, 심리학을 배웠을 뿐입니다. 저는 꼭 박사학위가 있어야 학문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충분한 논리와 이성이 있다면 철학을, 신앙과 그에 대한 탄탄한 논거가 있다면 신학을, 행동과 심리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있다면 심리학을 누구나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논리로 철학을 얘기한다면 철학자요, 누구나 논거를 가지고 신앙을 얘기한다면 신학자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심리를 얘기한다면 심리학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은 데카르트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려고요.


데카르트 덕분에 우리는 사유의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데카르트 이전의 철학자들은 존재(On being)를 논했고 존재의 근간을 어디에 정초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오랜 시간을 골몰해 왔습니다. 플라톤을 철학의 시작 (물론 그 이전에 철학자들이 존재했지만)으로 본다 하더라도 거의 2000년 가까이 되겠네요. 그런데 데카르트는 존재의 근간이 인식(cogito)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이 생각한다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에 존재의 근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데카르트는 이렇게 심리학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심리학, psychology를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근본적 사유의 전환이 심리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심리(psychology)는 대단히 주관적인 경험입니다. 우리는 일종의 불가지론을 경험합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고 마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압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생각하고 마음 쓴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그렇다고 얘기해주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불가지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그렇다고 해도 영원히 알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단지 그럴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죠.


최근 몇 년 동안 자아 존중감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자아 존중감이 높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자아 존중감을 객관적으로 검사하는 질문들도 많고요. 그러나 위에 말한 것처럼 심리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기에 본인이 자아 존중감이 높다고 경험하면 높은 것이고 낮다고 생각하면 낮은 겁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자아 존중감이 높은지 검사하고 그것에 목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심리 검사도 굳이 임상적으로 큰 문제없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심리 검사는 단지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일 뿐이지 객관적으로 내 심리 상태가 어떻다고 파악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여하튼 데카르트 덕분에 우리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사유과정 혹은 심리과정이 처음으로 철학의 논의의 장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이전의 철학자들은 이데아든 신이든 내 존재의 근간을 외부에서 찾았는데 데카르트 덕분에 우리 스스로의 경험, 사유라는 경험, 심리라는 경험 자체에 둘 수 있게 되었어요.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가 맞닥뜨린 현실, 사유의 과정, 감정의 굴곡이 참으로 개개인 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됩니다. 같은 우울증 (예, Major depressive disorder) 진단을 받고 왔더라도 내담자들 스스로가 경험하는 우울증은 사람마다 정말 다르더라고요. 그러니까 우울증 증상은 비슷할지 몰라도 (예를 들어 침대에 누워 바깥 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다) 우울증의 양상/진행과정(prognosis)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상담을 할 때마다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어제 만난 내담자는 분명 인지행동치료가 도움이 되었는데, 오늘 만난 내담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요. 내일 만날 내담자 역시 같은 우울증일지라도 그 분만의 경험과 이야기를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 상담을 하면 할수록 더 잘 알게 되어야 하는데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공부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정말 겸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데카르트가 없었다면 이러한 매우 주관적인 내담자의 경험들이 가치 있게 평가받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존재의 근간을 정초 할 수 있는 어떤 절대적 외부적 대상 (예를 들어 진단이든 아니면 심리치료든)에 기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데카르트가 주관적 사유의 과정자체 (cogito)가 그를 존재하게 하는 근간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제가 만나는 내담자들의 주관적 경험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그들의 시각과 경험에 맞추어 심리상담을 진행해 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내담자들의 동기와 선행의도 (initiation)를 사례개념화(conceptualization)나 지도(leading)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담을 늘 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What brings you in today?"

(오늘 무엇이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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