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치도치상 Feb 24. 2024

빨리 가는 이가 위너다!

아시 패러다임

'아, 한국 사회의 규범은 다르구나.'

깨달음이 오자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규범이 달랐던 겁니다. 한동안 불편했었습니다. 기차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왜 앞에 사람이 앉아있는데 뒷사람이 먼저 내리려고 발버둥을 치는지 의아했습니다. 미국 문화에 오랜 시간 젖어있었던 탓이었죠.


미국에서는 보통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먼저 내리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아메리칸 에어라인이나 델타 등 미국 국적기를 타면 그렇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병목현상이 생기면 막힌 차선의 차들이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차량 한 대씩 양보합니다. 기차를 타면 앞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먼저 내리라고 손짓을 하고요. 앞선 사람의 짐이 많아서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기다립니다. 에티켓이죠.


가족과 함께 대한 항공을 타고 일본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분명 앞선 자리에 앉아 있어서 저는 내리려고 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이 동반인지라 짐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캐리어 등을 선반에서 내리는 중이었습니다. 뒤에 있던 사람이 제 캐리어를 뛰어 넘어서는 의기양양하게 걸어 나가더군요.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의 상황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정리되었습니다. 급한 사람이 혹은 빠른 사람이 먼저 가는 게 한국 사회의 규범이었습니다. "빨리빨리"가 중요한 덕목이니까요. 한국 사회의 규범은 미국 사회의 규범과 달랐었던 겁니다. 솔로몬 아시가 떠올랐습니다.

 

솔로몬 아시(Solomon Asch)는  사회 심리학의 개척자입니다. 그의 연구는 집단과 개인이 판단에 있어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는 개인이 집단의 압력을 받을 때 어떻게 집단에 순응하고, 어떻게 집단의 결정을 따라가는 지를 연구하였습니다.


아시는 간단한 지각 실험을 고안합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잘못 대답하는 상황에서 개인은 과연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는 지를 실험하였습니다. 즉, 개인이 집단의 압력을 이겨내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각각의 참가자는 5-7명의 ‘동료 참가자’라고 소개된 집단과 함께 실험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이 ‘동료 참가자들’은 실험 공모자들로서 실험의 목적을 알고 있는 이들입니다. 실험 목적에 따라서 이 ‘동료 참가자들’은 틀린 대답을 하도록 약속하였습니다.


실험에서 참가자는 두 개의 카드를 받습니다. 첫 번째 카드에는 한 개의 선이 그려져 있고 두 번째 카드에는 A, B, C라고 표시된 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는 첫 번째 카드와 동일한 길이의 선이 A, B, C 선 중 어떤 선인지를 맞추어야 합니다. 실험 참가자는 5-7명의 ‘동료 참가자들’과 함께 똑같은 질문을 요구받습니다. 실험 참가자는 마지막 혹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순서로 답변을 하게 됩니다. 실험에서 약속된 대로 ‘동료 참가자들’이 틀린 답변을 한 후에 혹은 4-6명의 ‘동료 참가자들’이 틀린 답변을 한 후에 대답을 합니다.


아무런 집단 압력이 없었던 다른 조사에서는 총 720회 시행 중 잘못된 대답이 겨우 3회에 그쳤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아시는 실험 참가자들 중 소수만이 집단의 틀린 답을 쫓아 오답을 대답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답은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실험 참가자들 중 75% 이상이 적어도 1회 이상 틀리게 대답하고, 어떤 참가자들은 12회기 중 11회나 잘못 대답할 정도로 집단에 순응하였습니다. 단지 참가자의 26%만이 집단의 틀린 답에 동조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형성된 사회적 규범은 우리 머릿속을 지배합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더라도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도 반드시 걷거나 뛰는 사람을 위해서 왼쪽을 비워두어야 합니다. 비행기에서든지 기차에서든지 먼저 일어난 사람이 먼저 내려야 합니다. 빨리 가다가 옆사람과 접촉이 있어도 미안해하지 않습니다.


운전할 때도 차량 머리를 들이미는 차가 먼저 가는 것이고, 빨리 가도록 가장 왼쪽 차선을 비워두어야 합니다 (1차선은 가속선). 차가 사람보다 빠르기 때문에 차가 비키라고 사람에게 경적을 울려도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차가 더 빠르니까, 더 빨리 가야 하니까 사람이 피해야 하죠.


사회적 규범이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국 문화가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저도 한국 사람으로서 적어 놓고 보니 슬프네요.   



참고 자료

캐서린 콜린 외 공저, 심리의 책, p.225-226

이전 16화 인생은 클린스만처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